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강원도 원주경찰서는 매월 6만5천원 요금제를 선택하면 휴대전화를 무상으로 교체해준다는 허위광고로 소비자들을 꾀어 30억 원대 부당 이득을 취한 일당을 검거, 사기 등의 혐의로 2명을 구속하고 텔레마케터 등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4개월치 할부금 중 23만7천원을 가입한 다음 달에 현금으로 일시 지급하겠다는 조건까지 내걸고 소비자들을 유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비용은 모두 소비자들로부터 반납 받은 중고폰을 자체적으로 판매해 얻은 것으로, 사실상 소비자들은 ‘공짜’가 아닌 제 값을 주고 사게 된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휴대전화 1대 개통할 때마다 이동통신사로부터 지원금 50만원의 보조금을 받아 챙겼다. 경찰은 기기대금까지 1대당 150만원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동통신사들의 휴대전화 보조금 상한선을 27만원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KT 등 일부 이동통신사들은 이를 어겨가며 과다 보조금을 지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자료사진 / 뉴시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동통신사의 휴대전화 보조금 지급 상한선을 최대 27만원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일부 통신사들은 이 같은 방통위 규제에 아랑곳하지 않고 과다 보조금을 지급하며 가입자 수 늘리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에 사기 혐의로 검거된 이들은 KT로부터 이 같은 과다 보조금을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에 대해 이 사건을 수사한 원주경찰서 원충식 경제1팀장은 지난달 28일 <시사포커스>와 통화에서 “방통위에서는 27만원까지로 규제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 이상을 통신사에서 지급하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그 틈을 노려 고객을 속이면서 뒤로는 통신사로부터 과다 수수료를 받는 변종 사기수법이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짜’ 표현 영업방식 부추기는 KT
특히, 이번에 검거된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통신사인양 ‘KT사업본부’ 등으로 사칭하며 텔레마케팅 영업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부천 소재 한 오피스텔에 공간을 얻어 불법으로 수집한 개인정보를 이용, 대량으로 허위 문자메시지를 보내 연락이 온 소비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펼친 것이다. 경찰은 “피해자인 고객들을 속였지만, 뒤로는 리베이트를 받은 통신사에 대해서도 기망하고 사기를 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통신사 KT도 소비자들과 함께 피해자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찰은 오히려 본질적 문제는 사기집단과 KT 모두가 공범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원충식 팀장은 “통신사에서는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부당영업을 하지 말라고 규제하고 있고, 대리점이 잘못하면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수수료(보조금)를 지급하는 것을 보면 27만원을 초과해 많게는 100만원까지 주고 있다. 통신 3사 모두 똑같다”고 지적했다.

원 팀장은 그러면서 “대리점 규제를 하고 있으면서도 휴대전화를 개통하면 수수료는 더 많이 주는데, 통신사에서도 알면서 관행적으로 그렇게 내려오고 있는 것”이라며 “통신사들이 정확히 지켜줘야 하는데, 통신사에서 27만원 규제를 지킨다면 이런 사기는 없다”고 강조했다. 27만원 규제를 지켜 사기가 사라진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렇게 된다면, 사기단들이 운영비나 이런 부분에서 크게 남는 돈이 없어지기 때문”이라며 “그러면 이들이 틈을 노려 이런 영업 방식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 팀장은 거듭 “고객을 속여 휴대전화 1대를 개통하면 통신사에서는 수수료가 다 다르니, 그런 틈을 이용해 고액을 취할 수 있어 이런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규제를 지키지 않는 통신사들로 인해 불법 사기가 파고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특히, 원 팀장은 “이런 사기범들 대부분 과거에 대출사기나 전화금융사기 등과 연관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대출사기가 매스컴 등에서 많이 다뤄지다 보니, 입지조건도 줄어들어 어려워져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 변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출사기가 안 되니, 통신사 허점을 노려 그쪽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들이 고객에 대한 직접적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은 아니지만, 사기 세력들을 부추기고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KT는 내부적으로 ‘세일즈꾸러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각 대리점 현장에서 고객들을 응대하거나 영업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의 제보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 속에는 ‘공짜’라는 표현을 사용한 영업 교육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내부 프로그램으로 관계자 외에 접근이 불가능하지만, 이 같은 ‘공짜’ 표현을 사용한 영업 부추김은 KT 올레 홈페이지에서도 일부 확인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의 ‘마케팅 경영정보’ 노하우를 전하는 곳에서는 “‘00% 할인’보다는 ‘OOO공짜!’가 더 효과적이다”고 개인사업자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KT 관계자는 “전문가 견해일 뿐”이라며 KT 공식입장이 아니라는 해명을 했지만, KT가 개인사업자들을 위해 꾸민 페이지에 이 같은 글을 공식적으로 올려놓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개인사업자들에게는 하나의 업무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 피해에 피의자까지 자살 충격
특히, 경찰의 이번 사기단 수사 과정에서는 피의자 중 한 명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 여타 사기 사건이 일으킨 충격보다 강도가 남다르다. 익명의 한 제보자에 따르면, 지난달 8일 사기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돼 원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A씨는 임신 3개월의 상태였다. 이날 경찰은 사기단의 도주 등을 염두에 두고 경기도 부천시 소재의 사무실을 급습했고, 모두 17명을 긴급 체포해 원주경찰서까지 호송했다.

주범이 아닌, 텔레마케터였던 A씨는 대대적인 경찰 체포 작전과 조사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며칠 후 아이를 유산하고 말았다. 태아 유산에 동거인도 큰 충격을 받았고, 이로 인해 가정은 파탄 상태까지 치닫게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며칠 후 A씨는 신병을 비관, 집안에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 발견됐을 당시 아직 숨이 멎지 않아 이대 목동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됐지만, A씨는 결국 입원 중 사망하고 말았다.

경찰은 뒤늦게서야 이 같은 소식을 <시사포커스>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구금될 당시 임신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않았었고, 후에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임신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경찰은 최대한 빠른 조사를 마치고 석방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원충식 팀장은 이에 대해서도 “강압적이거나 고압적인 수사는 전혀 없었다”며 “법적인 절차를 준수해 인권침해 부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왔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 유사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문제가 없었던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러면서 고인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결국 KT 등 이동통신사들의 불법적인 보조금 과다 지급 문제가 다수의 소비자들을 사기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물론, 변종 사기 범죄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 더해 이번과 같이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이 직간접적 영향을 받아 생을 마감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원충식 팀장은 취재 말미에 “통신사나 방통위 등의 허술한 감독이나 규제가 불법과 사기를 더 양산하고 있다”며 “정부에서 더 적극적인 정책으로 규제와 감독을 하지 않는 한 변종 사기는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by 100명 2013. 12. 5.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