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시네마, 비디오테이프 상영물의
사전공지없이 디지베타 상영


-“화질은 영화특성에 의한 것, 문제없다”
-“사과했으니 문제될 것 없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의료보험 민영화’를 다룬 영화 ‘식코’.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면서,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다. 영화자체가 사회 적시적인 화두를 던지는 영화이기에 사회적 관심도 컸지만, 영화자체를 떠나 다른 문제로 인터넷 블로거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극장서 비디오를 보다

A씨는 지난 8일 ‘식코’를 관람하기 위해 롯데시네마에서 인터넷 예매를 했다. 예매를 한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지점은 3층에 상영관이 위치했지만 A씨가 관람하게 된 ‘시네스튜디오’는 4층에 동떨어져 위치한 곳이었다. 건대입구 지점에서는 이미 몇 편의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었지만 시네스튜디오에서 관람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A씨는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크린에 영사되는 화면의 비율이 맞지 않아 등장인물들이 옆으로 퍼져 보이고, 자막은 화면 아래로 동떨어져 있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비디오를 보는 기분이 든 것.

A씨는 영화가 끝난 후 영화포맷이 필름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출구 직원에게 문의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필름이 아니라는 것. 직원은 상영기사에게 문의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대답했고 그날 오후가 돼서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지점의 영사기사로부터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상영된 영화포맷은 필름이 아닌 ‘디지베타’.

디지베타(Digi-Beta)란 소니(SONY)에서 개발한 디지털비디오포맷으로서 주로 방송용으로 많이 쓰이며, 국내에서도 HD(High Definition)방송이 시작되기 이전에 대부분의 지상파방송에 쓰인 이른바 ‘TV방송용 테이프’를 말한다.

방송기술업계의 한 관계자는 디지베타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영화필름 35mm의 풍부한 색감이나 선예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A씨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롯데시네마 건대입구는 아무런 사전공지도 없이 극장에서 필름과 동일한 관람료를 관객에게 징수하고 비디오테이프를 상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자신이 관람했던 상영시간표를 캡쳐해서 증거로 올렸다. 다른 영화에는 디지털상영일 경우 상영작 이름뒤에 ‘디지털’로 명시해 뒀지만, ‘식코’에는 아무런 명시가 돼 있지 않았다.

A씨는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간다는 것은 영화관과 관객이 필름영화를 상영하고, 또 그것을 관람한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동의, 약속한 것”이라며, “롯데시네마 건대입구는 이 같은 관객과의 약속과 최소한 신뢰관계도 무시한 채 사전 공지없이 비디오테이프를 상영하며 관객을 우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식코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관람한 모든 관객들은 사전 공지도 없이 필름이 아닌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필름인 줄 알고 속은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A씨는 롯데시네마 홈페이지와 발권 데스크에서 ‘필름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밝힐 것과, 사과문을 공지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건대입구의 고객담당자는 ‘본사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답변을 회피했고, 다음날까지 버젓이 다음날까지도 아무런 명시없이 식코를 상영하고 있었다.

A씨는 블로그를 통해 “이처럼 뻔뻔스런 운영을 하는 것은 명백히 관객을 기만하는 처사이며, 롯데시네마의 책임있는 대처와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영화를 상영하는 CGV나 메가박스의 경우, 해당영화는 필름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CGV의 홍보팀 관계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만을 상영한다면서 필름외의 영화포맷을 상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메가박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영화진흥원 국제진흥팀의 한 관계자는 “저예산의 독립영화의 경우 일반 영화용 필름이 아닌 디지베타로도 상영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형 상영관들에서는 디지베타의 포맷이라도 ‘블로우업(Blow Up:상업적인 용도의 극장 상영을 위해서 16mm 등으로 제작된 영화를 35mm로 전환하는 작업)’을 통해 35mm필름으로 상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영화관에서 영화포맷에 대한 표기에 관련된 법령은 없으나 상도의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보통이며, 이를 관객에게 주지시키지 않은 경우는 상영관측의 과실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될 것 없다”

이에 대해 롯데시네마 홍보팀 관계자는 “디지베타로 상영된 식코의 화질상의 문제는 없었고, 시네스튜디오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 영화용 필름이 아님’을 명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롯데시네마의 홈페이지에서 어렵게 위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네스튜디오를 접해보지 않고, 일반적으로 예매만 하는 보통의 관람객들은 인지하기 어려워 보였다.

롯데시네마측은 A씨의 항의가 있은 후 이틀 뒤인 10일 건대입구 지점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공지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당사자인 A씨에게 9일 구두상 충분한 사과를 했다는 것.

따라서 “영화포맷에 대한 명시를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실수를 인정하지만, 화질상의 문제는 전혀 없었고, 이미 당사자에게 사과하고 사과문을 게시했으니 문제될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롯데시네마가 게시한 사과문에는 “영화의 화질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특성에 의한 것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문구가 선명했다. 영화포맷에 대한 미명시는 과실이라 인정하면서도, A씨가 제기한 화면비, 자막과 같은 상영환경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해당 영화의 관람객에 대한 어떠한 보상에 대해서도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

롯데시네마측은 ‘식코’가 문제가 되자 현재 건대입구 지점에서 해당영화 상영을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일산점을 비롯한 다른 상영관에서는 디지베타가 아닌 일반필름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다만 며칠 전과는 달리 건대입구 지점에서 상영되는 다른 디지베타 포맷의 영화들에는 ‘(디지베타)’라는 문구를 명시하고 있었다.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롯데시네마측의 사과로 이번 논란은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인터넷을 통해 공론화되지 않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을지 의문이다.

롯데시네마측의 입장은 분명하다. 영화포맷에 대한 명시를 하지 않은 것에는 사과하지만, 상영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관람객이 제기한 상영환경문제에 대한 사과없이, 어찌보면 ‘민감한 관람객’의 성화에 마지못해 사과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롯데시네마가 건대입구 지점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by 100명 2008. 4. 15. 1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