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신임 회장 후보자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삼성전자와 낙하산 인사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KT와 삼성전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황 후보자가 친정에 등을 돌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KT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우려가 나돈다. 만신창이가 된 조직을 추스르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 못지 않게 이석채 전 회장이 심어두고 간 낙하산 인사들을 정리하는 것도 신임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KT는 유선통신 부문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무선통신 부문도 정체상태다.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사업이 IPTV 부문인데 이 지점에서 삼성전자와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CPND(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 구도로 보면 KT는 네트워크 사업을 중심으로 플랫폼 사업을 벌이면서 최근에는 콘텐츠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네트워크는 없지만 디바이스 사업을 중심으로 플랫폼과 콘텐츠 사업에서 전망을 찾고 있다.

KT와 삼성전자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스마트TV의 트래픽 문제다. KT는 지난해 6월 삼성전자 스마트TV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한다면서 일방적으로 접속을 차단해 논란을 빚은 적 있다. KT는 여전히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사업자에게 추가 과금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삼성전자 등은 망중립성 원칙을 내세워 특정 콘텐츠나 서비스, 디바이스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명분에서는 KT가 밀린다고 볼 수 있다.

KT가 2009년 애플 아이폰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을 때도 삼성전자가 강하게 반발했고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KT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게 업계 정설로 통한다. 한때 아이폰-KT와 삼성전자-SK텔레콤의 경쟁구도가 형성되기도 했고 삼성전자는 옴니아를 공급다. 아이폰 도입은 이석채 전 회장의 최대 치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만약 황 전 사장이 KT 회장으로 있었다면 이처럼 삼성과 등을 지는 결단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최근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을 두고도 KT와 삼성전자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단말기 보조금 규제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은 마케팅 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통신사들의 숙원 사업이지만 삼성전자는 단말기 제조회사가 통신사에 지급하는 장려금 내역을 공개하는 조항이 영업기밀 유출 우려가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만약 황 전 사장이 KT 회장이 된다면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될 문제다.

   
 
 
낙하산 인사들을 정리하는 문제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이 전 회장 5년 동안 이 회장이 심은 낙하산 인사들이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 낙하산을 거둬내고 거기에 새로운 낙하산이 내려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 전 회장이 브리티시텔레콤 고문으로 있던 시절 도움을 줬던 김일영 사장을 비롯해 BT 3인방이 가장 먼저 날아갈 거라는 소문도 나돈다. 이 전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김 사장은 CEO 추천위원회 위원 자격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이 전 회장 취임 이후 부임한 낙하산 인사는 퇴임한 임원을 포함해 36명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맡았던 김은혜 전무를 비롯해 대선 캠프 홍보팀장을 맡았던 임현규 부사장, 초대 여성부 장관 후보자였던 이춘호 사외이사,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장치암 상무와 윤종화 KT캐피탈 감사, 인수위 팀장이었던 김규성 KT엠하우스 사장 등 이명박 정부 시절 낙하산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박근혜 대선 캠프 선대본부장이었던 홍사덕 경영고문과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인 김종인 경영자문, 국민행복기금 이사장을 맡았던 박병원 사외이사 등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동생인 오세현 전무와 오 전 시장 재임시절 정보화기획단장을 맡았던 송정희 부사장은 오세훈 라인으로 꼽힌다. 이 전 회장의 대학동문인 성극제 사외이사와 판사 출신의 정성복 부회장 등은 이 전 회장 개인 인맥으로 들어왔다.

KT 관계자는 “내년 초 신임회장 취임 이후 대규모 물갈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대다수 낙하산 인사들이 자의 또는 타의로 물러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고 말했다. 본인이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강도 높은 물갈이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인데 결국 신상필벌 과정에서 얼마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느냐가 황창규 체제의 조기 안착 여부를 가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황 전 사장이 KT 회장으로 낙점된 데 대해 업계에서는 익히 예견됐던 바라는 반응과 함께 일찌감치 청와대에서 삼성 출신을 낙점했다는 소문이 맞아떨어졌다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황 전 사장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와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집하는 삼성전자 출신의 황 전 사장이 노동조합과 갈등을 빚게 될 우려도 있고 통신 공공성을 복원하기에 적합한 인사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한편 황 전 사장이 KT 신임 회장 후보로 선임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17일 현대증권이 낸 매수 추천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황 전 사장이 나태함을 막고 끊임없이 위기론을 강조한 문화를 가진 삼성 출신이라는 점이 기업의 수익성 개선폭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고 “특히 비용 측면에서 체계적인 조직 관리 노하우를 통해 인력 조정을 기대해 본다”는 내용이다.

김미송 현대증권 연구원은 “과거 KT는 KTF와 합병 이후 5992명, 전체 직원의 16%를 명예퇴직시켜 일시적 명예퇴직금 8764억원을 지급하고도 연간 4600억원의 인건비를 절감함으로써 25%의 영업이익 성장을 이끌었다”면서 “KT의 내년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1조3700억원인데 과거 수준만큼 구조조정이 단행된다면 영업이익이 34%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 전 사장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어느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KT 안팎에서는 또 한 차례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어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그룹은 노동조합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황 전 사장은 노사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없다. 참여연대 등은 18일 성명을 내고 “반노조 경영에 익숙한 삼성 출신 황 전 사장의 등장으로 노동인권 침해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심각하게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KT 새노조는 성명에서 “이 전 회장과 권력형 낙하산 인사들이 보여준 각종 그릇된 행태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석채식 불법, 비리경영의 책임자들, 정치 낙하산 인사들을 이 기회에 정리하는 것이 쇄신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해관 새노조 위원장은 “국민기업 KT를 이끌게 될 신임 회장 후보에게 통신의 공공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도 18일 성명을 내고 “황 전 사장은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총괄사장을 역임하는 등 반도체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이나, KT의 주력인 유·무선통신 서비스 사업과 관련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기간통신사인 KT와 글로벌 단말기 제조사로 발돋움한 삼성전자가 유착된다면, 이는 관련 산업분야의 건강한 생태계에 치명적 악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미 삼성전자에서는 긍정적인 일들이 생기길 바라는 분위기이며, KT가 애플로부터는 보조금을 지급받지 않는 것에 대해 삼성전자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관계가 풀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현재 통신사와 제조사 간의 유착관계를 고려할 때 황 전 사장은 삼성전자와 관계에 대한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할 것이며, 향후 인사 및 전략 등에서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by 100명 2013. 12. 19. 0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