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미국 법원에 "VCR를 가정에서 몰아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무제한 복사가 허용되는 VCR로 인해 영화산업이 벼랑의 위기에 몰렸다고 그들은 하소연했다. 그러나 미 대법원은 영화산업이 기존 비즈니스에 안주하기보다 혁신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을 주문했고, 그 덕에 현재 세계 영화산업은 수십억 달러대 홈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새롭게 확보할 수 있었다.

과거 100여 년간 방송산업의 메인 플랫폼 역할을 해 왔던 지상파 방송이 위기를 맞고 있다. 진원지는 인터넷이다. 29년 전 거대 영화자본이 VCR를 `악마의 기기`라며 거세게 반발했던 것처럼 조만간 지상파들은 인터넷을 악마의 네트워크라며 눈알을 부라릴지도 모른다.

그 대표적인 서비스가 최근 미국 방송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스트리밍 인터넷TV 업체 `에어리오(Aereo)`다. 지상파 방송을 안테나로 수신해 가입자에게 인터넷으로 실시간 서비스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클라우드를 통한 디지털 녹화 서비스(DVR)도 제공한다. 가입자들은 에어리오를 통해 ABC, CBS, NBC 등 미국의 지상파 방송을 실시간 시청할 수 있다. TV는 물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지상파 방송 입장에서 에어리오는 대표적인 해적방송이다. 자신들이 만든 콘텐츠를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대로 훔쳐서 가입자에게 제공하고 있는 도둑 기업이다. 당장 서비스 중단을 위한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적어도 재송신료라도 받아야 하는데 돈 한 푼 받지 못하면서 고스란히 가입자를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법원이 에어리오 서비스에 대해 합법 결정을 내렸다. 미 법원은 "가입자는 기본적으로 무료인 지상파 방송을 안테나를 통해 수신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에어리오 주장을 받아들였다. 에어리오는 가입자별 안테나를 할당해 운영하고 있다. 에어리오 데이터센터에는 동전 크기만 한 안테나 수만 개가 설치돼 있다. 가입자는 자기 집 대신 에어리오 데이터센터에 안테나를 설치하고 지상파를 수신하고 있는 셈이다.

주파수를 통해 방송을 전달하는 지상파 위력은 이미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고화질(HD) 실시간 방송을 끊김 없이 볼 수 있는 LTE 시대가 열리면서 이제는 이동통신사업자와도 경쟁하고 있다. 이통사들은 일반 TV를 통해 제공하던 인터넷(IP)TV를 모바일 기기에서 볼 수 있는 모바일IPTV로 가입자 몰이에 나서고 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에서 유료로 모바일IPTV를 보는 이용자가 총 240만명(11월 말 기준)을 돌파했다. 지난 1월 유료 가입자 125만명에서 1년도 안 돼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유선IPTV가 출범한 지 5년이 지나서야 800만 가입자를 확보한 것에 비해 눈에 띄게 빠른 속도다.

모바일IPTV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LTE 가입자가 전체 휴대폰 가입자의 절반에 다다르면서 스마트폰 방송 시청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LTE 통신망 속도는 최대 75Mbps로 HD급 동영상 서비스를 위한 최소 보장속도 5Mbps를 훌쩍 뛰어넘는다. 안정적인 방송시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신망 속도가 빨라지면서 많은 데이터를 보낼 수 있어 화질도 개선됐다.

이런 소비패턴이 자리 잡으면서 통신사들도 모바일IPTV 서비스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수조 원을 들여 LTE 통신망을 구축해놓고도 `킬러애플리케이션`을 찾지 못하고 있는 통신사들에 모바일IPTV는 `블루오션`인 셈이다.

기본적으로 모바일IPTV 서비스 요금에 주문형비디오(VOD) 이용 요금과 데이터 소모량이 늘어나면서 추가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지난 9일 지상파 방송 재허가를 의결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지상파의 심각한 위기를 논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김충식 방통위 부위원장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지상파 플랫폼 기능은 최근 5년 사이 10% 이상 빠져나갔고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며 "지상파 100년 역사에서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by 100명 2013. 12. 11. 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