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시각] 문화산업육성, 반성이 먼저다

기사입력 2008-04-24 12:45 김철진 eagle@
#1: 흥행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쥬라기공원’을 만든 것은 1993년이었다. 당시 6,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한 해 동안 8억5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이러한 흥행수익은 현대차 150만대를 수출해서 얻은 이익과 같은데, 지난해 현대차의 실제 수출 규모는 그 절반도 안 되는 64만 대였다.

#2: 영국의 소설가 J K 롤링이 쓴 마법사 이야기 ‘해리 포터’ 시리즈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적으로 벌어들인 금액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08조원(소설·영화·관련 캐릭터 판매액 포함)이다. 이는 같은 기간 우리 반도체 수출액 231조원보다 무려 77조원이나 많다. '콘텐츠의 힘'이 바로 이 같은 비밀을 푸는 열쇠이다.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두 인용문 사이에는 10년이 넘는 세월의 격차가 존재한다. #1은 1994년 당시 대통령자문기구이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의 일부이고, #2는 서병호 방송채널사용사업자협의회 회장이 지난 1월 '디지털방송콘텐츠진흥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문화가 학문이 아닌 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1994년의 이 ‘쥬라기공원 보고서’였다. 이후 고부가가치 미래산업으로서 문화산업의 가능성에 눈뜬 정부는 문화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섰다.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정(1999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2001년)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은 문화산업은 296억 달러(2005년 기준) 시장규모로 성장, 세계 9위에 오르는 외형적 성과를 이뤘다.

문제는 내용이다. 세계 9위라고는 해도 우리나라 문화콘텐츠가 전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에 불과하다. 점유율 47%(금액 5,535억달러)로 독보적인 1위를 구축하고 있는 미국은 차치하고라도 2·3위를 달리는 일본(7.8%)과 영국(6.8%)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 ‘쥬라기공원 보고서’ 이후 14년만에 다시 ‘해리포터’를 예로 들며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게임, 애니메이션, 방송, 영화, 출판, 음악,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자랑하는 문화산업은 원 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가 가능한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21세기를 이끌어 갈 대표적인 미래산업으로 꼽힌다. 특히 고학력·고품질의 인적 자원이 풍부한 우리나라에게 가장 적합한 산업이 바로 이 문화산업이다.

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불린다. 21세기의 패권을 노리는 세계 각국은 앞다퉈 문화산업을 국가 아젠다로 정한 뒤 강력한 진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콘텐츠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미국은 물론 일본의 ‘지적재산추진 전략’, 영국의 ‘창조산업 발전전략’, 중국의 ‘문화산업기지 건설전략’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이명박 정부도 ‘2012년 세계 5대 문화 콘텐츠 산업강국’을 목표로 정했다. 하지만 야심찬 목표보다 더 중요한 건 지난 10여 년간의 과오에 대한 냉정한 반성이다. 매년 문화산업 콘텐츠 진흥에 수천억 원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나 음반 산업은 시스템 붕괴 위기를 맞고 있고, 한 때 아시아를 휩쓸던 ‘한류바람’도 잠잠해진지 오랜 현실 아닌가.

따라서 ‘2012년 5대 문화산업강국’이라는 목표를 이루려면 과거에 대한 통렬한 반성 위에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실천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by 100명 2008. 4. 25.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