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포스코 정준양 회장 취임 5년만에
영업이익 6조5000억서 2조로 급감
KT도 시장점유율·가입자수 하락세
정준양·이석채 ‘반면교사’ 삼아
외압 맞설 담력·경영능력 필요

포스코와 케이티(KT)의 후임 최고경영자(CEO) 선정작업이 본격화한 가운데, 정권 핵심에 의한 낙하산식 임명에 대한 우려와 함께 후임 최고경영자가 갖춰야 할 역량과 조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두 회사 모두 경영실적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인데다, 권력의 입김에 의해 최고경영자 선임이 좌우되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하는 만만찮은 공통과제를 안고 있다.

포스코는 철강 경기의 장기 침체, 현대제철의 등장에 따른 독점체제 붕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포스코의 영업이익(개별 기준)은 정준양 회장 취임 이전인 2008년 6조5400억원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2조8000억원으로 격감했고, 올해는 더욱 줄어 2조원에 겨우 턱걸이할 전망이다. 정 회장이 재임시절 벌인 여러 신규투자도 부실 의심을 받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부실을 막기 위해 2010년 투자관리실이 신설됐지만 역할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고, 상당수 계열사들도 적자 상태”라고 털어놨다. 케이티의 영업이익도 2010년 2조원을 넘었으나, 지난해에는 겨우 1조원에 턱걸이하더니, 올해는 그 수준에도 훨씬 못미칠 정도로 주저앉고 있다. 이동전화 시장점유율과 가입자 수 등 각종 경영지표도 하락세다.

포스코와 케이티는 공통적으로 회사 안팎의 탐욕스런 ‘하이에나’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정부가 두 회사의 주식을 한주도 갖고 있지 않은데도, 정권은 권력의 전리품으로 치부하며 각종 이권과 인사를 챙기고 있다. 회사 내부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정 대주주가 없는 두 회사의 속성상 임직원 모두가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인의식을 발휘한다면 총수 주도의 재벌보다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데도, 현실은 기대 이하다. 두 회사 관계자들은 “신규 사업이나 투자를 하면 ‘떡고물’(부정한 부수입)이나 챙기려 하고, 사업실패 책임은 뒷사람에게 미루는 도덕적 해이가 적지않다”고 말한다.

회사 안팎에서 포스코와 케이티의 차기 최고경영자에게 요구하는 역량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내리막길을 치닫고 있는 경영실적을 다시 되살릴 수 있는 역량이다. 과거처럼 포스코는 철강, 케이티는 정보통신에 대한 전문성만 필요한 게 아닌, 다양한 사업군을 아우르고, 글로벌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종합적 경영역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포스코의 한 임원은 “종전까지는 현장을 아는 제철소장 출신이 강조됐지만, 지금은 철강만 잘 만들면 되는 시절이 아니다”고 말했다. 내부 출신인 포스코 정준양 회장과 외부 출신인 케이티 이석채 회장의 동반추락이 보여주듯, 과거처럼 내부 출신이냐, 아니냐가 절대적 후보기준은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케이티의 한 임원은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위나 밑이나 줄서기에 급급한 상황이어서, 조직을 추스르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둘째는 권력의 외풍을 차단할 수 있는 역량이다.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의 자서전적 평전인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에는 재임시절 소신과 배짱을 보여준 일화가 나온다. 박 전 회장은 설립 초기인 1970년 설비공급업체로부터 리베이트와 상납을 받아내려는 정치인들의 압력이 극심하자 옷벗을 각오을 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보했다.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소신대로 밀고 나가라”며 박 전 회장의 건의내용이 담긴 메모지에 친필서명을 해줬고, 이는 외압을 물리치는 ‘종이마패’구실을 했다고 한다.

두 회사의 차기 최고경영자는 권력의 외풍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세가지를 약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회사 안팎에서 많이 제기된다. 첫째는 연임 포기 약속이다. 정준양 회장과 이석채 회장 모두 3년의 첫 임기를 끝낸 뒤 미련을 못버리고 연임을 했다가, 정권교체와 함께 중도 하차했다.

둘째는 후계자 승계 프로그램의 가동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을 예로 들며,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최고경영자 승계 프로그램을 정착시켜서, 잠재후보군을 발굴하고, 경쟁시키고, 홍보하는 일련의 절차를 공식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의 가정이지만, 정 회장과 이 회장이 첫 임기만 마치고 물러난 뒤, 승계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적격의 후계자를 후임 최고경영자로 옹립했다면, 권력이 개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셋째는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철강이나 정보통신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 종합적 경영역량이 없는데도, 권력에 줄을 댄 대선캠프 출신이나 정계·관계·민간경제계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정치권 보은에만 급급하는 게 최악의 시나리오다. 두 회사가 이런 비극을 맞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박 대통령은 박태준 전 회장이 ‘포스코 창업자’로 불리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는 얘기가 들린다. 포스코의 진정한 창업자는 설립을 지시한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역량도 없는 인물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포스코와 케이티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국가적으로 비극이요, 대통령 개인으로는 불효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by 100명 2013. 11. 28. 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