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조작 농산물 ‘안전성 심사 논란’ 쟁점은

기사입력 2008-05-07 22:16


[한겨레] 4개 부처 관여 - “중복심사 비효율”↔“상호견제 가능”

서류검사로 끝? - “국제표준 따른것”↔“새 평가기술 필요”

지경부가 책임 - 교역조건으로 삼을 우려


지난 1일 국내 식품업체들이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인 미국산 식용 옥수수를 처음 수입하면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안전성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소비자·환경단체들은 “안전성이 다 검증되지 않았다”며 식용 지엠오의 수입 확대에 반대하며 지엠오 표시제 강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 현행 지엠오 안전성 심사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연구자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한쪽은 심사 평가의 중복을 없애 효율을 높이자고 주장하는 반면, 시민단체들은 안전성 관리를 지금보다 더 강화하라고 주장한다.

박선희 식품의약품안전청 신소재식품팀장은 7일 “식용 지엠오 콩의 안전성을 심사하는 데에만 4개 부처나 관여하는 현행 심사제도는 너무 복잡하다”며 심사 평가의 단순화를 주장했다. 국내에서 지엠오 안전성 심사는 △식품위해성 심사 △환경 위해성 심사로 나뉘어 이뤄지는데, 식품위생법과 올해 시행된 엘엠오법(LMO법·유전자변형생물체 국가간 이동에 관한 법)이 이를 관장한다.

‘카르타헤나 바이오안전성 의정서’를 반영한 엘엠오법이 올해 발효되면서 심사 절차는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지엠오 옥수수가 수입되더라도 쓰임새에 따라 안전성 심사 절차는 다르다. 식용으로 들어오면 보건복지가족부와 식약청이, 공업용으로 들어오면 지식경제부가, 작물·사료용으로 들어오면 농림수산식품부가 맡는다. 예를 들어, 식용 지엠오 콩의 안전성 심사 의뢰가 식약청에 들어오면 식약청은 ‘인체 유해성’을 평가하고 ‘환경 위해성’ 평가는 농촌진흥청, 환경과학원, 수산과학원에 의뢰해야 한다. 세 곳의 심사가 다 이뤄진 뒤 식약청이 최종 심사를 한다.

안전성 전문가들은 “중복 심사로 일만 늘고 책임 소재는 흩어졌다”고 말한다. 김동헌 농업생명공학연구원 생물안전성과장은 “불필요한 중복 심사와 규제가 심하다는 얘기가 많다”며 “지엠오의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현행 심사제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선희 팀장은 “유럽에선 ‘문도 하나, 열쇠도 하나’(원 도어, 원 키)라는 정책을 따라 한 기관(EFSA)이 식용 지엠오 안전성 심사를 모두 책임지고 총괄한다”며 “일본도 식품위해성 심사는 국무조정실 산하 식품안전성평가위원회가 책임을 진다”며 창구 일원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환경단체 쪽의 시각은 다르다. 창구 일원화가 오히려 지엠오 개발사들의 안전성 심사 요청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도움이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준호 서울환경연합 벌레먹은사과팀장은 “여러 기관들이 심사 평가에 참여하는 게 서로 견제하며 한 기관의 독주를 막을 수 있어 오히려 바람직하다”며 창구 일원화에 반대했다.

시민·환경단체 쪽은 오히려 현행 지엠오 심사가 지엠오 개발사들이 낸 안전성 시험결과 서류만으로 이뤄진다는 데 근본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2일 성명을 내어 “유전자 조작에 대한 안전성 관리가 철저한 유럽연합은 식용 지엠오 승인이 15건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58건을 수입 승인했다”며 “개발업체가 제공하는 서류 검사만을 거쳐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소비자가 믿을 수 있는 안전성 평가기술을 개발하고 안전성 심사제도를 더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박선희 팀장은 “신약의 안전성 심사도 서류 심사로 이뤄진다”며 “지엠오 개발사들이 사전에 다른 연구기관에 의뢰해 안전성 시험을 한 뒤 자료를 내면, 그 자료를 전문 심사위원들이 충분히 심사해 승인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국제 표준을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지엠오 안전성의 국가책임기관이 산업과 통상을 다루는 지식경제부라는 점도 지엠오 안전성의 새 쟁점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최준호 팀장은 “지식경제부가 지엠오 안전성을 책임지는 현행 체제에선 안전성 문제가 교역 조건으로 다뤄질 위험성마저 안고 있다”며 “지엠오 안전성의 책임기관을 지식경제부에서 환경부나 농림식품부로 바꾸는 법 개정 운동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장호민 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장은 “소비자의 불안을 줄이려면 국가가 ‘안전성 관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by 100명 2008. 5. 7.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