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추억과 멀티플렉스
저공비행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칸 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35명의 영화감독들이 만든 3분짜리 영화들을 모은 작품이다. 공통된 소재는 영화관. 보면 재미있다. 극장 의자에 앉아서 세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영화를 보면 재미있는 일관성이 느껴진다. 옛날 영화관이나 삼류 영화관에 대한 향수, 현대판 멀티플렉스에 대한 경멸. 기타노 다케시는 자신의 영화 <키즈 리턴>을 툭 하면 필름이 끊어지는 헐어빠진 시골 극장에서 틀고, 안드레이 콘잘롭스키의 주인공은 역시 헐어빠진 낡은 극장에서 섹스하는 연인들을 애써 무시하며 <8과 2분의 1>을 본다. 장이머우와 천카이거는 자전거를 밟아 발전을 해야 간신히 필름을 돌릴 수 있는 시골 야외극장을, 로만 폴란스키는 뒤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음란한 신음을 질러대는 에로영화 상영관을 찾는다. 그나마 현대적인 영화관을 찾는 감독은 난니 모레티 정도? 켄 로치도 찾지만 그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결국 영화 보는 걸 포기하고 축구 구경하러 나간다.

도대체 왜들 그럴까? 그러는 편이 더 영화관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 쉽기 때문이고 또 재미있기 때문이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멀티플렉스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만들어지겠는가? 그러나 이를 넘어서 멀티플렉스에 대한 보편적인 혐오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보도자료를 읽어보니 이 영화를 제작하고 편집에도 관여한 질 자콥(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역시 ‘산업화된 대형 극장’에 대해 간접적으로 불평을 늘어놓고 있긴 했고.

그러나 솔직해지자. 현대판 멀티플렉스가 그렇게 시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멀티플렉스로 고쳐진 뒤 영화 감상 조건이 더 형편없어진 곳도 있다. 영화관이 아무리 늘어도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은 특별히 늘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러분은 정말로 기타노 다케시의 시골 영화관이나 뒤에서 생방송 포르노를 연출하는 싸구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싶은가? 정말로? 옛날 영화관이 어땠는지 정말 기억 안 나나? 툭 하면 엔드 크레딧을 끊어 먹고 화면 비율도 엉망이었으며 입체 음향도 안 나오고 의자는 불편했고 가끔 쥐도 나왔으며 결정적으로 극장 사람들은 영화를 틀어준다는 작업이 뭔지도 잘 몰랐다. 그냥 보는 사람, 틀어주는 사람 모두 개념이 없었던 거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놀려대는 건 너무나도 쉽지만 적어도 우린 지금 훨씬 가까운 곳에 있는 영화관에서 훨씬 편한 조건에서 훨씬 다양한 영화들을 본다.

과거를 향수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향수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그 영화를 보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달콤한 기억이라고 해도 현실 세계에서 그 과거가 다시 돌아온다면 즐거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건 꼭 영화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진짜 과거가 아니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by 100명 2008. 5. 5. 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