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빅데이터 정책도 ‘불통’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A사는 지난해 도로교통공단에서 서울 경기 지역의 교통정보 데이터를 받아 사용하려다 1000만 원을 날렸다. 데이터는 공짜였지만 공단 측에서 보안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전용선을 깔아야 한다고 했다. A사는 KT에 월 100만 원에 2년 약정을 걸고 전용선을 깔았다. 하지만 6개월간 테스트를 해보니 데이터의 정확도가 떨어져 도저히 쓸 수 없었다. 결국 KT에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해지했다.

A사 대표는 “지난해 정부가 공공데이터를 무료로 개방한다고 해서 ‘공공데이터 포털’(data.go.kr)도 살펴봤지만 쓸 만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며 “유가(油價) 정보와 고속도로 교통정보, 날씨 정보, 지도 정보 등 유료 데이터를 쓰다 보니 1년에 콘텐츠 비용만 3억 원 이상 들어간다”고 말했다.


● 부실하고 쓰기 불편한 공공데이터


정부는 지난해 6월 공공기관들이 보유한 빅데이터를 무료로 공개하는 ‘정부 3.0’을 통해 창업을 유도하고 일자리 15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3.0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도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데이터 개방이 일자리 창출로 계속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며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계에선 “공개된 정보가 부실하고 활용하기 불편하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5일 현재 공공데이터 포털에는 697개 공공기관이 7004개의 데이터와 504개의 오픈 API(앱 제작 인터페이스)를 올렸다.

공공데이터 포털에서 ‘주차장’을 넣어 검색하면 데이터 검색 결과 34건 중 공영이 아닌 민간 주차장 정보는 거의 안 나온다. 경기 부천시는 ‘시내 차집관로 공사 현황’이라는 엉뚱한 자료를 올렸고 광주시가 11월 올린 ‘주차장 확보 현황’에는 구별 주차장 수와 주차 가능한 차량 수, 주차장 확보율만 있다. 막상 소비자에게 필요한 주차장 위치와 요금, 운영시간에 대한 정보는 없다.

기관마다 공개 형식도 다르다. 공영주차장 정보를 충북 청주시는 확장자가 JPG인 이미지 파일로, 경기 과천시와 구리시는 한글 문서로, 인천 계양구는 전자문서용 PDF 형태로 공개했다. 이를 활용하려면 모두 엑셀 같은 프로그램에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같은 내용을 기관별로 다르게 표시한 사례도 있다. 스타트업 B사 대표는 “동일한 버스정류장의 이름을 서울시는 ‘신논현역 22-410’으로, 경기도는 ‘신논현역. 우신빌딩 90-230’으로, 인천시는 ‘교보타워 31-057’로 분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색만 되고 정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성범죄자 지역별 통계’라는 게시 글을 조회하면 여성가족부가 “부작용이 우려돼 공공데이터 포털을 통한 개방은 어렵다”고 적어놓은 내용이 나온다.


공짜가 아닌 공공데이터

일부 기업은 공공데이터를 쓴다는 이유로 무료 용역을 떠맡기도 한다. 사실상 유료인 셈이다. 한 대기업은 2012년 서울시에서 버스 관련 정보를 받는 대가로 대중교통 활성화 캠페인을 해줬다. 경기도에는 ‘경기 버스’ 앱과 홈페이지 개선 작업을 해주기로 했다. 부산시로부터는 시내 모든 버스정류장에 부착할 QR코드와 근거리무선통신(NFC) 태그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배(운영비)보다 배꼽(협찬비)이 더 크다”고 하소연했다.

공공기관들은 돈이 되는 정보는 유료로 팔기도 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은 7월 지형, 식생, 도로, 철도 등을 표시해놓은 지도 ‘온맵’을 공개했다. 그러나 정보가 불충분한 데다 상업적 용도로 쓸 수 없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좌표 값 등 각종 전자정보를 넣은 데이터는 유료로 판다. 한국도로공사도 전국 고속도로의 교통량과 통행속도, 폐쇄회로(CC)TV 정보 등을 담은 빅데이터는 판매하고 있다.


“관보다 민이 원하는 정보 줘야”

해외에선 공공데이터를 통한 창업 성공사례들이 여럿 나오고 있다. 미국의 온라인 부동산 서비스기업 질로닷컴은 2011년 6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질로닷컴은 미국 정부의 지리정보시스템(GIS) 정보와 인구통계 정보, 학군 정보 등을 활용해 부동산 매매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조현정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질”이라며 “관(官)보다 민(民)이 원하는 정보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공공데이터를 단순히 개방하는 게 아니라 국가 간 정보를 통합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는데 ‘전자정부 1위’라는 한국은 이제 걸음마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by 100명 2014. 1. 6. 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