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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구 사는데… 우리집이 왜 더 덥죠?
▲ 매일신문사가 주최하고 건설협회가 주관한 '2007 매일 주거만족 평가 시상식'이 26일 매일신문사에서 열렸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도심일수록 덥다
대구에서 가장 더운 지역은 어디일까. 콘크리트 건물이 밀집한 도심에 가까울수록 덥고 공단 지역도 기온이 높다. 이른바 '열섬 현상' 때문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같은 인위적 시스템이 많은 도시는 인접한 교외 지역에 비해 평균 기온이 높기 때문에 고온의 공기가 섬 모양으로 뒤덮인다.
동구, 서구, 남구, 현풍 등 4곳에 설치된 대구기상대의 AWS(자동기상관측자료)에 따르면 지난 9일 현재 낮 최고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곳은 주거지역이 밀집한 남구로 33℃였다. 이현공단, 염색산업단지가 밀집한 서구는 32.7도였고, 달성산업단지와 인접한 달성군 현풍면은 32.2도, 팔공산과 가까운 대구 동구는 32.1도로 측정됐다. 지난해 7, 8월 낮 최고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현풍으로 31.3도였고, 서구 31.2도, 남구 30.9도, 동구 30.5도 등의 순이었다.
대구시의 지표면 온도를 분석해 봐도 도심 중심부로 갈수록 기온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분지인 대구의 지형적 특성 때문에 기온이 도시 중심부로 갈수록 높고 산과 가까운 주변부는 낮아지는 동심원의 형태를 띤다.
김수봉 계명대 에너지환경계획학과 교수의 '대구 지역 도시림의 하계 대기온도 저감효과에 관한 연구'(2004)에 따르면 연 평균 지표면 온도가 13도 미만인 지역은 북구 송정동·신무동·진인동을 중심으로 한 팔공산 일부 지역과 달성군 비슬산 군립공원 일대로 나타났다. 수성구 대흥동·삼덕동·황금동 어린이대공원 인근, 달서구 두류공원 일대, 금호강 등 공원 지역은 13~17.6도의 분포를 보였고 서구 중리동, 달서구 송현동 등 주거지역 대부분은 22.2~26.9도였다. 가장 더운 곳은 중구 동인동·대신동·남산동 등을 중심으로 한 도심지역과 북구 노원동, 서구 이현동·중리동, 달서구 갈산동·월암동 등 대규모 공단 지역으로, 연평균기온이 26.9도에 이른다. 팔공산 인근 지역에 비해 지표면 온도가 두 배 가까이 높은 셈.
그러나 실제 생활 공간에서의 체감 더위는 기상청 발표보다 더 심하다. 기상청이 대구기상대가 위치한 대구 동구 신암동에서 측정된 최고기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때문. 신암동 일대는 팔공산의 영향으로 바람이 불고 쾌적한 편이어서 기온이 다소 낮게 측정된다. 그 때문에 도심의 낮 기온은 기상청 발표보다 5~10도가량 높다. 지난 11일 기상청은 이날 낮 최고기온이 33.5도였다고 밝혔지만 실제 오후 2시쯤 중구 봉산동 일대 기온은 37도였다.
◆달라지는 실내온도
그렇다면 아파트 층별로도 실내 온도에 차이가 날까? 취재진은 지난 11일 한낮 기온이 가장 높은 오후 2시를 전후해 대구 중구 46층 높이의 S주상복합아파트와 수성구 범물동 W아파트에서 1층과 중간층·최고층의 실내 온도를 각각 측정해봤다. 실내온도는 이날 낮 최고기온이었던 33.5도보다 2, 3도가량 낮았고 층별 온도는 0.7~1도가량 차이를 보였다. 대체로 1층의 온도가 낮고 최고층의 실내온도가 높았다. 46층 주상복합아파트의 경우 1층은 30.5도이었지만 12층은 30.9도, 26층은 30.3도를 기록했다. 반면 43층은 31.5도로 가장 더웠다. 범물동 W아파트의 경우 1층은 29.7도, 10층은 30.5도, 20층은 30.8도였다. 이 아파트 1층에 사는 이모(47)씨는 "열대야가 계속된다고 하는데 우리집은 거실에 에어컨을 틀지도 않고 밤에 문을 열고 자려면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층별로 실내 온도가 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일사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아파트 1층의 경우 일사량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원하고, 최상층의 경우 햇빛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에 더 뜨겁다는 것. 중간층의 경우 최상층과 일사량은 큰 차이가 없지만 위·아랫집에 의해 열이 차단되기 때문에 실내온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체감 온도를 낮추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내 습도다. 습도가 높으면 같은 기온이라도 더 덥고 불쾌하게 느껴지기 때문. 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될수록 습도는 낮다. 하루 2번만 환기를 시켜도 실제 체감온도는 많이 낮출 수 있다.
