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162) 껌

기사입력 2008-04-25 08:00
추잉껌 나무 주원료 '치클' 고갈

천연-화학물질 합리적 활용 필요


껌은 누구나 좋아하는 기호식품이다. 껌이 구강 보건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주장이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입안을 상쾌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껌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껌이 정말 귀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껌은 가장 값싼 상품 중 하나다. 정말 `껌 값'도 안 되는 상품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껌은 중앙아메리카 원산의 `사포딜라'라는 추잉껌 나무의 수액(樹液)을 끓여서 얻은 끈적끈적하고 탄성이 있는 `치클'로 만들었다. 마야 사람들이 그런 치클을 처음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치클을 씹었다고 한다.

치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860년의 멕시코 혁명 덕분이었다. 미국 망명길에 올랐던 독재자 산타 안나가 치클 250㎏을 가지고 왔다. 고무 대용품으로 팔아서 망명 비용을 충당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안나는 치클을 제대로 팔기도 전에 귀국 길에 올라야 했다.

사진사였던 미국인 친구 토머스 애덤스가 안나가 맡겨둔 치클을 작은 조각으로 잘라서 아이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천연 치클을 그대로 이용했던 애덤스의 껌은 그야말로 천연고무 조각을 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상당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런 껌을 성공적인 상품으로 만든 것은 비누 판매업을 하던 리글리였다. 리글리는 치클에 설탕과 향료를 넣어서 만든 맛있는 `추잉껌'을 사은품으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리글리의 껌은 특히 어린이와 군인에게 인기가 높았다. 엄청난 양의 껌을 씹었던 미군들이 추잉껌을 전 세계에 유행시키는 역할을 했다.

자연에서 얻은 원료로 만든 제품은 소비가 지나치게 늘어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치클을 얻기 위해 수액을 채취하려면 추잉껌 나무의 껍질에 칼로 상처를 내야만 한다. 상처가 난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껌 때문에 추잉껌 나무만 수난을 겪게 된 것이다.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하면 껌 값은 `금값'이 될 수밖에 없고, 자칫하면 껌을 다시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급격히 줄어들고 있던 사포딜라 대신 다른 종류의 고무나무에서 얻은 천연고무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에서 그런 일은 드물지 않았다. 자연산 산삼의 수요를 채우기 위해 인공적으로 인삼을 재배해야만 했다. 원유가 고갈되면서 원자력을 비롯한 대체 에너지 개발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자연산에만 집착하면 우리 삶이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껌의 경우에는 1960년대에 개발된 합성고무가 대안이었다. 부타다이엔과 같은 탄화수소를 그물처럼 연결시켜서 만든 합성고무는 천연고무에 버금가는 탄성(彈性)을 가진 훌륭한 소재였다. 비록 석유제품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었지만 껌의 재료로는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치클이나 천연고무보다 화학적으로 합성한 합성고무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껌에 사용하는 합성 물질은 그 뿐이 아니다. 껌의 접착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폴리비닐아세테이트도 석유제품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이다. 색깔, 당도, 향기를 증진시키기 위한 첨가제도 사용한다.

소비자에게 껌의 성분을 자세하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소비자도 그런 정보를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천연물질은 모두 안전하고, 인공적으로 합성한 화학물질은 모두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진 소비자에게 그런 정보는 혼란만 부추긴다.
by 100명 2008. 4. 25.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