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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영웅들 `놈들`에 밀리다
개봉 첫 주 전국 관객 76만명을 동원했던 이 영화는 지난주 말 50만명을 추가하며 누적 126만명을 기록했다. 통상 흥행 영화들이 2주차에 관객이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적벽대전'의 페이스가 눈에 띄게 느려진 것. 특히 관객점유율이 첫 주 27.6%에서 지난 주 8.9%로 뚝 떨어져 장기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투자ㆍ배급을 맡은 쇼박스 박진위 팀장은 "중국에선 개봉 첫 주 1억800위안(158억원)에 이르는 흥행 수익이 났고 함께 개봉된 홍콩 대만서도 인기"라면서도 "유독 한국 성적이 부진하다. 아무래도 현재 900개 넘게 스크린을 확보한 한국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영향이 작지 않다"고 전했다.
◆ 색다른 삼국지가 이상해?
= '적벽대전'은 '놈놈놈'보다 4배 넘게 제작비가 투입되면서 한ㆍ중ㆍ일 합작으로 제작됐고 우리나라에 친근한 중국 고전 삼국지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다른 차이나블록버스터와는 다른 행보를 걸을 것으로 예측됐다. 게다가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은 오우삼 감독에 양조위, 금성무, 장첸 등 아시아 스타들로 진용을 짰다. 그러나 한 주 늦게 개봉한 '놈놈놈'에게 추월당하며 관객동원에서 100만명 가까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적벽대전'이 예상보다 한국에서 인기를 못 끌고 있는 요인으로 이 영화의 내용과 충무로의 환경으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일단 관객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삼국지와 다른 영화 속 내용에 낯설어 한다는 것.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오우삼 감독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주유'다. '삼국지연의'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라면서 "'조조'도 원전에는 키가 작고 못 생긴 사내로 묘사되지만 이번 작품에선 매력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유비 관우 장비를 주인공으로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다소 의외일 수 있다"고 전했다.
영화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오른쪽)이 노숙과 전략을 상의하고 있는 장면. 이 영화는 지난 10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동시에 개봉됐다. |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미는 돋보였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주유와 제갈량이 음악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압권이라는 것. 중국영화 '명장'의 투자에 참여했던 스폰지 조성규 대표는 "영상 음악 등 영화의 퀄러티는 훌륭하다"면서 "국내 관객의 취향이 급변하고 있는데 최근 할리우드식 연출과 기법에 길들여진 것도 원인"이라고 전했다.
◆ 원전의 상상력에 못미치는 한계
= 일부에선 삼국지를 주제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 자체가 이미 국내 관객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맞추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책으로 읽은 삼국지가 영상으로 나타나는 순간 국내 관객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시각적 이미지를 갖다 놓아도 책으로 인한 상상력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며 "삼국지가 너무 잘 알려진 주제라 스토리에서 쾌락을 얻기 힘들다. 더구나 여성관객들은 지루한 전쟁 장면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경적 요인으로 중국영화에 대한 선입견도 원인이다. 최근 중국영화는 한국에서 연이어 흥행에 참패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영화는 국내에 13편이 개봉돼 서울 관객 48만6720명을 동원했다. 이는 전체 서울 관객 중 고작 1%에 해당된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는 "할리우드물에 밀려 중국사극은 이제 낯선 트렌드가 됐다"면서 "나라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관객들의 자세가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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