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공학의 필요성
김형중 고려대 정보경영공학부 교수



김대중 정부 시절 정확한 수산통계자료 부족으로 쌍끌이 어선 조업실적 등을 누락시켜 일본과의 어업협상에서 한국이 불이익을 감수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협상 이후 갑자기 `과학'이라는 단어가 유행어가 되었다.

미국은 국제수협사무국 OIE의 과학적 기준을 따르라고 했다. 재협상을 요구하는 측은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각종 의학 논문을 인용했다.

정부와의 끝장토론에 나온 어느 기자도 퍼브메드(PubMed)라는 의학분야 전문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고 나왔다.

물론 과학적 근거로만 협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설득력이 높은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데 과학적 이론과 데이터는 큰 힘이 된다.

콘텐츠도 과학적으로 평가ㆍ분석되어야 한다. 정책을 입안할 때도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이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콘텐츠 공학이다.

콘텐츠공학이란 콘텐츠의 생산, 유통, 관리, 모델링, 변환, 사용, 용도변경 등을 체계적으로 다루기 위한 학문적 체계를 말한다.
20세기가 아날로그 콘텐츠의 전성기였다면 21세기는 디지털 콘텐츠로 이행하는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아날로그 콘텐츠를 위한 이론과 논리가 필요했다면 지금은 디지털 콘텐츠를 위한 논리와 이론이 필요하다.

15세기 출판ㆍ인쇄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문서의 복제가 손쉬워지면서 저작권 개념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완벽한 복제,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전송으로 인해 저작권 방어에도 일대 변혁이 필요했다.

MP3의 보편화와 괄목할만한 P2P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음반 판매가 급감했다. 그래서 한 때 DRM이야말로 모든 문제를 매듭지어줄 해결책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DRM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논리와 이론을 정립하기 전 아날로그 시대의 관행에 젖어 도입한 DRM 기술이 낭패를 본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제 생활패턴과 문화가 급변하고 있다. DMB의 출현으로 달리는 지하철에서도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종이에 인쇄된 책 대신 화면에서 보는 문서가 늘어나고 있다. 손톱만한 휴대용 메모리에 영화 몇 편을 넣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전자출판에 힘입어 인쇄비를 절감하고 논문에 대한 접근을 편리하게 하고자 아예 전자논문집만을 펴내는 학회도 늘고 있다. 지금은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서 논문을 검색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다. 피인용도를 높이는데는 전자출판이 가장 유용하기 때문에 오픈저널이 날로 각광을 받고 있다. 덕분에 이래저래 검색기술이 중요하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는 아날로그 시대의 콘텐츠와 비교해 볼 때 그 성격과 쓰임새가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데도 과거의 가치기준과 잣대로만 디지털 콘텐츠를 재단하고 평가하려고 하면 시대착오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콘텐츠공학은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이론과 논리 개발에 필요한 토대를 제공한다. 디지털 포맷의 오디오, 비디오, 영화, 광고, 도서, 게임, 웹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져 저장되고 유통될 수 있는 모든 콘텐츠를 대상으로 한다. 콘텐츠의 가치 평가, 리스크 관리, 부가가치 향상에 필요한 방법과 기술을 다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2년 세계 5대 콘텐츠 강국을 지향하며 야심적으로 R&D 정책을 수립하려 하고 있다. IT기술 발전에 힘입어 통신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향상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게다가 "대장금" 등 드라마의 괄목할만한 성공으로 한국이 문화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는데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CT에서 차세대 먹거리를 찾겠다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콘텐츠공학의 토대를 쌓는 일부터 지원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는 창의, 감성, 소통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자동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콘텐츠 산업은 고용을 수반하는 성장동력이고 특별히 인력의 고용효과도 크고 부가가치가 높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경제살리기 정책 구현에 적합하다. 정보보호산업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데 보안공학이라 기여했다면 콘텐츠 산업을 일구는데 콘텐츠공학이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by 100명 2008. 5. 26. 2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