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회장 후보, KT 사외이사 만나 사실상 업무 시작]

- 통신시장 패러다임 바꿀까
음성통화·데이터시장 포화상태, 새로운 수요 만들어 낼지 관심
인력, 경쟁사보다 6배 많아… 조직 혁신 역할도 떠안아

황창규 KT 최고경영자(CEO) 후보는 17일 밤 9시 KT 사외이사들과 만나 향후 이사회 일정을 점검하고 경영계약서에 담을 내용을 상의하는 것으로 KT 에서의 첫 업무를 시작했다. 내년 1월 임시 주총 이후 이사회와 CEO가 체결하게 되는 경영계약서에는 CEO의 전략산업 성장 목표, 혁신 계획 등이 담긴다. 이날 만남에서 그는 "영리를 추구하는 일보다는 좀 더 공익적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의견도 피력했다고 한다. 민간 기업인 삼성전자에서 공적 성격이 강한 통신 기업 CEO 후보로서의 입장 변화를 반영한 말로 해석된다.

17일 KT의 차기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선정된 황창규(60) 전 삼성전자 사장. 삼성전자와 반도체 신화를 이끌었던 황 내정자에게 KT 내부에서는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보여줄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과 내수 시장인 통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생길 정부와의 마찰에 대한 불안감, 이 두 가지 분위기가 공존한다
17일 KT의 차기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선정된 황창규(60) 전 삼성전자 사장. 삼성전자와 반도체 신화를 이끌었던 황 내정자에게 KT 내부에서는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보여줄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과 내수 시장인 통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생길 정부와의 마찰에 대한 불안감, 이 두 가지 분위기가 공존한다. /이진한 기자

18일에는 표현명 대표이사 직무대행으로부터 KT의 전반적 업무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사실상' CEO로서 업무에 들어갔다. 표 직무대행은 이날 황 후보자에게 KT의 유·무선 분야 통신사업 경쟁력과 비통신 분야 사업 현황, 글로벌 사업 개요, KT의 인력 구조, 경영 혁신 과제 등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며칠 내로 황 후보자의 업무 파악을 돕기 위한 태스크포스(TF)도 꾸려질 예정이다. 이석채 전임 회장 때는 공식 선임 이전에 40여명 규모의 팀을 꾸려 취임을 준비했다. KT와 KTF 합병 이전인 이 전임 회장 시절과 달리 황 후보자는 과거 어느 CEO 후보자의 TF보다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

KT 내부에서는 전문경영인 출신으로서 황 내정자가 보여줄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KT의 한 임원은 "관료 출신인 이 전 회장은 모든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마치 공무원 조직처럼 기업을 운영했다"며 "민간 기업에 오래 몸담았던 황 후보자는 이와 다른 리더십을 보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삼성 출신 반도체 전문가'가 공기업에 뿌리를 둔 통신 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도 관심이다. KT노조 등 일각에서는 삼성 출신이 CEO로 오면 KT가 삼성의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수직 계열화에 엮여들 것이라거나 KT가 삼성전자 제품의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시각을 의식한 듯 황 후보자는 17일 밤 KT 사외이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제 삼성과의 연(緣)은 끝난 사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KT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지 삼성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통신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 가져올까

KT 현황 정리 표

황 후보자가 통신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도 관심사다. 그는 삼성전자 사장 시절 수조원대의 반도체 설비 투자를 결정한 경험을 갖고 있다. 대규모 투자 경험을 통신 시장에 적용해 KT가 기존 통신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공격적인 경영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KT의 한 사외이사는 "포화 상태인 음성 통화와 데이터 시장을 놓고 통신업체들이 제로섬(zero-sum) 게임을 하는 현재 상황을 넘어 (황 후보자가) 주변 산업을 엮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낼 것이란 기대도 크다"고 말했다.

통신업계에서는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이 풍부한 황 후보자가 정부의 규제를 받는 내수 시장인 통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초기에는 정부나 경쟁사와 갈등을 빚을 우려도 나온다. 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했던 그의 경험상 통신 시장의 규제와 관행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신업계 고위 관계자는 "야구 경기를 하다가 축구 경기에 뛰어들었으니 처음에는 '게임의 룰'이 틀렸다고 보고 좌충우돌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3만개가 넘는 판매점·대리점을 통해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통신 시장이 그에게는 낙후되고 불합리한 구조로 비칠 수 있다. 당장 KT를 비롯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 이통사들이 국회에 계류 중인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개정안을 놓고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대립하고 있는 상황도 그에게 달갑지만은 않다.

조직 혁신이라는 만만치 않은 과제

직원 수 3만2000명을 떠안은 KT 조직을 효율적이고 가볍게 만드는 역할도 그의 몫이다. KT는 경쟁사보다 6배 이상 많은 인력을 보유해 경쟁 업체에 비해 매년 인건비만 1조5000억원 이상을 더 지출하는 구조다. 일방적 구조조정은 '실업'과 '고용'이란 측면에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선택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황 후보자의 앞에는 새로운 사업을 통해 전체 인건비당 매출·영업이익을 높여 가야 하는 쉽지 않은 도전이 가로놓여 있다.

by 100명 2013. 12. 18. 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