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부터 부시까지… 美 경제통계 조작의 역사

[쿠키 지구촌] 경기가 안 좋을 때 실업률, 소비자물가지수, 경제성장률 등 정부가 발표하는 3대 경제지표 보다 체감경기가 더 싸늘한 이유는 뭘까. 존 F 케네디 대통령(제33대) 이후 미국 행정부가 입맛에 맞게 통계를 주물러왔기 때문이라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37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케빈 필립스가 비평지 ‘하퍼스’ 최신호에서 주장했다.

통계를 어떻게 주물렀나

이들 3대 거시경제 지표는 한국 통계청이 발표하는 것과 흡사하다. 통계청 고용통계 가운데 이른바 ‘실망실업자’는 일정 기간 구직을 포기한 사람이다. 실망실업자는 실제 실업자와 다름없지만 통계상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률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이 개념은 1961년 케네디 정부의 산물이다. 높은 실업률로 이미지 손상이 우려되자 실망실업자로 규정해 실업률 범위에서 제외시켰다는 게 필립스의 주장이다.

30여년 뒤인 빌 클린턴 대통령(42대) 시절에는 한발 더나아가 매달 실시하는 가계조사 표본을 6만명에서 5만명으로 줄였다. 제외된 1만 가구는 도시 거주자들이다. 이 덕에 도시로 몰려든 흑인들의 실업 추계와 빈곤 수치가 줄었다. 앞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40대) 시절엔 군인들을 고용통계에 포함시켜 실업률을 낮췄다.

재임 중 국민총생산(GNP) 수치를 주무른 것으로 유명한 린든 존슨 대통령(36대)은 ‘통합 예산’이란 것을 만들었다. 이 ‘혁신적인 조치’는 연방 예산을 사회보장 예산과 합쳐 흑자 예산으로 둔갑시켰다.

닉슨 대통령은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아서 번스 2대 연방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하여금 인플레이션 개념 가운데 코어 인플레(근원 인플레)를 고안토록 했다. 변동이 심한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시킨 개념의 이 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CPI)보다 낮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레이건 행정부는 주택가격이 CPI를 부풀린다며 제외시키고 대신 렌트비를 지수 산정 항목에 포함시켰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41대)은 인플레 산정 기준에서 구(舊)산업시대 품목을 많이 배제하고 서비스와 금융부문에 많은 비중을 둬 이자율을 낮추려 했다. 이렇게 되면 국가채무 이자가 감소하고 공무원 은퇴자 및 사회보장 수혜자에 대한 지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만약 안 주물렀다면?

실업률 개념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5%대 초반이 아닌 9∼12%로 올라간다. 인플레는 지난해 4%였으나 조작이 없었다면 7∼9%에 달해 실제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에 근접한다는 것. 특히 레이건 행정부 시절 집값을 제외시키지 않았더라면 2000년대 초반 이후 주택시장 호황기 동안의 인플레는 3∼4%포인트 더 높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경우 무분별한 대출로 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빚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필립스는 설명했다.

필립스는 “인플레와 이자율이 인위적으로 눌려 있었던 상황은 주택담보대출 붐을 일으켜 국민들로 하여금 빚을 더 지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정권 모두 지표를 속여왔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로 얻는 혜택과 이득은 워싱턴 정치인이나 부유한 엘리트의 몫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by 100명 2008. 5. 8.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