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배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석채 전 KT 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2013.12.19./ 연합뉴스

 ‘횡령·배임’ 검찰에 소환된 이석채 전 KT 회장
앞에선 개혁, 뒤에선 측근 인사, 경영 악화는 남의 탓
검찰 수사로 개인 비리 밝혀질까?

이석채 전 KT 회장은 취임 뒤 누구보다 개혁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측근들을 줄줄이 요직에 앉히고 권력 실세와 가까운 낙하산 인사를 수시로 받아들였다. 반면 직원들을 ‘KT놈들’이라 불렀다고 한다. 무분별하게 회사를 인수하면서 경영도 방만해졌다. 그뿐 아니다. 회장 재직 기간 5년 동안 개인 비리에 대한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말 많고 탈 많던 이석채 회장이 물러났다. 이명박 정부 출범 한해 뒤인 2009년 1월 ‘통신업계 맏이’ KT호의 선장으로 취임한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KT와 KTF의 합병을 이뤄내고 아이폰을 도입해 스마트폰 혁명의 불을 댕기는 등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정치권 ‘낙하산’ 인사 대거 등용, 부동산 자산 헐값 매각 등 구설도 끊이지 않았다. 그 탓에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많았지만 그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검찰 수사의 ‘칼날’ 앞에서 그는 두 손을 들었다. 참여연대가 고발한 이 회장의 배임 등 혐의를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지난 10월22일, 10월31일, 11월11일 세차례에 걸쳐 이 회장과 주요 임직원들의 사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렇듯 매주 압수수색을 하는 경우는 특별수사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1차 압수수색 뒤 출장지인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1급수에서만 사는 물고기”라며 자신만만해하던 이 회장은 2차 압수수색 뒤인 11월3일 “임직원 여러분들의 고통”을 이유로 들어 회장직 사퇴를 선언했다. 검찰이 KT의 비자금 조성 방법과 계좌를 확인했다는 소문이 돌던 즈음이었다.

11월12일 KT 이사회가 사의를 수용하면서 5년 가까운 그의 기업인 생활은 막을 내렸다.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불명예 퇴진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사법 처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KT에 남긴 상처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그의 재직 기간 5년 동안 회사는 ‘올래 KT’(이 회장과 함께 낙하산으로 내려온 임원)와 ‘원래 KT’(KT에서 커온 임직원)란 자조적인 말이 돌 정도로 구성원들 사이에 분열과 열패감이 커졌다. 이동통신 시장에서 가입자 이탈세가 지속되는 등 경영도 훨씬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과연 이 전 회장이 KT에 남긴 상처는 무엇이었을까?

PCS 사업자 선정 비리로 한때 구속

1969년 행정고시 7회에 합격해 경제기획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이 회장은 한 시대를 풍미한 관료였다. 사무관~과장 시절 그는 똑똑하고 추진력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내부 신망은 그에 비해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관료 집단 내부에서의 경쟁을 통한 선발 대신 청와대라는 우회로를 거쳐 관료의 최고봉인 장·차관 고지를 밟았다. 1980년대 초반 아프리카를 순방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수행하다 눈에 띄어 청와대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이런 경력 때문인지 그가 예산실장으로 임명돼 친정(재정경제원)에 금의환향했을 때 내부에서는 ‘낙하산’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문민정부(김영삼 정부) 출범 뒤엔 ‘소통령’ 김현철(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씨와의 경복고 선후배 인연을 바탕으로 정보통신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련의 길을 걷게 된다. ‘문민정부 최대 이권 사업’인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 비리 의혹이 감사원 감사를 거쳐 대검 중수부로 넘어가자 사업자 선정 당시 정통부 장관이던 이 회장에게 칼날이 겨눠졌다. 이 회장은 외국에 머물며 검찰 수사를 피했고, 그사이 정홍식 전 차관과 이성해 전 정보화기획실장 등 부하 직원들이 검찰에 불려가 구속되는 등 곤욕을 치렀다.

이 회장은 범죄인인도청구 등 우여곡절 끝에 3년여 만에 귀국해 특정 회사에 유리하도록 평가 방식을 바꾼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2001년 4월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명예는 회복했지만 뒷말은 남았다. 혐의 결백 여부와 별개로 수사를 피해 혼자 도망하고 부하 직원들만 감옥에 가게 한 이 회장의 처신은 주변의 비판을 받았다.

