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오락’이 산업을 일으키다

기사입력 2008-04-29 03:09 |최종수정2008-04-29 05:35
[동아일보]

스타크래프트 10년… 문화코드 자리매김

《시험기간이 되면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대화 한 토막.

“시험 잘 봤어?” “몰라. 묻지 마. GG야.”

‘GG’는 ‘Give up Game’에서 유래된 말로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패배를 인정할 때 쓰이는 용어다. 하지만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포기’를 뜻하는 ‘대명사’가 됐다.

인간의 후예인 ‘테란’, 정체불명의 괴물 ‘저그’, 고차원 지능을 가진 우주종족인 ‘프로토스’ 등 가상의 3개 종족이 벌이는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국내에 상륙한 지 만 10년이 됐다.

미국 게임업체 블리자드가 1998년 출시한 스타크래프트는 이제 게임이 아닌 우리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 출시 이후 CD 500만 장 팔려

전문가들은 “과거에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컴퓨터 게임이 있었지만 스타크래프트처럼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은 게임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1998년 출시 이후 게임 CD 500만 장이 팔렸고, 이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스타크노믹스’(스타크래프트의 경제학)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1997년 77곳에 불과했던 전국의 PC방은 스타크래프트 붐을 타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지난해에는 2만5000곳을 넘어섰다.

‘게임 산업’을 탄생시키는 배경이 된 것도 스타크래프트다.

연 관중 1900만 명,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다 관중인 12만 명(2005년 8월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결승전), 12개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단 등.

명지대 e스포츠연구센터 이장주 교수는 “네트워크를 통해 원거리 사용자들끼리 게임이 가능한 스타크래프트로 인해 국내 e스포츠의 싹이 텄다”며 “이제 국내 e스포츠 시장은 연 800억 원가량의 대규모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 이안재 수석연구원은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에 게임 채널이 더해지면서 국내 e스포츠의 상업적 가치는 크게 증가했다”며 “e스포츠는 프로스포츠 산업의 성격과 콘텐츠 산업의 특징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막대하다”고 설명했다.

○ ‘중독성’ 부정적 시각 극복이 과제

스타크래프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15∼20분 정도의 짧은 게임 시간, 최대 8명까지 참여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스타크래프트의 특성이 우리나라 국민의 정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풀이했다.

이 같은 폭발적 인기는 게이머들에 대한 인식도 바꿨다.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유승호 교수는 “과거에는 ‘사회에서 낙오된 집단’으로 치부되던 게이머들에 대한 인식이 억대 연봉을 받는 프로게이머가 속속 출현하면서 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젊은 층에서는 이미 스타크래프트 게임 용어가 일상적인 생활 언어로 쓰이고 있다”며 “이는 이미 게임이 독자적인 문화 영역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 매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덕성여대 사회학과 김종길 교수는 “게임 자체가 가진 중독성과 몰입성 때문에 청소년층에서 각종 문제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대중문화로 자리 매김한 영화 등도 초기에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며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산업이자 문화 영역으로 등장한 게임을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나갈지에 대한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by 100명 2008. 4. 29. 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