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원, 이통사 손 들어..국내 갈등 재점화할까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 논란이 다시 일 것 같다. 미국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이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버라이즌의 손을 들어줬다. 우리로 치면 KT가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이 KT 편에 선 격이다. 통신사와 인터넷 콘텐츠업체 간의 망 중립성 갈등은 세계적인 논란거리다. 이번 판결은 필연적으로 국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망 중립성이란 통신사들이 트래픽 유발 등을 이유로 자의적으로 망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통신망을 차별 없이 개방해야 한다는 얘기다. 통신망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이통사들엔 달갑잖은 원칙이다. 실제 2년 전 KT 이석채 회장은 적정한 이용대가를 지급하라며 삼성 스마트TV의 통신망 접속을 제한한 적이 있다. 스마트TV가 대용량 데이터를 주고받는 만큼 별도 이용료를 내라는 게 KT의 요구였다.

논란은 정부가 중재자로 나서면서 표면적으론 수그러들었다. 방통위는 2011년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내놓았고, 지난해 12월엔 미래부가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이용과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에 관한 기준'을 발표했다. 정부는 망 중립성 원칙을 견지했다. 하지만 KT·SK텔레콤·LG U+ 등 이통사들의 불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버라이즌은 인터넷에서 영화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즈니, 넷플릭스 등에 과금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유튜브, 페이스북과 같은 콘텐츠 업체들도 지금과 같은 '무임승차'는 어렵게 됐다.

상식적으로 스마트TV나 대형 포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은 분명 통신망 과부하의 원인이 된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이들이 통신망 신증설 비용의 일부를 대는 게 타당해 보인다. 문제는 그 부담이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이통사가 카카오톡에 과금했다고 치자. 카카오톡은 서비스 유료화 등을 통해 그 비용을 소비자로부터 충당하려 들 것이다.

사실 하드웨어(망)를 깐 통신사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콘텐츠 업체는 공생 관계다. 좋은 콘텐츠가 많아야 접속자가 늘고, 접속자가 늘어야 통신사의 통신료 수입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콘텐츠 업체들을 오로지 제 잇속만 챙기는 얌체로 보는 것은 무리다. 양쪽 주장에 다 일리가 있다. 정부는 이견을 조정하되 소비자 부담이 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by 100명 2014. 1. 21. 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