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 팔아 기술 산 중공업의 '孫子'

두산의 'M&A 전략가' 박용만 인프라코어 회장

"M&A(인수합병)의 성패는 인수전이 벌어지기전에 80%가 결정된다"

두산그룹의 '손자(孫子)',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에게 M&A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을 던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답변이다. 철저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승산을 굳히고 마지막으로 가격을 써낸다는 그의 M&A 전략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던 중국 전국시대의 병법가 손자와 닿아있다.

◆'가업(家業)도 팔아라'="솔개는 수명이 보통 40년이지만 몇몇 솔개는 노화로 굳어진 발톱과 깃털을 뽑아내고 바위를 쪼아 부리를 부수는 고통을 이겨낸 뒤 새로 자란 발톱과 부리, 깃털로 다시 30년을 더 산다"

1995년만해도 두산그룹은 OB맥주, 코카콜라 등 소비재 사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했다. 반면 건설, 기계 등 산업재의 비중은 채 40%에도 미치지 못해 음료 식품전문 기업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두산그룹의 경영진은 같은 해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박용만 회장의 진두지휘아래 코카콜라, OB맥주, 씨그램, 코닥, 네슬레, 3M 등 주력 사업을 잇따라 팔아치웠다.

덕분에 96년 692%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2000년엔 149%까지 떨어지고 마이너스였던 현금보유량도 2001년엔 9230억원까지 늘었고 뼈를 깍는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현금'을 바탕으로 두산은 차근차근 성장의 계단을 밟아가고 있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가 1단계인 그룹의 사업구조를 재구축하는 시기였다면 2단계인 2000년부터 2005년까지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스스로의 체질개선과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에 집중한 시기다.

두산은 이때 막대한 컨설팅 비용을 쏟아부으며 경영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인재양성에 나서는 한편 한국중공업(2001년), 고려산업개발(2003년), 대우종합기계(2005년) 등 중공업그룹 두산을 만든 근간이 되는 기업들을 연이어 사들였다.

이어 2005년 미국의 AES인수를 기점으로 시작된 글로벌 M&A 행진은 두산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이 되고 있다.

◆기업이 아닌 기술을 산다=두산 M&A의 특징은 규모 확대가 아닌 '원천기술', '생산기반', '글로벌 네트워크' 등 두산에 부족한 유무형의 자산을 확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AES(미국 05년:담수 원전기술), 미쓰이밥콕(영국 06년:보일러원천기술), IMGB(루마니아 06년:주단조), 두산캐피탈(06년:할부금융), 연대유화(중국 07년:생산설비), CTI엔진(미국 07년:친환경엔진 원천기술), 밥캣(미국 07년:건설장비) 등 자체 개발에 시간이 걸리는 원천기술과 생산거점을 M&A를 통해 단숨에 확보함으로써 초고속 성장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세계 1위의 소형건설장비 생산업체인 밥캣 인수는 두산이 10년간 쌓아온 M&A 노하우가 그 진가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건설기계 업계 14위인 밥캣을 인수함으로써 업계순위 17위에서 단번에 7위로 도약했다.

게다가 소형건설장비 생산에 강점을 지닌 밥캣과 중대형 장비생산에 주력해온 인프라코어간의 기술 결합, 북미와 유럽지역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해온 밥캣과 중국 등 아시아지역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구축한 인프라코어간의 새로운 판매망 조합은 건설기계업계 5위권 진입을 자신하게 한 근간이 되고 있다.

다만 밥캣 인수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서브프라임 한파로 자금조달에 애를 먹으면서 한때 곤혹을 치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중심이 돼 적극적인 자금지원에 나섬으로써 숨통을 틔웠다.

◆인수후 군림하지 않는다=두산 M&A의 또다른 강점은 인수참여를 검토할 때부터 이미 인수후 기업경영의 시물레이션을 가동해 최적화된 통합 모델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두산의 기업문화는 이식하면서 절대 '점령군'으로 군림하지 않는 것이 실패없는 M&A의 또다른 비결이다.

두산그룹의 M&A팀을 이끌고 있는 이상하 전무는 "두산은 인수전부터 인수후를 고민한다"며 "영국의 밥콕 직원들도 한국에 방문해 회식때면 폭탄주를 돌릴 정도로 두산의 문화에 적응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공적인 M&A를 통해 지난 2000년 2조7000억원에 불과했던 그룹 전체의 매출액은 지난해말 현재 18조6000억원으로 6배이상 성장했다. 2000년 채 1조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시가총액 또한 20조원을 넘보는 수준까지 뛰어올르는 등 늙은 솔개 두산은 새 날개를 펼치고 있다.

지금도 박회장의 책상서랍에는 M&A팀 팀원들이 전세계를 무대로 뛰어다니며 모아들인 'M&A 적격기업 리스트'가 조용히 잠들어 있다. 두산이 언제 다시 이 리스트를 꺼내들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지 기대된다.

by 100명 2008. 5. 16. 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