여하튼 이 일을 끝으로 ‘무대’에서 사라진 이 회장은 2009년 초 KT 최고경영자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전임자인 남중수 사장이 정권의 퇴진 압력에 버티다 검찰 수사를 받으며 불명예 퇴진한 뒤였다. SK C&C 사외이사였던 이 회장은 ‘경쟁사나 공정거래법상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의 임직원과 최근 2년 이내 임직원은 이사 자격이 없다’는 정관에 저촉돼 이사로 선임될 수 없었지만 정관을 바꾸고 단독으로 사장추천위를 거쳐 KT 수장 자리에 올랐다. 이는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힘을 보탠 김영삼 전 대통령 쪽의 ‘부탁’에 따른 결과라는 게 정설이다.

이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자회사인 KTF와의 합병을 추진했다. 유선전화를 주축으로 하던 KT가 통신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무선(이동통신) 쪽 KTF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KT의 한 직원은 “KTF와의 합병은 남중수 사장 시절에도 시도한 숙원사업이었다. 하지만 정부(당시 방송통신위원회)가 꿈쩍도 안 했고 경쟁사들도 강하게 반대해 무산됐다. 그런데 취임한 지 몇 달 만에 이 회장이 합병을 이뤄내자 ‘새 회장이 역시 거물이구나’라는 분위기가 퍼졌다”고 말했다.

2009년 6월1일 통합 KT를 출범시키고 회장 자리에 오른 그는 직원 3천명을 현장으로 전환 배치하고 6천명을 명예퇴직 형식으로 내보냈다. 또한 헬로(hello)를 거꾸로 한 말로 역발상의 혁신적 사고란 뜻을 담은 ‘올레(olleh)경영’을 새 경영이념으로 제시했다. 그해 11월에는 당시 이름마저 생소한 애플 아이폰을 독자적으로 도입해 스마트폰 혁명의 불씨를 댕겼다.

집토끼, 산토끼 모두 놓친 KT

이후 비씨카드와 금호렌터카 등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10조원대 초반이던 매출은 2010년 20조원을 넘겼다. 미래창조과학부의 한 고위 관료는 “방통위가 해야 할 중요한 방송통신 정책 집행을 사실상 이 회장이 대신 하던 시절”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이 오늘날 글로벌 업체로 발돋움한 데는 아이폰을 도입해 삼성으로 하여금 스마트폰 개발에 적극 나서도록 자극한 이 회장의 공이 크다는 평가도 많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즈음까지 이 회장의 행보는 ‘과보다 공이 많다’고 평가할 수 있다. 6천여명 명예퇴직 등 ‘강공 드라이브’가 파열음을 내기도 했지만 ‘공룡 KT’의 변화와 개혁을 이끌기 위해서는 이 회장 정도의 존재감 있는 인물이 있어야 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이폰 도입 뒤 이 회장은 별달리 통신시장 트렌드를 주도하지 못했다. 이 회장은 통신을 뛰어넘어 클라우드·보안·콘텐츠 등에 금융(비씨카드)과 렌터카(금호렌터카)까지 더한 ‘정보기술(IT) 종합 컨버전스(융합)’ 그룹을 염두에 두고 새 사업 확장에 나섰다. ‘통신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아이폰 성공’ 경험을 가진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일을 밀어붙였다.

새 사업 분야 진출과 관련해 비씨카드와 금호렌터카 등 실체가 명확한 대형 인수·합병이야 별 문제가 없었지만, 수십억~수백억원 규모의 콘텐츠와 교육 분야 진출이나 인수·합병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이동통신 시장에서 밀리는 분위기도 역력해졌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매달 수만명씩 가입자가 이탈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한 관료는 “이 회장이 통신시장을 쉽게 봤다. 집토끼(통신)를 놓치고 산토끼(신사업)도 다 놓치게 된 게 KT의 가장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회사에 대한 외부의 부정적 평가가 늘어갔다. 과다한 정치권 ‘낙하산’ 인사 영입, 제주도 7대 자연경관 선정 국제전화 사기 논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송치, 친·인척 특혜 의혹, 부동산 헐값 매각 논란, 종합편성채널 지분 출자 등 다른 회사에서는 한두 개 일어나기도 힘든 논란이나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전국에 산재한 전화국 등 알짜 부동산을 매각하고,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주주 배당에 사용한 행태도 조직 안팎의 우려를 불러왔다.

