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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과장치 없는 인터넷 정보… 무조건 믿으면 낭패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
양 많고 확산속도 빨라 신빙성 판단 어려워
거짓으로 확인된 광우병 괴담 아직도 기승
인터넷을 오락으로 바라보는 어린 세대에
정보생산자로서 책임 갖게하는 교육 필요
지난달 30일 한 초등학생이 네이버 '지식iN'에 '광우병 증세 이대로 가면…'이라는 질문을 올렸다. 한 답변자가 나섰다. "광우병은 전염성이 강한 병이라 같은 식기 사용, 침 튀는 거, 광우병 걸린 사람이랑 손잡는 것 등등 다 전염됩니다. 우리나라 인종은 거의 95%가 걸립니다"라고 답했다. '지식도 맞들면 낫다, 모두가 만드는 지식iN'을 표방한 서비스였지만, 초등학생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 '지식'이 아니라 광우병에 대한 '공포'만 증대시키는 내용이었다. 500개 가까운 답변이 대부분 비슷한 요지였고, 모두 4만6000여명이 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인터넷은 편리를 제공했지만 '인터넷 괴담' 같은 부작용의 위험성도 확산시켰다. '나훈아 괴담', '모 재벌가와 결혼한 아나운서 이혼설' 등은 인터넷에서 자가 발전을 거듭한 끝에 '인기 검색어'가 됐고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 '낭설'이 상식으로 둔갑해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개인의 걸러지지 않은 주장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에 대해선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터넷의 정보는 일단 의심하라: 통제불능의 괴담
미국 켄터키 대학(University of Kentucky)은 "무슬림의 반발을 우려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강좌를 폐쇄했다"는 괴담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가 '영국의 몇몇 학교가 무슬림 학생들의 반유대주의를 부추길 것을 우려해 홀로코스트 교육을 교과 과정에서 뺐다'고 온라인에서 보도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 기사는 이메일로 전파됐고, 일부 독자들은 영국의 이메일 주소에 나오는 'uk'를 'United Kingdom(영국)'이 아니라 'University of Kentucky(켄터키 대학)'로 잘못 읽었다. 단순한 오류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멀쩡히 홀로코스트 강좌가 있는 켄터키 대학의 총장과 학장들에게 "그렇다면 9·11테러도 중동 사람이 믿는 것처럼 바꿔 기록할 것인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등의 항의메일이 쏟아졌다. 켄터키 대학측은 워낙 터무니없는 내용이어서 곧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괴담'은 끊이지 않았다. 새로운 버전이 자꾸 생겨났고, 결국 대학측은 보도자료까지 뿌리며 해명에 나섰지만 괴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인터넷을 통해 돌아다니는 '허위, 혹은 잘못된' 정보는 현실에 끊임없이 악영향을 끼친다. 로버트 케네디 미국 법무장관의 보좌관이었던 존 시건솔러씨는 2006년 오픈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수개월 동안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에 연루된 인물'로 기록돼 홍역을 치렀다. 이런 위험성은 정보 수집과 전달을 업으로 하는 기존 매체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 한 국내 언론도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에 올라온 가짜 설경 사진에 속아 이를 게재하기도 했다.
◆여과 장치 없는 인터넷
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면서 정보의 양 자체는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믿을 만한가'를 따지는 일은 그만큼 어려워졌다. '광우병 괴담'처럼 검색을 거듭해도 과장되고 부풀려진 정보만 반복될 경우가 그렇다. 도준호 숙명여대 교수는 "네트워크를 통한 의사소통은 대의 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과도한' 민주주의로 인해 무책임한 소수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며 "게이트 키핑이 체계화되지 않은 인터넷 상의 내용은 끊임없이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니컬러스 버뷸레스(Burbules)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는 2003년 발표한 글 '웹의 역설'에서 "인터넷 상의 정보에 대해 우리가 독립적인 판단 기준을 갖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마치 '눈가림'을 한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가는 또 하나의 '눈가림'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터넷에선 어떤 사항이 중요해 보이면 더 빨리 확산되지만, 일단 거짓으로 판명된 후에는 잘못된 주장을 수정하거나 철회하는 작업이 그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네티즌은 결국 시티즌(시민)이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공간'이라는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동훈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우선 우리가 일반 시민과 구분되는 '네티즌'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 정비를 통해 포털의 책임을 강화해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블로거나 학생들에게 허위사실 등을 유포해서는 안 된다고 적극적으로 공지하고, 포털 나름의 필터링을 강화하면 '괴담' 유의 정보는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언론재단 교육2팀 이동우 미디어교육 담당은 "수많은 미디어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교육 못지않게 청소년들에게 지적재산권, 발언에 대한 책임 등 정보생산자로서의 교육도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손태규 단국대 언론학부 교수는 "익명성에 숨어 인터넷에서 온갖 소리를 내지르면서도 규제를 받지 않는 방종을 경험하면서 네티즌들이 자유와 법치주의의 참된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라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어릴 때부터 언론의 자유와 그 책임에 대한 교육을 더욱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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