[프라임경제] 얼마 전 서울 광화문에 있는 KT 사옥을 방문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요즘 KT는 사건사고가 겹치면서 바람 잘 날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죠. KT를 찾은 이유도 이처럼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었습니다.

KT 내 기자실을 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합니다. 당시 엘리베이터에는 저 혼자만 있어 괜스레 벽면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내부 이곳저곳을 훑어보기도 했죠. 그러다 시가 담긴 액자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평소라면 분명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엘리베이터 디스플레이 화면에 뜨는 속보들을 쳐다보느라 눈길 줄 여유도 없었을 텐데요. 그날은 유난히 이 시의 글귀 하나, 구절 하나를 정독하게 되더군요.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KT의 현재 상황을 대변해주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광화문 KT 사옥 내 엘리베이터 벽면에 부착된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시는 현재 KT가 직면한 위기상황과 극복에 대한 의지를 고스란히 대변해주고 있는 듯 하다. = 최민지 기자  
광화문 KT 사옥 내 엘리베이터 벽면에 부착된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시는 현재 KT가 직면한 위기상황과 극복에 대한 의지를 고스란히 대변해주고 있는 듯 하다. = 최민지 기자
KT는 휘몰아치는 안팎의 폭풍우를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검찰 압수수색은 3차에 걸쳐 진행됐으며, 무궁화 위성 헐값 매각 논란과 관련 미래창조과학부는 KT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이석채 전 회장을 고발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이 뿐인가요. 배임·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전 회장의 사임으로 인해 현재 KT는 수장 없는 최고경영자(CEO) 공백에 처해 있습니다. '내우외환'인 KT의 방향을 정립하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하고 추진할 리더가 없다는 것. KT가 직면한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

KT는 지난 2002년 민영화한 우리나라의 대표 통신기업입니다. KT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으로 9.98%의 KT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어 △KT 자사주 6.6% △일본 이동통신기업인 NTT도코모 5.46% △실체스터 5.01% △미래에셋자산운용4.99% △우리사주조합 1.1%로 구성돼 있는데요.

다른 이동통신 기업과 달리, 소위 재벌이 아닌 기업이 이통3사에 속해 당당히 견줬다는 사실은 KT의 가장 큰 긍지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 통신기업'이라 불리기도 했죠.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국민들의 실망감이 더욱 배가 된 것은 아닐까요.

KT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표현명 대표이사 회장 직무대행은 지난 12일 저녁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최근 일련의 사태로 KT그룹이 어려움에 처했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기업이라는 것을 보여줄 좋은 기회"라며 "시스템과 자부심이 살아있는 KT로 우뚝 설 것이고, 주주와 고객의 실망은 과거보다 더 큰 신뢰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죠.

주주와 고객의 실망을 신뢰로 바꾸기 위해서는 '상한 영혼을 위하여'에 담긴 의미처럼 KT는 하루빨리 고통을 감내하고 포용해 성숙의 길에 들어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수장의 선임이 가장 중요하겠죠.

KT는 차기 CEO를 조속히 선임키 위해 CEO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오는 12월4일까지 후보자를 공모할 예정인데요. KT의 상한 영혼을 위해 내려오는 '마주 잡을 손'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뒷말은 무성하지만,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현명한 지도자가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은 KT를 포함한 모두의 바람 아닐까요.

by 100명 2013. 11. 27. 0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