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에 유리조각이 흐른다?

기사입력 2008-05-28 07:51 |최종수정2008-05-28 08:39

헬스조선DB

앰풀 주사액 안정성 논란

서울대 박광준 교수 개봉 실험, 유리 파편 수백 개 나와 녹색소비자연대 "혈관 막거나 세포 돌연변이 일으켜" 전문가들 "먼지만큼 작은 크기… 인체 무해하다" 주장


유리로 만들어진 앰풀(ampoule) 주사제의 안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대 약대 박광준 교수는 첫째, 5개 제약회사의 유리앰풀 주사제를 개봉하는 실험을 한 결과 80.7~99.1%의 제품에 유리파편이 혼입(混入)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둘째, 유리 파편의 수를 조사하기 위해 4개의 유리앰풀(20mL)을 개봉한 결과, 5~70㎛ 크기의 유리 파편 100~212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최근 녹색소비자연대를 통해 공개했다. 박 교수는 "유리앰풀 주사제를 오래 맞으면 유리 파편이 주사액과 함께 혈관을 타고 들어가 혈관을 막거나 충혈을 일으킬 수 있으며 혈전을 유발할 수도 있다"며 "또 폐나 간, 신장, 대장 등에 파편이 쌓이면 세포의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녹색소비자연대는 토끼에게 매일 유리조각이 섞인 주사액을 정맥에 주사하자 32일째 되는 날, 폐의 모세혈관에서 유리조각들과 함께 충혈·혈전 현상이 발견됐으며, 1년이 지난 뒤엔 토끼의 폐에 '만성규폐증(진폐증의 일종)'이 발견되고, 신장·비장·장벽에서도 유리조각과 함께 거대변이세포가 발견됐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를 함께 공개했다. 지난달 일본과 우리나라가 공동 주관한 심포지움에 발표된 쥐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소비자연대는 밝혔다. 소비자연대에 따르면 병원에 장기 입원한 환자는 보통 1개에서 많게는 6개까지의 주사제를 매일 맞는데, 국내병원에서 쓰이는 주사제의 35~40%가 유리앰풀 주사제다.

소비자연대는 이와 같은 문제점 때문에 미국에서는 비타민 C제제 등 화학분자가 안정치 못해 고무에 닿으면 성질이 변하는 일부 약품(약 20%)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리앰풀이 아닌 '바이알(고무마개가 있는 병)'을 쓰고 있으며, 유리앰풀 제품에는 파편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필터(앰풀에서 주사기로 주사액을 빨아들일 때 이물질을 거를 수 있게 만들어진 기구)를 부착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리앰풀이 무해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현재로선 더 많다. 이들은 첫째, 유리앰풀 파편은 공기 중에 떠 다니는 먼지만큼 작은 크기며, 일상 속에서 호흡을 통해 흡입하는 규소, 황 등의 물질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중앙대 약대 김대경 교수는 "청산가리 같은 독극물은 1g만 먹으면 즉사하지만 100만분의 1 정도의 양을 먹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와 비슷한 수준의 유리앰풀 파편을 문제 삼는 것은 '논쟁을 위한 논쟁'일 뿐이다"고 말했다.

둘째, 동물 실험 결과를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지금껏 유리앰풀 파편 실험에 대한 논문은 1940년대 1편, 60년대 1~2편, 올해 초 1편 정도가 발표됐다. 그나마 모두 동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화여대 약대 신윤용 교수는 "쥐나 토끼 등 실험용 동물은 청정지역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길러진 동물로 사람보다 면역력이 엄청나게 약하다"며 "사람은 면역체계, 대사체계, 혈관 크기 등에 있어 확연히 다르며, 따라서 동물실험 결과만으로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롭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셋째, 설사 유리조각들이 인체 내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곧 배출된다는 설명이다. 김대경 교수는 "5~70㎛크기의 유리 파편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전혀 날카롭지도 않고 사람 혈관에 들어가서도 상처를 낼 수 없기 때문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생각하면 안 된다"며 "설혹 이런 조각들이 혈관 안으로 들어 가더라도 다른 유입 물질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난 후 대변, 소변, 객담 등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정청 김인범 사무관은 "유리앰풀은 194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사용돼 왔지만 인체에 유리조각이 발견됐다거나 건강에 이상을 일으켰다는 보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이번 실험을 통해 유리조각이 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밝혀졌지만 이 물질이 인체에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만큼, 확실한 연구자료가 나올 때까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by 100명 2008. 5. 28. 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