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관객이 원하는 극장 - 브런치 즐기고, 핸드백 보관해주는 극장 없나?
기사입력 2008-04-16 16:51 |최종수정2008-04-16 17:42


브런치 즐기고, 핸드백 보관해주는 극장 없나?

아무리 극장에서 먹는 음식이라도 팝콘과 콜라는 간식이다. 조조 영화를 보면서 브런치를 즐길 수 있으면 어떨까?

영화상영이 한 시간쯤 지나면 슬슬 무릎 위에 올려놓은 핸드백이나 바닥에 내려놓은 쇼핑백이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아예 극장 사물함이 있어서 보관해주면 어떨까?

영화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는 맛이 있다지만 극장 입구부터 붐비는 사람들에 질릴 때가 있다. 조금 여유 있다면 어떨까?

대학 시절, 교수님께 들었던 영화들 혹은 선배들이 소위 '죽여준다'고 말한 그 영화들은 사실 말로만 글로만 보는 경우가 많다. 대학교 내에 극장이 생겨서 그런 영화들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모두 관객들이 설문조사에서 답변한, 아직까지는 상상에 불과한 바람들이다.

국내최대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와 광화문 씨네큐브가 함께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영화를 보러 가면서 함께 즐기고 싶은 문화생활”, “극장에서 받고 싶은 여성 우대서비스”, “작은 영화관을 선호하는 이유”, “대학교 내 극장이 생긴다면 보고 싶은 영화” 등을 묻는 관객성향 설문을 진행해 네티즌관객 7,272명이 응답했다.


극장에서 ‘브런치’를 즐기고 싶다

“영화를 보러 가면서 함께 즐기고 싶은 문화생활이나 여가생활”을 묻는 설문에 응답자 62.8%가 ‘브런치’라고 꼽아 공연, 쇼핑 등보다 ‘브런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브런치(brunch)란 브렉퍼스트(breakfast)와 런치(lunch)의 합성어로 통상의 아침식사와 점심식사 중간의 늦은 오전 시간대에 먹는 식사이다. ‘브런치’를 선택한 응답자들은 “영화를 보기 전 가볍게, 영화를 보고 난 후 출출하기 때문에” 브런치를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와 관련된 공연’을 즐기고 싶다는 응답자가 14.6%로 2위, ‘쇼핑’이 11.7%로 3위를 차지했으며, 이 밖에 미술전시회, 독서, 음악회 순으로 조사됐다.

극장에서 핸드백이나 쇼핑백을 보관해 주었으면…

여성관객들은 극장에서 ‘핸드백이나 쇼핑백 보관 서비스’를 받고 싶은 것으로 나타났다. “극장에서 여성 우대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어떤 서비스를 가장 선호하는가”를 묻는 설문에는 응답자 과반수가 넘는 59.2%가 ‘핸드백이나 쇼핑백 보관서비스’를 원한다고 답했다.

이어 ‘생리대 비치’가 411명(21.0%), ‘파우더룸에 비치된 향수 샘플’을 원하는 응답자는 386명(19.7%)로 나타났다.

대형극장은 너무 붐벼서 정신이 없다


멀티플렉스가 아닌 작은 상영관을 선호하는 관객들은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이유’가 가장 주요한 이유로 조사됐다.

“멀티플렉스가 아닌 작은 상영관들을 선호하는 이유는?”이라는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76%가 ‘사람들이 너무 붐비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응답자 의견을 살펴보면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주말에는 사람들이 너무 붐벼서 정신이 없다” 는 의견이었다.

뒤이어 ‘상영되는 영화들이 좋아서’라는 의견이 15.5%, ‘극장이 마음에 들어서’가 4.2%, 기타 의견이 4.1% 순이었다.

대학캠퍼스에서 1980년~1990년대 흥행작 보고 싶다

한편, 대학 캠퍼스 내에 극장이 생긴다면 가장 보고 싶은 영화들은 ‘1980~1990년대 흥행작’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 캠퍼스 내에 극장이 생길 경우, 어떤 영화들이 상영되기를 바라는가?”라는 설문에는 총 1,564명이 응답에 참여했다.

1위는 응답자 52.3%가 꼽은 ‘1980~1990년대 흥행작’이었다.

이어서 ‘아시아 영화, 제3세계 영화’를 보고 싶다는 의견이 20.3%으로 2위를 차지했으며 ‘유럽 예술 영화’가 14.5%, ‘할리우드 고전영화’가 12.7% 순이었다.


틈새 관객, 영화컨텐츠가 아닌 극장서비스로 모실 수 있다

이번 광화문 씨네큐브 극장과 맥스무비가 함께 한 설문결과는 그 동안 소위 ‘작은 극장’들이 취했던 전략과 관객들의 생각이 다소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멀티플렉스가 아닌 작은 상영관들을 선호하는 이유?”라는 설문결과가 그렇다. ‘상영되는 영화들이 좋아서’라는 응답은 15%대에 불과하고, 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76%의 관객들은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서’ 작은 극장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어떤 측면에서 “대학교 내에 극장이 생긴다면 1980년대~1990년대 영화를 가장 보고 싶다”는 설문결과와 맥락이 이어진다. 교양 영화과목에서 들었거나 추천영화 리스트에 포함된 유럽예술영화나 할리우드 고전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다수 ‘작은 극장’들이나 ‘작아지는 극장’들은 15% 관객군에만 초점이 맞춰져 컨텐츠 확보 여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규모 개봉작들을 확보하려고 물밑 전쟁을 벌이이거나 독립형 극장들이 점차 멀티체인극장으로 전환되는 것은‘작은 극장’ 혹은 ‘작아지는 극장’들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이 설문의 결과는 ‘작은 극장’의 입장에서는 딜레마이다. 이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 서비스에 반영시키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해당극장의 단골관객은 전체관객이 적기 때문에 그 극장을 선호한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관객을 줄여야만

관객이 늘어난다는 터무니없는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확대해서 상황을 보면 달라질 수 있다. 설문결과는 ‘여유’를 원하는 관객군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렇게 풀어보면 틈새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극장에서 브런치를 즐기고 싶고, 극장에서 핸드백을 보관해주었으면 하는 관객들의 바람과도 일치한다.

물론 브런치를 제공하고 핸드백을 보관해준다고 갑자기 관객이 늘어날 리는 만무하다. 그보다는 ‘극장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서비스를 찾는 틈새관객의 존재에서 힌트가 있을 수 있다. 당연하게도 극장의 가장 중요한 컨텐츠는 극장서비스라는 점으로 귀결된다.

화제작 재상영이든 소규모 개봉작이든 희소성 있는 영화컨텐츠를 확보한 후에 해당극장의 관객들이 원하는 극장서비스라는 한 가지 무기를 더 준비한다면 틈이 열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즉, 장사가 될만한 영화가 아니라 관객이 원하는 극장서비스를 찾는다면 파이먹기 게임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관객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설문결과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by 100명 2008. 4. 16. 2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