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에 사상 최대 규모인 106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동통신사들이 기기당 27만 원이 넘는 불법 보조금을 지급해 이용자를 차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거액 과징금 부과에도 시장의 혼탁함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보조금 지급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2일 서울 시내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을 찾았다. 이곳은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의 상품을 모두 취급해 3사의 보조금 동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기자는 판매점주 이모 씨의 협조를 얻어 새해 첫날 보조금 변동 내용을 직접 확인해 봤다.

그 결과 이동통신사들은 휴일이었던 1일 하루 동안 기기당 보조금 규모를 10차례 이상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한 곳이 보조금을 늘리면 한 시간도 안 돼 다른 곳이 바로 따라 올렸다. 일부 인기 기종은 반나절 동안 가격 변동 폭이 최대 29만 원에 이를 정도였다. 그에 따라 휴대전화 판매 가격도 계속 바뀌었다.


● 판매점주 “우리도 헷갈릴 정도”


일반적으로 이동통신사가 지급하는 보조금은 가입 형태(신규, 보상, 번호이동)나 요금제, 단말기 종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기자는 최근 인기 있는 휴대전화 모델 중 하나인 삼성전자 ‘갤럭시노트 3’(출고가 106만7000원)에 대한 보조금 변동 내용을 들여다봤다. 요금제는 월 7만 원대, 가입 형태는 이동통신사를 옮겨 가입하는 ‘번호이동 가입’을 기준으로 했다.

그 결과 갤럭시노트 3에 대해 지급되는 보조금은 30만 원∼53만 원 사이에서 움직였다. 오전 11시 12분 A통신사가 보조금을 30만 원에서 37만 원으로 올리자 30여 분 뒤인 11시 40분에 B통신사가 보조금을 43만 원까지 인상했다. 오후 1시 30분경에는 A통신사가 다시 보조금을 53만 원으로 크게 올렸고, 이에 질세라 B통신사도 오후 3시 59분에 53만 원으로 따라 올렸다. 오후 4시 10분이 되자 A통신사는 보조금을 30만 원으로 확 내리며 ‘치킨게임’에서 먼저 손을 털었다. C통신사는 이날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 30만 원대 보조금을 유지했다.

판매점주 이 씨는 “보조금 변경 공지는 각 이동통신사별로 문자메시지를 통해 내려오는데 하루에도 10차례 이상 바뀌어 우리도 헷갈릴 정도”라며 “밤낮없이 경쟁이 치열한 업계라 오후 11시에도 공지가 온다”고 말했다.


소비자 권리는 ‘복불복’

보조금 정책이 짧게는 한 시간 단위로 오락가락하다 보니 같은 날 같은 판매점에서 같은 기기를 골라 같은 이동통신사에 가입해도 소비자들이 치르는 값은 제각각이다. 1일 이 가게를 기준으로 보면 어떤 소비자는 갤럭시노트 3를 남들보다 최대 23만 원 싸게, 혹은 비싸게 구입하게 된다.

이 씨는 “갤노트 3 단말기를 60만 원에 주겠다고 30분 넘게 설득해서 고객을 붙잡았는데 상담 중 보조금을 줄인다는 문자가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정말 죄송하다. 가격을 잘못 봤다’며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가격 흥정을 다 했는데 보조금을 더 주겠다는 공지가 오면 차액은 판매점주의 몫이 되기도 한다. ‘왜 어제 산 친구한테는 싸게 팔고 나한테는 비싸게 파냐’고 따지는 손님도 나온다. 그는 “이러다 보니 통신시장에 신뢰라는 게 없고 소비자들도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는 복잡하다. 보조금만 해도 △단말기 제조사가 특정 모델의 점유율 상승이나 재고모델 소진을 위해 뿌리는 보조금 △이동통신사 본사에서 가입자 유치를 위해 뿌리는 보조금 △이동통신사 본부·부·팀 등 하위 조직들이 가입자 유치 실적 달성을 위해 뿌리는 보조금 등으로 다양하다. 여기에 판매점주가 얼마만큼의 이익을 남기느냐에 따라 가격이 또 달라진다.

이 씨는 “한 골목에서도 가게마다 휴대전화 판매 가격이 다 다르다”며 “방통위가 단속으로 보조금 구조를 바로잡겠다고 하지만 단말기 출고가격 자체가 인하되지 않고서는 보조금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by 100명 2014. 1. 6. 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