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 한국 영화, 죽을 각오로 변화해야"

기사입력 2008-05-30 03:37
강한섭 신임 영진위원장은 세대·이념 간 화해를 강조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영화진흥위원회 강한섭 신임 위원장

영화는 콘텐츠의 왕… 방송·통신과 융합 추진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책임의식 느껴


"지금 한국 영화는 솔직히 공황(恐慌)입니다. 변화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자세로, 권한만 휘두르는 게 아니라 책임을 지는 자세로 앞장서겠습니다."

하루 전 임명장을 받은 영화진흥위원회 강한섭(50·서울예대 영화과 교수) 신임 위원장을 29일 서울 홍릉 근처 영진위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해 수익률 -40%를 기록한 한국영화는 그의 표현대로 절체절명(絶體絶命). 2007년 112편이었던 한국영화 개봉 편수가 올해는 50편으로 곤두박질할 전망이다. 게다가 김대중 정권 초기인 1999년 5월 출범한 영진위는 보수적 영화단체들로부터 지난 10년간 이념에 치우친 지원을 했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그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수익률 회복'과 '세대·이념 간 화해'를 꼽았다.

―축하만 하기엔 한국 영화 처지가 너무도 기구하다. 수익률 회복에 대한 대안은.

"기존 영화 요금 인상이나 제작비 절감은 솔직히 큰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본다. 나도 영화가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보지만 시장이나 관객이 원하겠는가. 전 세계적으로도 디지털 콘텐츠의 요금은 제로(0)로 수렴하고 있다. 우선 단기 대안으로 DVD 등 부가시장 복원, 정책 대안으로 '방통'이 아니라 '영방통'(영화·방송·통신) 융합이 되도록 발로 뛰겠다."

―영방통 융합이라면.

"방송과 통신 사이에서 흡수당하지 않고 틈새를 찾아 역할을 하겠다. 핵심은 역시 스토리와 콘텐츠이며, 콘텐츠의 왕은 영화라고 믿는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영화는 사실상 가장 오래된 벤처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다들 힘들다고 하지만, DVD 등 부가 시장에서도 아직 우리가 해보지 않은 여지가 있다."

―세대·이념 갈등에 대해서는.

"일부 세력이 영화계 내에서 소위 이너 서클을 만들어 공공 자원을 독과점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꼴통'으로 배척한 상황이 영화계 내에서도 있었다. 여기에 대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적 청산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 코멘트(언급)는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 이후엔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두 번의 정권을 거치며 3000억원의 발전 기금이 영화에 투입됐다. 앞으로도 5년간 무려 4000억원이 지원되는 것으로 안다. 영진위 지원이 과연 효율적이었는지 의문이다.

"영진위 역대 위원장들이 많은 일을 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백화점식 사업이었다는 것. '선택과 집중'을 잘해 나가도록 하겠다. 하나를 하더라도 철저하게 정교하게 추진하는 사업이 되도록 하겠다."

―9인 위원회 체제에 대한 비판도 있다. 권한만 있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산업이 이렇게 몰락했는데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다. 오늘부터 영진위 관용차량을 타게 됐는데, 리스 값만 한 달 100만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게 다 국민 세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변화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자세로 영진위 직원들과 함께하겠다."

―교수 출신으로서 추진력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웃으며) 책상물림만은 아니다. 20여 년 동안 평론을 하며 현장도 잘 파악하고 있다. 2002년에 흥행한 '해적, 디스코왕 되다'는 내가 기획,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월드컵 직전 주에 개봉해 '피'를 봤지만, 그래도 첫 주말 흥행 1위에 130만 명이나 들었다."

―영화광 출신인데 좋아하는 작품과 감독은.

"대학 시절(경희대 불문과) 영화 서클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과 이런 놀이를 즐겼다. 그때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함께 영화보고 나면 허름한 여관방에서 소주와 오징어 나눠 먹으며 밤을 보냈다. 그리고 각자의 '베스트 10'을 꼽았다. 나는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59)처럼 창의적·실험적 영화도 좋아하지만, 'Singin' In The Rain'(사랑은 비를 타고·1952)처럼 낙관을 지닌 할리우드 영화도 좋아한다. 한국 영화 진흥을 기대해 달라."
by 100명 2008. 5. 30. 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