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용산전자상가 `변신 몸부림`

기사입력 2008-05-13 08:00


일부 가격표 공개ㆍAS 등 생존위한 변화 움직임   

'신뢰' 구축 생존의 길 찾는다

부도 악재ㆍ비수기 겹쳐 매장마다 울상

온라인ㆍ할인점에 밀리고 볼거리도 없어

'한국의 아키하바라' 과감한 혁신 필요


"매년 어렵다 했지만 이번에는 좀 심각합니다. 그나마 용산을 지탱해주던 PC방 수요도 줄고 있고, 부도 등 악재가 터져 앞이 안보일 정도입니다."

용산 관광터미널 상가에서 8일 만난 한 PC 부품 유통업체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한때 국내 전자메카로 불리며 PC를 비롯한 IT 시장을 주도했던 용산전자상가가 신음하고 있다. 지난 3월 터진 한 대형 조립PC 쇼핑몰 부도, 조립PC 시장 침체, 환율강세 등 악재가 겹치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았으며, 전통적인 비수기인 여름을 앞두고 `연쇄 부도설'까지 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어려운 것은 소규모 매장들이다. 총판업체들이 여신 기간을 줄이고, 현금거래를 선호하면서 운영자금이 적은 소규모 매장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자금난을 겪는 총판들이 덤핑 물량을 내놓으면서 시장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이씨현시스템, 유니텍전자, PC디렉트 등 용산전자상가를 기반으로 코스닥에 입성한 업체들 얘기는 전설이 된지 오래다.

◇온라인에 밀리고, 할인점에 치이고=불과 5년 전만 해도 PC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용산전자상가에 가는 것이 당연했다. 다양한 상품과 저렴한 가격은 용산전자상가가 지닌 최대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일반화된 지금 소비자들은 용산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 오픈마켓을 통해 원하는 부품을 구입할 수 있다. G마켓, 옥션 등 오픈마켓에서 할인쿠폰을 사용하는 `쿠폰신공'을 쓰면 용산전자상가에서 구입하는 것에 비해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용산상인과 입씨름 할 필요 없이 우편으로 반품하면 되는 것도 온라인으로 소비자들이 몰리는 이유다. 용산에서 PC를 사는 사람은 PC 부품 가격에 대해서 훤히 아는 사람 또는 오늘 당장 PC가 필요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예전처럼 PC 구입을 상담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 됐다.

PC 주기판과 그래픽카드를 유통하는 ST컴의 맹성현 차장은 "용산업체들은 3년 전부터 온라인으로 무게를 옮기기 시작했다. 현재 규모가 있는 용산유통업체 중 오픈마켓을 이용하지 않는 업체는 없다. 작은 매장만 열어놓고 온라인만 주력하는 업체들도 많다"고 말했다.

온라인 뿐 아니라 하이마트, 전자랜드 같은 양판점과 이마트, 홈플러스 등 할인점에서도 IT 제품을 취급하는 비중이 높아져 용산전자상가는 설 곳이 줄어들고 있다.

◇용산은 억울하다? =관광터미널 상가에서 디지털카메라를 판매하고 있는 한 매장 주인은 "요즘 소비자들은 가격비교를 해보고 오기 때문에 이전처럼 바가지를 씌우는 일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영악한 소비자들 때문에 온라인보다 더 싸게 파는 경우도 많다"라고 하소연했다. 구형 제품을 신제품으로 속여 팔거나, 끼워팔기 등 편법도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도 용산에서는 호객행위, IT기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여성이나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바가지 사건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2005년 문을 열 당시 원칙적으로 호객행위를 금지한 아이파크몰도 8일 기자가 방문했을 때 여전히 호객행위가 이뤄지고 있었다.

"뭐 찾으러 오셨어요?", "얼마까지 알아보셨어요?" 호객에 사용되는 멘트는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지난해 용산전자상가에서 제품 가격을 물어보는 손님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장면이 TV에 방영돼 많은 누리꾼들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같이 일부 악덕상가 이미지는 용산전자상가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억울하다고 말하기에는 용산전자상가 이미지를 전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용산 변신해야 산다=전문가들은 용산전자상가도 일본의 아키하바라가 해외 관광객들의 필수 여행 코스가 된 것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 발길도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아이파크몰에서 만난 캐나다 관광객 로버트호프만(67)씨는 "관광가이드 북에 나와서 들려봤다. 매장은 크고 좋은데 모든 상점이 비슷한 물품을 취급한다. 그리고 제품에 가격표시가 전혀 없어서 가격에 대한 신뢰가 가지 않는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용산전자상가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격표나 영어로 된 제품설명이 없는데다, 직원들은 유니폼 조차 없어 누가 손님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물론 이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용산은 변하고 있다. 유통업체 중 아이코다, 컴퓨존, 팝스포유 등 제품 가격을 공개하고 브랜드PC 못지 않은 AS를 지원하는 업체들이 등장한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소비자 입장을 고려해 주말이나 밤 늦은 시간까지 AS센터를 개장하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지방에 있는 소비자들에게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한 화상 AS까지 지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변신들이 조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몇몇 업체들을 통해서 진행된다는 것이 아쉬운 일이다. 용산전자상가는 관광터미널상가, 선인상가, 나진상가 등 상가별로 나눠져 관리돼 큰 전자상가 단지를 이루고 있지만, 운영은 개별적으로 진행된다.

용산전자상가를 대표할 수 있을만한 축제나 볼거리가 없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주말마다 선인상가 앞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매장에서 파는 물건들과 큰 차이가 없다.

용산이 성장해왔던 것은 꾸준히 발길을 이어준 소비자들 덕분이다. 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아직 고쳐야 할 점들이 많다. 소비자들을 다시 용산으로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용산은 과감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용산전자상가가 예전의 영화를 찾기 위해서는 고민이 아닌 참신한 아이디어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by 100명 2008. 5. 13. 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