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번호, 과연 필요한가-끝]다른 나라는…"공적 목적에 한정 사용"

기사입력 2008-05-20 17:15
<아이뉴스24>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식별번호 제도를 도입한 선진국은 많지 않다. 선진국들은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거주 및 이동 파악을 위한 번호 제도를 두는 경우가 많다.

또 공적인 목적에 한정적으로 사용하며 민간 부문에서의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은 개인식별번호는 물론 주거를 등록하는 제도 같은 국가신분증 제도가 없다. 단 총 9자리 숫자의 사회보장번호(SSN, Social Security Number)가 있는데 이것이 개인식별번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사회보장번호의 공개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으며 개인이 번호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서비스 제공을 거부해서 안 된다는 규정도 두었다.

캐나다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가신분증 제도가 없는 대신 사회보험번호(SIN, Social Insurance Number)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소득세 징수, 실업급여 등 한정된 행정업무에만 사용하도록 돼 있다. 만약 개인의 사회보험번호 제시를 요구할 경우 목적과 강제성 여부, 제시 거부시 결과에 대해 미리 알려줘야 한다.

독일은 16세가 되면 개인 번호가 담긴 개인증명서를 발급하는데 개인정보보호법에 보호를 받아 지문날인 등이 금지돼 있다. 연금카드와 연금보험번호 등 정부기관의 업무를 위한 번호시스템이 있지만 미국의 SSN과는 달리 일반적인 개인카드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또 포르투갈은 아예 헌법에 '국민들의 국가적 확인번호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 놓았으며, 네덜란드에서는 행정부 내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주민등록제도와 비슷한 개인식별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도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중앙주민등록시스템(NIR, National Identification Register)에 개인식별번호를 두고 있지만 자발적인 요청을 할 시에 부여된다. 실제 생활에서 신원 확인 목적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수집과 이용은 법률이 규제하고 있다.

스웨덴은 한국과 비슷하다. 태어나자 마자 생년월일,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 개인식별번호를 전 국민에게 부여한다. 그러나 조세나 사회보장, 병무행정 등 공적인 영역에 사용하며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민간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스웨덴의 개인식별번호 제도는 이 나라가 질 높은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는데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2007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일반세의 사회보장부문 지출 비율에서 평균 43%에 크게 못미치는 3%로 최하위를 기록한 바 있다. OECD 국가 중 사회복지 수준이 '꼴찌'인 한국은 낮은 사회복지 수준에 비해 국민들에게 최고 수준의 '개입'을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 "한국 '외국인 등록번호'는 아는데, 독일 주민번호는 몰라요"

KBS2 TV '미녀들의 수다'에서 활약하고 있는 독일인 미르야 말레츠키(Mirja Maletzki·31) 씨에게 독일의 주민등록번호 제도에 대해 물어봤다. 올해로 한국생활 4년째인 미르야 씨는 통번역 프리랜서로, 한국만화 200여권과 한국영화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 등을 독일에 소개하기도 했다.

- 독일의 주민등록제도에 대해 설명해달라.

"16살이 되면 한국의 동사무소 같은 곳에서 개인번호가 찍힌 증을 받는다. 번호는 불규칙적인 숫자인데 사용할 일은 전혀 없다. 증에는 이름, 생일, 주소, 눈 색깔, 태어난 도시, 개인식별번호가 적혀 있다. 일반적인 카드보다 크기가 약간 작은 편이다. 태어났을 때는 별도의 개인번호를 받지 않고 출생지,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 태어난 장소, 담당 의사 이름 등을 신고한다."

- 자신의 개인식별번호는 외우고 있는지.

"몇 자리인지도 몰라요.(웃음) 한국에서 만든 외국인등록번호는 외우고 있다. 외국인등록번호 제도는 한국에서 사용하기에 편리한 것 같다."(<기자 주>주한 외국인이 사용하는 외국인 등록번호는 한국 주민등록번호 부여 방식과 똑같이 13자리다. 앞의 6자리는 생년월일, 뒤의 7자리 중 앞의 두 자리는 남자는 57, 여자는 68로 시작하며 나머지는 해당 출입국 관리사무소 번호 등으로 정해진다.)

- 독일에서는 신분증을 언제 쓰나.

"나이트 갈 때.(웃음) 선거 때도 필요하다. 길에서 공무원들에게 보여줄 일은 거의 없다. 몇 년 주기로 갱신해야 하데 나는 날짜가 지난 지 5년 됐다."

- 온라인 사이트 가입은 어떻게 하는지.

"이름, 주소, 생일 등만 있으면 된다. 개인번호를 입력할 필요는 없다."

- 미성년자들의 음란 사이트 접속은 어떻게 막나. 한국에서는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게 인터넷 실명제 시행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은 성교육을 어차피 일찍 시작하니까……. 청소년들이 음란물을 봐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부모들이)굳이 보라고 권장하지는 않지만, 봐도 별로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러다 보니 사실 아이들도 음란물에 그다지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다. 사람이 금지된 것에 더 호기심을 느끼기 마련 아닌가. 오히려 (음란 사이트를 통해)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릴까봐 못 보게 하는 건 있다."

- 한국에서 1천만명이 넘는 개인정보 유출이 벌어진 것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독일에서도 사이트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는 시도가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큰 일이 난 것 같다. 예전에 한국에서 외국인의 인터넷 회원가입이 어렵다고 말했을 때 어떤 팬이 온라인 쪽지로 자신의 돌아가신 어머니 주민등록번호를 가르쳐 준 적이 있다. 좀 무섭기도 하고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쓰지 않았다."/p>

by 100명 2008. 5. 20. 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