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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제3 창업·3세 경영 체제 전환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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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하는 李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지하 1층 국제회의실에서 대국민 사과와 퇴진 의사를 밝힌 뒤 회의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남호진기자> |
ㆍ정치·사회 전반 삼성로비 인식 여전
ㆍ‘불법집단’ 이미지 차단 상징적 조치
이건희 회장의 사임은 삼성사태에 대한 책임 통감 차원의 2선 퇴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제3의 창업’을 위한 승부수로 해석되고 있다.
특검수사 결과로 불법 경영집단이란 부정적 이미지 확산을 막고 초일류 기업의 입지를 유지하는 한편 3세 경영체제로의 전환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는 이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이 가장 상징적인 조치이기 때문이다.
삼성 오너경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회장은 22일 1987년 선대 회장에게서 대권을 물려받는 지 20여년 만에 회장직을 내놓는 결단을 내렸다. 이는 그룹 내부뿐 아니라 재계의 일반적인 관측을 뛰어 넘는 충격적 내용이었다. 이 회장이 전략기획실 폐지 등 쇄신안을 내놓으면 위기를 넘길 것이란 예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삼성 측은 이건희 회장은 물론 이학수 부회장의 퇴진조차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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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분위기를 뒤로 하고 이건희 회장이 스스로 퇴진하는 초강수를 선택한 것은 삼성그룹이 현재 처해있는 현실이 이학수 부회장을 비롯한 전문 경영인들의 교체만으로는 타개하기 어려운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건희 회장의 퇴진은 이미 치밀하게 준비돼 왔다는 징후가 농후하다. 이 회장은 지난 11일 삼성특검 조사 직후 기자들에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룹 경영체계와 저를 포함한 경영진의 쇄신 문제도 깊이 생각해 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의 발언은 ‘돌출 발언’이 아니라 ‘준비된 발언’이었던 셈이다.
이는 무엇보다 특검 수사로 이 회장을 비롯한 그룹 핵심 경영진들이 사법처리를 받았지만 의혹은 도리어 확산되면서 특검을 통한 면죄부 주기란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이 이 회장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법 대선자금과 안기부 X-파일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 정치권과 정부부처, 사회단체, 언론계 등 사회각계에 삼성의 로비가 뻗어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불식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회장 퇴진과 함께 삼성그룹의 브레인 역할을 했던 전략기획실도 해체과정을 겪게 됐다.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도 남은 일들이 마무리되는 대로 사임하기로 했다. 또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사임, 아들 이재용 전무의 고객총괄책임자(CCO) 사임 등 오너일가의 동반 퇴장은 ‘황제 경영’이란 이미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포괄적 조치로 보인다. 이 회장과 전략기획실의 빈자리를 대신할 조직은 사장단 회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전략기획실이 중심에 서서 삼성 계열사들을 조직적으로 총괄해 오던 삼성은 ‘중앙집권체제’에서 계열사들의 독자적인 경영체제로 전환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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