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무너진 국보 1호… 2013년 ‘부활’
방화로 숯덩이가 된 숭례문이 20일로 소실 100일을 맞았다. 지난 2월 10일 숭례문이 전소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슬픈 목소리와 눈망울이 반도 땅을 덮었다. 서울 시민은 물론 멀리 삼남 지역인 충청 경상 전라에서도 애도 인파가 몰려들었다. 금세 울음 방울을 터뜨릴 것 같은 유치원생부터 망연자실한 표정의 팔순 노인까지 숭례문에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복원 과정을 감시하고 더 이상 숭례문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석 달이 흐른 지금 숭례문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는 눈에 띄게 낮아졌다. 굳이 시간을 내서 찾았던 삼남의 상경 행렬은 고사하고 서울 시민들도 무심하게 주변을 지나칠 뿐이다.
19일 오후에 찾은 숭례문 인근에서는 참사 당시에 쌓여 있던 꽃과 편지를 접할 수 없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은 ‘흉물’로 변해버린 국가의 ‘상징’을 애써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다. 일상에 파묻혀 사는 도시민에게 제모습을 찾지 못한 숭례문은 ‘잊혀진 주인공’처럼 멀리 비켜나 있었다. 가림막 속에 가려져 있어 안을 들여다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았다. 현장 보호용 아크릴 지붕이 2층 지붕을 대체하고 있었고, 숭례문은 속 깊은 상처를 가림막 속에서 숨기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일할 때 설치하는 임시가설물인 비계가 숭례문 외부를 꼼꼼하게 둘러싸고 있었고, 내부는 버팀목들이 지탱하고 있었다. 숭례문 핵심 기둥인 고주(高柱·높은 기둥) 4개는 반 정도가 불에 그슬린 채 그대로다. 화재로 90% 가까이 손상된 누각 2층은 뻥 뚫려 있었다. 수습한 부재와 기와, 불에 탄 벽돌 등은 앞마당의 비닐 천막 안을 채운 상태다. 문화재에 준하는 부재는 경복궁 안의 부재보관소로 옮겨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가림막 밖의 시민들이 애써 시선을 두지 않은 것은 덧난 상처를 일부러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숭례문 전소가 어디 단순한 생채기던가. 숭례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거나 잊혀지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문화재청은 최근 ‘숭례문 복구 추진 자문단’을 위촉하고 청내에 복구추진단을 설치하며 숭례문 복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숭례문이 예전의 모습을 찾으려면 2013년 원단까지 기다려야 한다. 복원은 3단계 과정으로 추진된다. 지난 8일부터 이달 말까지 현장에서 수습한 부재 3000여점을 경복궁 부재보관소로 옮기고(1단계), 2010년까지 발굴과 고증·설계작업을 끝내고(2단계), 2010년부터 공사(3단계)에 들어간다.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문화재 재활 전문가들은 복원을 낙관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고주의 윗부분을 이어 쓰는 전통적인 방법을 도입하면 크고 굵은 목재인 대경목을 사용하지 않아도 돼 목재 수급이 보다 원활해진다”며 “원래의 목재를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원형을 많이 남길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협조체제는 아직도 미흡한 상황이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구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는 2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인력 수급도 원활한 편이 아니다. 문화재를 경쟁력 강화의 장애요인으로 생각하는 시각도 여전하다.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최근 정부를 중심으로 번진 경제개발 논리에 밀려 문화유산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며 “문화유산이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인식의 틀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 타령만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부의 각성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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