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폐관한 명보극장은 어떤 극장?

명보극장은 1957년 8월 25일 그레이스 켈리, 빙 크로스비 주연의 <상류사회>를 시작으로 1234석 규모의 단관으로 개관하였다.

한국영화 상영과 외화상영의 메인 메카로써 영화상영을 해오던 명보극장은 1993년 4월 보다 진보적인 극장사업을 위해 단관체계에서 멀티플렉스화된 극장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1993년 3월 휴관프로였던 깐느 영화제 수상작 <플레이어>를 상영하기까지 2,0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지난 40여년 동안 '명화의 전당'으로 많은 화제작들을 상영해 왔던 명보극장은 공사에 들어갔었다.

명보극장은 1977년 현 극장주인 신영균 회장께서 극장을 인수하기까지 <성춘향>, <폭군 연산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등 타 극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극장 영화 위주로 상영하여 좋은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이미지를 구축하여 왔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이후 <깊고 푸른밤>, <겨울 나그네>, <속 별들의 고향>, <접시꽃 당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같은 우수 한국영화의 계속적인 상영으로 확고해져 좋은 한국영화는 명보극장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외화의 경우도 <빠삐용>, <아마데우스>, <깊은밤 깊은 곳에>, <아웃 오브 아프리카>, <지옥의 묵시록>, <간디>, <양들의 침묵>등 해외 영화제 수상작들이나 아트 필름 내지는 고급영화를 다수 상영하며 양질의 영호를 국내 팬들에게 소개 하여 왔었다.

이와 같이 양질의 고급 영화만을 고집하던 명화의 전당 명보의 전통을 이어 명보극장은 1년 4개월여의 공사를 마치고 1994년 최대의 히트작이였던 <트루라이즈>를 시작으로 "명보프라자"란 새로운 이름으로 고객 앞에 다시 나타났다.

94년 리모델링 당시 명보프라자는 지상 7층, 지하 4층 규모의 5개관으로 완공되었으며 1관 494석, 2관 378석, 3관 432석, 4관 432석, 5관 304석 등 총 좌석수 2040석 규모의 국내 최대의 상영관을 자랑했었다.

한편 극장설계는 1992년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수상하고 "예술의 전당" 설계를 담당했던 김석철씨가 직접 맡았었는데, 김석철씨는 1994년 건축대상출품작으로 "명보프라자"를 선정하여 출품했으며 그해 최고로 아름다운 건축대상을 수상하여 명실공히 실용성과 작품성을 두루갖춘 극장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1994년 새로이 개관한 명보프라자는 각종 최첨단 시설을 구비하여 대고객 서비스에 만전을 기하였는데, 먼저 영상 시설의 영사기 부분에 있어서는 무인 자동 영사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영사사고 예방을 가능하게 하였고, 대한민국 최초로 최첨단 음향 시설인 THX(루카스 사운드 시스템)와 DTS(돌비 디지털 사운드 시스템)을 설치, 고음에서도 깨끗한 음질을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이때부터 음향면에서는 국내에서 명보프라자를 따라올 곳이 없었으며 음향=명보프라자 라는 등식이 성립하였고, 국내에 디지털 사운드 음향시대를 열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해 주었다.

1994년 국내최초 5개관으로 멀티플렉스 극장의 시대를 선두해오며 새롭게 오픈한 명보프라자는 그후 다수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국내에 설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오다가 보다 편리한 고객편의를 위해 또다시 2001년 9월부터 약 3개월에 걸쳐 극장내부의 인테리어 및 좌석간의 간격을 기존 극장보다 넓은 105㎝∼120㎝로 넓히는 공사를 했으며 그간 사용해 오던 명보프라자란 명칭을 "명보극장"으로 정식 변경하여 또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2005년 경영상의 이유로 5개관에서 3개관으로 스크린을 축소한 명보극장은 다양한 변화를 꾀했지만 대형 멀리플렉스의 공세에 밀려 결국 문을 닫게 됐다.

by 100명 2008. 5. 6. 1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