이런 비판에도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낙하산’ 영입과 관련해 회사 쪽에서 “어느 회사나 회사를 위해서는 권력기관 출신들을 영입한다”고 항변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그 정도가 심했다. 불법 도청 조직을 운영하거나, 여당에 선거 자금을 지원하고 국정에 개입하는 등 최악의 범죄행위를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은 김기섭·오정소·임경묵씨 등 국가정보원(안기부) 출신들을 고문으로 영입해 매달 수백만원의 급여를 준 게 대표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회사가 아니라 회장을 위한 영입’ ‘회장 유지 비용을 회사가 내고 있다’는 자조감 섞인 말이 직원들 사이에 돌았다.

내부적인 동요도 커져만 갔다. 개혁을 강조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서 점차 독선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한 KT 직원은 “취임 초·중반 이 회장이 ‘KT놈들’이란 표현을 종종 쓰더라. 마음속으로 KT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바로 드러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료는 “한두 해도 아니고 취임 뒤 내내 직원들을 ‘너희는 개혁돼야 할 존재야’라며 혼내고 쪼고 있다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더라”고 말했다.

이른바 ‘원래 KT’들이 홀대를 받으며 그 빈 공간은 통신 전문성이나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올래 KT’가 채워나갔다.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김일영·김홍진 사장 등 브리티시텔레콤(BT) 출신 인사들이 대표적이다. 이사회 의장, 사장, 그룹 인사총괄 전무 등 핵심 요직을 경복고 동문으로 채운 것도 ‘경영 사유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미래창조과학부의 한 고위 관료는 “누가 뭐래도 KT 사람들은 통신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그런데 이 회장 취임 뒤 그런 사람들이 다 날아갔다”며 아쉬워했다.

회사 안팎에서 민심을 잃어가면서도 이 회장은 끝내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너무 똑똑해서’ ‘자기확신이 강해서’라는 답이 많다. 한 KT 직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외부에서 온 사람들, 아부꾼들만 회장 주변에 넘쳐났고 시스템이 아니라 이 회장의 개인 판단이나 의중에 따른 경영이 심화해갔다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한 경쟁사 임원은 “아이폰 도입으로 개혁의 선도자로 자리매김한 뒤 (이 회장 스스로) 방심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잘되면 내 덕이고 못되면 네 탓? 

자신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자신에 대한 쓴소리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잘못을 아랫사람들 탓으로 돌리는 ‘최악의 리더십’으로 이어졌다. 지난 9월 초 서울 광화문 사옥에서 열린 ‘KT LTE-A 넘버원 결의대회’ 때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당시 “주인정신이 없고” “바깥에다 끊임없이 회사를 중상모략하는” 임직원이 많다며, 이들을 발로 “걷어차”고 “총부리를 겨누고 나가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반대는 역모인 만큼 그 사람을 회사에서 쫓아내겠다는 주장을 최소한의 품격조차 갖추지 않은 방식으로 쏟아낸 셈이다.

지난 11월3일 사의 표명을 담은 전자우편에서도 이런 인식은 드러났다. IT 시스템 혁신, 글로벌 시장 진출 등을 자신의 업적이라며 자화자찬하더니 현재 경영상 어려움의 원인은 경쟁사에 비해 과도한 직원 수로 돌렸다.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네 탓’이란 얘기다.

이렇듯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자기확신에 가득 찬 그는 ‘검찰 수사’라는 물리적 힘 앞에서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가 회사에 남긴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KT로서는 망가진 유통망 등 경영 정상화가 급선무다. 정부(검찰)가 민영화된 공기업의 경영권에 관여하는 퇴행적인 관례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사회적 과제다.

과거를 두고 ‘만약’을 얘기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이 회장이 지난해 초 3년 임기를 마치고 연임 욕심을 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독립적인 인사들로 이사회를 꾸려 자신의 독선을 스스로 경계할 수 있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의 가장 큰 잘못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적인 믿음을 배반했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한 KT 직원의 말이다.

“(총수가 황제경영을 하고 또 자식에게 승계되는) 재벌보다는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갖춘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KT를 선택했는데,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재벌 총수는 회사 재산을 함부로 팔지도 않고, 경영에 실패하면 (사재를 내놓는 등) 나름 책임을 진다. 공기업은 감사원 감사 등 정부 감시를 받는다. 그런데 여기는 (경영진이) ‘낙하산’으로 와서 마구 해먹고 떠나면 그만이다. 그래도 남중수 사장 시절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이석채 회장 체제에서 너무 심해졌다. 그래놓고서 ‘1급수에 사는 물고기’라니 직원들이 다 욕했다.”

by 100명 2013. 12. 19.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