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일제시대 기와도로 확인

기사입력 2008-07-21 17:25 |최종수정2008-07-21 17:48

일제시대 기와도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기와를 촘촘하게 세로로 박아 만든 일제시대 도로 유적이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있던 곳에서 발견됐다. 중원문화재연구원 조사결과 이 기와도로는 현재까지 총길이 26m(보도시설 폭 122㎝)이며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주로 암키와를 세워서 꽂아 바닥을 조성했으며, 그 양 옆으로는 다시 암키와를 활용한 배수로를 설치했다. 구간마다 암키와를 활용해 주로 꽃으로 생각되는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넣었다. << 문화부 기사참조 >>

옛 동대문야구장서 발굴..재료는 조선기와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시대 훈련도감 건물 기와를 뜯어 20세기 초반에 일제가 만든 도로 유적이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있던 곳에서 발견됐다.

매장문화전문조사기관인 (재)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차용걸)은 서울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를 건립할 예정인 옛 동대문야구장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조선시대 훈련도감 분원 중 하나인 하도감(下都監)과 관련 있는 건물터 5곳과 함께 조사지역 북쪽에서 '기와 도로'를 찾아냈다고 21일 밝혔다.

일제시대 기와도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기와를 촘촘하게 세로로 박아 만든 일제시대 도로 유적이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있던 곳에서 발견됐다. 중원문화재연구원 조사결과 이 기와도로는 현재까지 총길이 26m(보도시설 폭 122㎝)이며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주로 암키와를 세워서 꽂아 바닥을 조성했으며, 그 양 옆으로는 다시 암키와를 활용한 배수로를 설치했다. 구간마다 암키와를 활용해 주로 꽃으로 생각되는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넣었다. << 문화부 기사참조 >>

현재까지 총길이 26m(보도시설 폭 122㎝)가 확인된 이 기와 도로는 사람이 다니던 길인 보도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주로 암키와를 세워서 꽂아 바닥을 조성했으며, 그 양 옆으로는 다시 암키와를 활용한 배수로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보도시설에는 기와 대신 석재가 사용되기도 했으며, 일정 구간마다 암키와를 활용해 벚꽃으로 생각되는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넣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단은 "원래 이곳에는 하도감이 있다가 폐기된 뒤에 1910년대에 일본인들이 연못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재료는 전부 조선시대 기와인 점으로 볼 때, 이 기와들를 재활용해 연못으로 통하는 보도를 조성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일제시대 기와도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기와를 촘촘하게 세로로 박아 만든 일제시대 도로 유적이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있던 곳에서 발견됐다. 중원문화재연구원 조사결과 이 기와도로는 현재까지 총길이 26m(보도시설 폭 122㎝)이며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주로 암키와를 세워서 꽂아 바닥을 조성했으며, 그 양 옆으로는 다시 암키와를 활용한 배수로를 설치했다. 구간마다 암키와를 활용해 주로 꽃으로 생각되는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넣었다. << 문화부 기사참조 >>

나아가 옛 야구장 부지에서는 건물터 5곳과 공방 관련 시설 2곳 등이 확인됐다.

이 건물터들 중 1-4호로 명명한 4곳은 같은 시기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를 뒷받침하듯 건물들은 모두 동서 방향을 장축으로 두었으며 건물 방향은 남향이었다.

1호와 2호 건물터는 각각 정면 5칸, 측면 3칸(14.1 x 4.9m)과 정면 6칸 측면 2칸(12.9 x 3.5m)으로 규모가 꽤 컸다.

조사단을 이 건물군(郡)이 훈련도감 분원인 하도감 흔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제시대 기와도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기와를 촘촘하게 세로로 박아 만든 일제시대 도로 유적이 서울 동대문야구장이 있던 곳에서 발견됐다. 중원문화재연구원 조사결과 이 기와도로는 현재까지 총길이 26m(보도시설 폭 122㎝)이며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주로 암키와를 세워서 꽂아 바닥을 조성했으며, 그 양 옆으로는 다시 암키와를 활용한 배수로를 설치했다. 구간마다 암키와를 활용해 주로 꽃으로 생각되는 각종 문양을 화려하게 넣었다. << 문화부 기사참조 >>

이와함께 동대문운동장 일대에서는 식민지시대 각종 일본 도자기가 수습됐으며, 그 중 상당수에서 명문이 확인됐다.

어떤 도자기 뚜껑에는 'MADE IN SETO JAPAN'이라 적혀 있는가 하면, '三國屋'(삼국옥) '總督府醫院'(총독부의원)과 같은 명문 도자기도 발견됐다.
by 100명 2008. 7. 21. 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