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느린 `윈도 비스타` PC산업 성장 가로막는다

기사입력 2008-05-12 08:26


"윈도 비스타가 국내 PC산업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 PC 담당 임원의 얘기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 비스타를 출시한 이후 PC 판매 증가를 예상했지만 비스타에 항의하는 소비자들 불만에 대응하는 게 더 힘들다는 설명이다.

통상 MS에서 새로운 운영체제(OS)를 출시할 경우 이에 맞춰 PC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2001년 윈도XP 출시 때에는 출시와 동시에 PC 판매가 크게 증가했지만 비스타는 다르다.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에 있는 K전자업체는 최근 윈도 비스타로의 운영체제 업그레이드를 계획했다가 전면 취소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본 프로그램과 호환이 안 되고 PC 속도가 크게 느려진다는 이유에서다.

이 회사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업그레이드를 찬성해야 할 전산 쪽 인력이 가장 먼저 반기를 들었다"며 "비스타 체제에 맞추기 위한 PC 구입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고 XP 운영체제가 더 안정적이라는 점이 이유"라고 설명했다.

윈도 비스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이 '속도'다. 시스템 요구사항이 워낙 높기 때문에 웬만한 사양을 갖추지 않고서는 제 속도를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소 1기가바이트(GB) 이상의 메모리와 100GB의 하드디스크 용량은 기본사항이다. 여기에 고성능 CPU와 그래픽카드 등을 갖추지 않고서는 느려터진 비스타를 보며 분통을 터뜨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지나친 보안 강화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무리 없이 호환됐던 프로그램들도 비스타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아예 호환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특히 출시 초기 국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액티브 X'의 다운로드와 설치를 제한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내 PC업체가 골치를 겪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PC를 구입한 사람들이 윈도 비스타로 인한 문제를 마치 제조상 결함으로 얘기하며 애프터서비스(AS)를 강하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위 임원은 "비스타가 설치된 새 PC를 샀는데 속도가 느리고 프로그램 실행 때마다 복잡한 문제를 겪으면 나라도 화가 날 것"이라며 "국내 PC 판매가 정체 양상을 보이는 데도 비스타가 상당 부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IDC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내 PC시장은 전년보다 3% 성장한 468만대에 그칠 전망이다. 최근 삼성 LG HP 델 등에서 출시되는 PC는 전부 윈도 비스타를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다. MS 윈도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대형 PC업체들과의 계약 때문에 이들은 출시 때부터 비스타가 기본 사양이다. 비스타의 문제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개선될 때까지 PC 구입을 늦추고 있다.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에서 만난 김철영 씨(27)는 "새 노트북을 사자마자 XP로 바로 다운그레이드했다"며 "비스타만의 전용 프로그램도 없는데 굳이 느린 비스타를 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 PC 제조업체들은 인터넷 홈페이지나 서비스센터 등을 통해 다운그레이드를 도와주고 있다. 자세한 설치방법을 안내하고 부가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도 비스타 판매가 신통치 않다.

MS는 최근 '3분기(2008년 1~3월)' 실적 발표를 통해 최근까지 1억4000만개의 비스타 라이선스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주로 HP나 델 레노버 등 대형 PC 공급업체에 탑재해 판매한 것이고 소매판매를 통한 비중은 20%에도 못 미친다.
by 100명 2008. 5. 12. 1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