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산업 재도약의 원년으로]세계는 ‘무한 경쟁’… 국내선 ‘겹겹 족쇄’

지난해 9월 김신배 SK텔레콤 사장, 조영주 KTF 사장, 정일재 LG텔레콤 사장 등 이동통신업체 3사 대표들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보통신부(현 방송통신위원회) 청사를 찾았다.

명목상으로는 유영환 정통부 장관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는 미묘한 시기였다. 청와대에서 이동통신 요금이 과하다며 인하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직후였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요구가 뜨거웠기 때문이다.

유 장관은 이들에게 “이동통신 요금 인하 문제가 계속 불거져 나오고 있으니 언론에서 나오는 수준대로 맞춰주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간 경쟁 촉진을 통한 소비자 후생 증진’을 주내용으로 하는 통신정책 로드맵을 발표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청와대와 정치권의 요구로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결국 SK텔레콤은 망내할인 요금제도 등을 내놓았고, KTF와 LG텔레콤도 요금을 낮췄다. 규제기관인 정통부의 뜻을 거스를 순 없었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올초 통신요금 인하 계획을 밝히자 이동통신업체들은 새 정부 출범 축하 차원에서 요금 인하 방안을 발표했다. 규제당국의 심기를 살피며 최대한 ‘성의 표시’를 한 셈이다.

위성디지털멀티미디어(DMB)업체 TU미디어는 방송과 통신 규제 전봇대 사이에서 휘둘린 대표적인 사례다. 주파수 허가를 받으면서 정통부에 할당대가를 냈다. 또 전파사용료와 중계기 허가·검사 수수료도 납부했다. 방송위원회에는 방송발전기금을 냈다. 반면 위성DMB와 경쟁 관계에 있는 지상파 DMB는 방송발전기금만 냈다. 할당대가와 전파사용료는 면제받았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서비스지만 차별적 납부로 인해 위성DMB는 처음부터 불리한 출발을 한 셈이다. TU미디어는 현재 심각한 자본 잠식 상태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 통신 규제 정도는 외국에 비해 상당히 심한 편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3세대(G)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DMB, 휴대인터넷(와이브로) 등 신규 서비스 도입을 통한 통신산업의 성장과 유효경쟁이라는 적극적인 시장관리정책을 두 축으로 통신산업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최근 DMB, 와이브로 등 신규 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투자가 부진해지고 인위적인 경쟁구도 유지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통신산업정책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더욱이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른바 방송통신 융합(컨버전스) 환경이 조성되면서 이에 부합하는 시장친화적인 정책 수립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통신 전문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와 일반 규제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이중 규제 문제도 통신업체들 입장에서 보면 고민거리다. 원칙적으로 기업간 인수합병(M&A) 등 일반 규제 문제는 공정위, 접속료 산정·주파수 정책 등 전문 규제 문제는 방통위가 전담토록 돼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 따라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범정부 차원에서 신속하게 교통정리해준다면 업체들이 체감하는 규제 부담이 훨씬 덜할 것이라는 게 통신업계 중론이다.

정통부를 계승한 방통위는 경쟁 활성화와 소비자 후생 증진이라는 정책 방향 아래 각종 규제를 적극적으로 제거해나가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았다. 염용섭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방통융합정책연구그룹장은 “방통융합시장 활성화를 위해 통신 규제 완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업계의 규제 부담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by 100명 2008. 5. 16. 1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