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리는데 좌우 따로 있나 다양한 영화 만들고 보게 해야”

기사입력 2008-06-03 19:36
[한겨레] 강한섭 새 영진위원장

새로운 펀드들 서서히 움직여

영화산업 하반기쯤 저점 통과


강한섭(48·사진) 서울예술대 교수가 제4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에 영화계는 무난한 인물이 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진보건 보수건 반응이 비슷해, 어떤 이는 이런 평가가 나오는 상황 자체를 의아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홍릉 인근 집무실에서 만난 강 위원장은 세간 반응을 잘 안다는 듯 웃으며 “‘당신은 좌도 우도 아니라는데 혹시 회색분자 아니냐’는 질문부터 해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 영화를 살리자는데 좌파, 우파가 따로 있을 수 없으므로 진보의 프로그램과 우파의 정책을 모두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예술영화의 유통 환경을 개선해 다양한 영화가 숨쉴 수 있게 하고, 문화다양성협약이 초안대로 비준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보의 프로그램이라면, 디브이디 시장 복원 등 수요창출 방안이 우파의 정책에 해당할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강 위원장은 기존의 영진위 정책에는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는 “흥행 대작 한편만 나오면 붐이 만들어지고 스스로의 힘에 의해 확대재생산하는 게 영화산업”이라며 “공급 위주의 국가주도 투자확대 정책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99년 <쉬리> 대성공 이후 충무로에 돈이 몰려들어 제작사보다 투자사가 더 많아졌어요.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한 해 제작 편수 40편을 150편으로 늘리는 정책을 폈는데, 영진위가 중앙은행이라고 치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있는데도 이자율을 낮춰서 돈이 더 흔해지게 만든 겁니다.”

영화가 과잉공급되자 극장을 소유한 투자배급사들이 자기가 투자한 영화를 주로 틀었고, 스크린 독과점 현상이 심해졌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괴물>이 전국 좌석수의 68%를 차지했고, <캐리비안의 해적>은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900개 스크린을 차지했어요. 미국은 아무리 큰 영화도 스크린 점유율이 10%를 넘지 않고, 일본도 15~20% 수준이거든요.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가 박탈된 거죠. 규모의 싸움은 할리우드 영화에 유리합니다. 결국 메이저 극장들도 적자에 빠졌죠.”

그의 결론은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독립영화계를 위해 깜짝 놀랄 만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옛 허리우드극장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를 시내 중심가의 폼나는 곳으로 옮겨야 해요. 메가박스나 씨지브이에서도 비상업영화를 틀 수 있어야 하고요. 안정적 유통구조만 만들면 5억원 미만 저예산 영화도 100만 관객을 넘을 수 있어요. 그게 극장도 사는 길이죠.”

90년대 초반만 해도 비디오 판권이나 지방 판권만으로 제작비를 다 뽑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영화산업은 투자자들로부터 “무서워서 투자 못하겠다”며 외면받고 있다. “현재 한국 영화 투자수익률은 마이너스 40%입니다. 그런데 뛰어난 펀드 관리자들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영화판) 경기가 바닥을 통과하고 있다는 거죠. 올해 제작 편수가 급감한 건 경쟁작이 줄었다는 거니까요. 슬슬 새로운 펀드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올 하반기쯤 저점을 통과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by 100명 2008. 6. 3. 2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