바람의 수혜도 빼놓을 수 없다. 건물이 풍향을 고려해 배치되면 바람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실내 온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되고 상대적으로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대봉교와 인접한 S아파트는 신천을 타고 가는 대구 바람길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단지로 꼽힌다. 대구의 대표적인 바람길은 동구 팔공산 방면, 수성구 가창골과 앞산, 북구 칠곡 동화천 인근, 달서구 대곡 자락과 낙동강변, 신천 주변 등이다. 정응호 계명대 에너지환경계획학과 교수는 "대구는 신천이 남에서 북으로 관통을 하고 금호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면서 주변에 찬바람을 이동시키는 조건을 갖고 있다"며 "여름에는 냉방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실내온도를 낮추기가 쉽지 않지만 주변에 녹지가 많거나 통풍이 잘되도록 건물 배치가 돼 있는 경우 기온이 다소 낮아진다"고 말했다.
◆나무 심어도 왜 더울까?…대구 바람길 막힌 때문
대구는 나무와 녹지가 많은 도시로 유명하다. 1인당 숲 면적이 9.3㎡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1996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푸른대구가꾸기' 사업 덕분에 대구의 녹지 규모는 2006년말 현재 18.9㎢, 식재된 나무는 605만 그루에 이른다. 이쯤되면 대구의 도심 기온도 낮아지고 열대야 현상도 줄어야 하지만 대구의 도시 열섬(Urban Heat Island) 현상은 날로 심해지고 열대야는 벌써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왜 폭염은 줄어들지 않는 걸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도시의 바람길(風道)이 막혔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대구는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 상 북구 칠곡, 달서구 대곡, 수성구 지산 일대 등 도시 중심부를 둘러싼 구릉지가 발달해 있다. 낮동안 뜨거워진 공기가 해가 지면 식어서 구릉지로 내려와 도심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구릉지마다 대단위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이 같은 바람길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고층 아파트는 콘크리트의 표면적이 넓기 때문에 햇볕을 받는 부분이 늘어나 열섬을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신천변과 동대구로를 따라 들어선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는 바람길을 막는 주된 원인 중에 하나다. 신천은 하천이어서 주변에 비해 기온도 3, 4℃가량 낮다. 동대구로도 조경숲이 조성돼 주변 지역에 비해 기온이 3℃이상 떨어진다는 것.
기온차는 바람을 만들고 해가 지면서 차가워진 공기가 이동하는 통로가 된다. 남향으로 지어진 예전 아파트들은 신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지 않지만 최근 지어진 주상복합아파트의 경우 건폐율을 높이기 위해 'ㅁ' 형태로 지어지기 때문에 바람길을 막는 주된 원인이 된다고 한다. 더구나 황금네거리와 범어네거리 일대에 들어서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들은 아파트 주민은 시원할지 모르겠지만 건물 이면의 주민들은 더위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
최영식 영남이공대 건축과 교수는 "대구 도심으로 유일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초고층 주상복합건물들이 인위적으로 막아버리는 형국이어서 피해는 대구시민 전체에게 돌아온다"며 "주차장을 지하로 넣고 아파트 내에 조경녹지를 꾸미더라도 그 아래는 모두 콘크리트이기 때문에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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