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구조조정 태풍에 휩싸였다

기관장 일괄사퇴…예산 축소 R&D 위축 우려

과기부ㆍ기관 통폐합 따른 파장에 위기감 고조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중추 역할을 담당해 온 과학기술계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정치적 외풍과 구조조정의 태풍에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정권 교체를 계기로 임기를 남겨둔 연구기관장들이 일괄 사퇴압박을 받는가 하면 아무런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대학-출연연간 통합이 추진됨에 따라 연구원들이 심하게 동요하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예산 10% 축소 방침에 따라 각 출연연구기관들도 R&D 활동을 포함해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어 연구개발 활동마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같은 위기감은 올 초 정부조직개편 당시 과학기술부 폐지에 따른 부작용이 서서히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져 현 정부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불신이 커질 조짐이다.

◇출연연 기관장 일괄 사표ㆍ무리한 통합 추진=1일 교육과기부 관계자는 "최근 산하 13개 정부 출연연구소 기관장들이 모두 사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지식경제부 산하 출연연구소 기관장들도 일제히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과학기술 전문가들인 기관장들에게 사표를 내라고 요구한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서강대 화학ㆍ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이덕환 교수는 "과기계 연구기관장들에 대한 사표 제출 요구는 대한민국 역사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과학기술인이 우대 받고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약속은 어디 갔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부처인 교육과기부 내에서도 우려가 흘러나왔다. 한 관계자는 "다양성이 보장되고 안정적인 연구환경이 조성돼야 할 출연연구소 기관장이 정권교체를 이유로 사표를 내는 것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교과부 담당 부서는 사표를 낸 연구기관장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출연연간 통합 추진도 절차와 내용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 서울대-KIST에 이어 최근에는 KAIST-생명공학연구원, 충남대-기초과학지원연구원, 창원대-전기연구원간 통합 논의에 불이 지펴졌다.

KAIST의 신성철 교수(前 대덕클럽 회장)는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출연연구기관의 시대적 역할 재정립을 위한 점검은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지금처럼 물리적,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오히려 연구소에 대한 매력을 잃게 해 연구원들을 떠나게 만들어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부 통폐합 부작용 현실화하나=과기계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정부의 흔들기가 거세지면서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불신도 함께 싹트고 있다. 이덕환 교수는 "과기부를 없애고 과학재단도 뜯어고치고 출연연도 뒤집어엎는 등 현 정부가 40년간 축적돼온 과학기술 행정체계를 흔들고 있다"며 "지난 인수위 시절 한 고위관계자가 과학기술 행정체계에 대한 큰 불신을 나타낸 적이 있는데 그게 현실화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도 최근 발표한 성명서에서 "정부 조직개편 당시 교육부와 과기부 통합이 한쪽을 다른 쪽으로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추진되면 의도했던 목표나 효과를 달성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며 "청와대와 일부 인사들의 정치적 욕심이나 자의적 판단으로 대학-출연연간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본래 목적을 이루기는 커녕 내부 구성원들의 심각한 반발을 초래할 뿐"이라며 현 정부에 대립각을 세웠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연연 관계자는 "현 정부는 겉으로는 2012년 R&D 16조원이니, GDP 대비 5%니 하면서 예산 확대를 말하면서도 뒤에서는 연구자들의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뒤흔드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by 100명 2008. 5. 3. 1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