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가 힘이다] "65명 미니기업이 첨단 화장품 개발했죠"

기사입력 2008-07-23 03:46 |최종수정2008-07-23 09:38
<9> 화장품 제조 '제닉' 유현오 대표

화장품 병·튜브 필요없어 필름에 물 묻혀 붙이면 돼

석·박사 연구원 9명… 매년 10억원 이상 투자


"자동차나 전자제품은 중국과 기술격차가 2~5년밖에 안 되지만 화장품은 50년 정도 차이가 납니다. 한류(韓流)를 돈으로 만들 기술이 바로 화장품입니다."

서울 양재동에 있는 제닉(Genic)은 충남 논산 공장까지 합해 직원이 65명밖에 안 되는 '미니기업'이다. 하지만 화장품 세계 시장 1, 2위를 다투는 프랑스 로레알, 미국아베다만 만들 수 있던 '필름 화장품(film cosmetics)'을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할 정도로 기술력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손톱 크기의 얇은 필름에 물을 묻혀 얼굴에 붙이면 필름이 녹으면서 얼굴 전체에 바를 수 있는 화장품이 된다. 병이나 튜브로 된 화장품은 비행기에 들고 갈 수 없지만 필름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갑에 들고 다니다가 언제 어디서든 손상된 피부를 관리할 수 있는 차세대 첨단 화장품이 제닉의 '간판상품'이다.


제닉 유현오(劉玹旿·38) 대표는 1997년까지만 해도 대기업의 장학금을 받고 KIST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전도유망한 과학도였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는 취업과 유학 사이에 고민을 하던 그를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았다. 작은 벤처기업에 들어가 거의 혼자 힘으로 80억원을 수출하는 성과를 냈지만 회사설립을 도와주겠다던 미국 본사는 이내 얼굴을 돌렸다. 유 대표는 "그때 반드시 이공계 연구원도 기술력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고 말했다.

창업 아이템을 고심하던 유 대표의 머리에 호주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피부가 상해 고생했을 때 큰 덕을 본 마스크 팩이 떠올랐다. 당시 마스크 팩은 물 티슈와 같은 재질에 화장품 용액을 녹인 저가(低價)형과 근육통에 바르는 파스와 같은 형태의 고가(高價)형으로 나뉘어 있었다.

유 대표는 전공인 고분자화학을 살려 화장품을 젤리 같은 하이드로 겔 상태로 만들었다. 마스크를 얼굴에 덮으면 겔이 체온에 녹아, 화장품 성분은 피부로 스며들고 지지대 역할을 하는 얇은 필름만 남는다. 덕분에 기존 제품보다 착용감이 좋고 피부 흡수율도 뛰어났다.

하이드로 겔 마스크는 국내 유명 화장품회사에 OEM(주문자표시생산방식), ODM(주문자개발생산)으로 납품돼 현재 국내 마스크 시장의 30%를 장악하고 있다. 과학기술부 KT마크와 장영실상, 산업자원부 차세대 일류상품, 대한민국보건산업대상, 벤처기업대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유 대표는 직접 섭씨 60도가 넘는 미국의 물류 창고와 캐나다 혹한의 날씨에 운행하는 트럭에서 안정성을 테스트해 3년 이상 걸린다는 화장품 수출을 1년 만에 성공시켰다. 덕분에 매년 매출이 두 배 이상 늘고 있다.

하이드로 겔 마스크가 성공하자, 유 대표는 해외 전시회에서 점찍었던 연구원들을 영입했다. 현재 박사급 2명, 석사급 7명의 연구원이 있으며, 학부 출신 중 뛰어난 직원은 회사 경비로 대학원에 진학시켜 연구원으로 양성하고 있다. 또 매년 10억원 이상을 R&D에 투자해 하이드로 겔 마스크 이후를 대비했다. 그 성과가 바로 필름 화장품. 해외진출을 위해 CGMP(우수화장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공장도 준비했다.

유 대표는 "필름 화장품 기술은 약을 먹기 힘든 환자를 위한 필름 약품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며 "국제특허를 출원한 독자적인 필름 기술로 곧 상처치료용 필름 약품도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by 100명 2008. 7. 23. 2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