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빨리빨리 문화
박정모 경인여대 간호학과 교수
▲ 박정모 경인여대 간호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매우 빨리 변화하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빨리빨리’ 의식이 변화를 유도하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빨리 변화하다 보니 ‘빨리빨리’의식을 만들어 낸 것인지,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빨리 빨리’ 의식은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오늘날 정보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강국으로 만들어냈다.

인터넷은 우리생활을 매우 편리하게 만들어 주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일수록 이런 편리한 이기문명을 부담 없이 받아들인다. 인터넷은 우리의 의식을 지금보다도 더 빨리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편리한 이기문명이 과연 다른 문제를 파생시키지는 않는지’에 관해 진지하게 숙고하고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대구에서 초등학교 성폭행 사건을 접하고 매우 놀랐었다. 성폭행사건에 한두 명이 아닌 집단으로 연루된 것에 놀라웠고, 연루자가 중학생과 초등학생이라는 점에 다시 한 번 놀랐었다. 이런 사건들은 인터넷이나 매스미디어에서 방영되는 절제되지 않은 음란물에 오염되고 중독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 성폭행 가해와 피해에 관한 조사결과를 보았는데 거의 절반이 가해 및 피해를 경험했다는 것을 보고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성폭행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으로 알게 됐다. 물론 조사는 신체적인 부분만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인 폭력과 비언어적인 폭력을 모두 조사한 결과이다. 조사결과는 우선 가해경험이 있는 학생이 피해경험도 높았었다. 이는 성폭력도 다른 폭력과 마찬가지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바뀔 수 있다는 것과 악순환을 반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번째로 도시와 농촌을 비교할 때,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더 빈번하며 남녀 성평등 의식이 낮은 곳에서 더 빈번하다는 것이 결과의 요지다. 남ㆍ여 성역할에 개방적이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인간이면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는 성폭력 가해나 피해경험이 적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인 것 같다. 아직까지 대도시보다는 농촌이 남녀 성역할이 개방적이지 않으며, 성폭력 피해나 가해에 관대함을 보여주고 따라서 좀 더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인터넷이 많은 변화를 주는데도 의식의 변화는 문명의 변화만큼이나 빠르게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문명의 이기로 이런 놀라운 사건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남ㆍ여 성평등 의식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의식의 변화도 빠르게 유도할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농촌에도 국가에서 추진하려고 하는 것처럼 정보화가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한 채로 정보화시킬 때 나타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즉, 남존여비 의식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음란물에 노출되고 이를 실험해 보기 위한 대상자를 사냥하러 나서는 현상이 또 없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의식이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판단이 서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학습을 유도하고, 게임을 하고, 그 사이에 음란물이 끼어들어오고,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아이들에게 노출되고 중독된다. 음란물 통제 소프트웨어만으로 얼마나 음란물을 막을 수 있을까? 인터넷으로 인한 피해만 부각시키기 어려울 만큼이나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편리한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앞으로는 더 큰 변화를 가져오겠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그만큼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도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 사건은 사회가 변화하면서 병폐로 나타나는 사건이다. 부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이런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의식이 변화를 주도하는 것 이외에도 문제를 찾고 대처하는 데에도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인터넷은 긍정적인 의식변화를 유도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약력>
▶연세대학교 간호학과 학사, 석사
▶독일 아헨대학 사회학 박사
▶신체상·아동발달·노인간호 연구

by 100명 2008. 5. 9. 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