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KBS 기자가 “부끄러운 선배여서 저도 안녕치 못합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18일 오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 부근에 붙였다. 이경호 기자는 현재 전국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 신분으로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89학번 출신이다.

그는 언론인이자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움을 느껴 직접 손으로 쓴 대자보를 붙이게 됐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KBS·언론노조와는 상관없는 개인 자격으로 대자보를 붙이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대자보에서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뜻한 대로 방송기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역사의 현장에 서 있고자 언론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펜과 마이크를 들 수 없습니다. 제가 일하는 일터인 공영방송이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고 사실을 축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 이경호 KBS 기자가 18일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근처에 붙인 대자보.
 

   
▲ 이경호 KBS기자가 쓴 대자보.
 
이 기자는 철도노조 파업,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국가기관의 선거부정 규탄 등을 언급하며 “대학생들이 안녕치 못한 현실을 말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수구보수언론과 공영방송은 매일마다 무척이나 ‘안녕한’ 소식만 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권력의 무기가 되어 약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불공정한 언론 상황을 언급하며 “그래서 후배님들이 철지난 대자보를 다시 꺼내 진실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고 개탄한 뒤 “그런데 그 곳(불공정 언론)이 제 일터인 언론현장이어서, 제 동료들이 그곳에서 펜과 마이크, 카메라를 들고 있어서, 그래서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적었다.

이경호 기자는 그러나 “안녕하지 못해도 싸우겠습니다. 언론이 밉고 싫지만 바꿔야 하기 때문에, 싸우는 사람이 있어야 희망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언론인의 길을 선택하는 후배들이 부끄럽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안녕하도록 싸우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경호 기자는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맡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종편특혜 환수 등을 위해 프레스센터 앞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상황이다. 

   
▲ 이경호 기자가 18일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근처에 붙인 대자보.
 
그는 대자보 말미에 “MB로 인해 고대인임을 부끄러워했지만, 후배들로 인해 고대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못난 선배”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글을 마쳤다. 이번 대자보는 주현우 학생을 시작으로 재학생 중심으로 이어지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릴레이에 선배가 화답한 것으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이경호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후배들 보기가 부끄러워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언론이 오죽 못났으면 대자보가 유행을 하겠나”라며 “선배들은 좋은 시절을 보냈다. 선배들이 못난 탓에 후배들이 고생한다”고 말했다.
by 100명 2013. 12. 19. 0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