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전인 1998년 4월, 대한민국에 IT 사업의 지형도를 바꾸어 놓을 게임이 등장한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개발하고, LG소프트가 퍼블리싱을 담당한 '스타크래프트'가 바로 그것. 현지 시간으로 3월 31일(한국 시간 4월 1일) 해외에 발매된 후약 2주만에 국내에 상륙한 스타크래프트는 은하계에서 대립하는 세 종족의 이야기를 그린 실시간 전략 게임(이하 RTS)이다.
당시 세계 게임 업계는 'C&C'의 폭발적인 인기와 뒤이어 쏟아져 나온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토탈 어나힐레이션', '워크래프트 2' 등으로 RTS 장르가 승승장구하던 시기였기에, 스타크래프트 역시 이들과 흐름을 같이 하는 하나의 유행성 상품으로 치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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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수준을 넘어 이젠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스타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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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타크래프트는 발매된 해에만 전 세계 150만장을 돌파하더니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950만 장 이상이 판매되는 대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PC방 붐과 맞물려 첫 해 10만장을 돌파한데 이어 그 다음 해에는 100만장을 기록했고, 지금까지 국내 누적 판매량은 무려 600만장에 달한다.
1997년 당시 국내 PC 게임 시장의 연간 매출이 300억원 이하에 1년에 1만장을 돌파하는 게임이 5개가 안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게임 출시 1년만에 100만장이라는 수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스타크래프트의 판매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PC방. 무려 2만개의 PC방이 1998년부터 1999년까지 2년동안 등장했고, 선봉장으로 스타크래프트가 선택되면서 그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이후 국내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평가 받는 신주영과 이기석은 공중파 CF에까지 출연하면서 프로게이머 시대의 도래를 알렸고, 임요환 붐과 함께 e스포츠가 사업으로 인식되면서 대기업들이 프로게임 구단 10여개를 운영할 정도로 국민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http://ftp05.gameshot.net/article/2005_08/gsGA42edab777cb4ep1n1-s.jpg)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중이 지금도 경기장을 찾는다]
스타크래프트 신화를 만든 사람들
스타크래프트를 국내에 수입한 사람은 한빛소프트의 김영만 회장과 블리자드 코리아의 한정원 사장, 그리고 최근 한빛소프트로 복귀한 송진호 상무이다. LG소프트의 김영만 과장과 한정원, 송진호 대리는 스타크래프트의 가능성을 믿고 현재 블리자드의 모회사인 비벤디그룹과 국내 배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당시 스타크래프트의 판권료는 워크래프트 2(5만장)와 '디아블로'(3만장)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으면서 하늘 높은 줄을 몰랐고, 워크래프트 2와 디아블로를 국내에 배급하여 재미를 본 SKC와 시장 점유율 1위였던 동서게임채널이 서로 스타크래프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LG소프트는 모험을 한다. 게임 업계 최고 대우라 할 수 있는 미니멈 개런티 10만장에 제품당 라이센스 10달러의 조건을 제시한 것. 그 당시 10만장을 돌파한 사례가 없는데다 일반적으로 1달러에서 5달러를 라이센스료로 지급하는 상황이어서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스타크래프트의 가능성을 믿고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IMF 사태가 발발하면서 1달러에 700원 하던 환율이 2000원으로 급등, LG소프트는 손해를 감수하며 제품을 팔아야 했고, 이로 인해 LG소프트 게임팀 전체가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블리자드 코리아의 한정원 대표는 "처음 게임을 들고와 10만장을 팔겠다고 했더니 다들 미쳤다고 하더군요. 어찌나 막막하던지... 게다가 IMF가 터지면서 환율이 오르는데 그 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좋은 추억입니다만"라고 그 때를 회상한다. 한빛소프트 김영만 회장 역시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본인이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고 송진호 이사는 "LG소프트가 스타크를 배급하기 직전 국내에 판매한 게임이 '다크레인 2'였는데 그 게임으로 대규모 대회를 처음 열었습니다. 1등이 17인치 모니터였는데 그걸 이기석 선수가 받았죠. 당시 고등학생이라 제가 택시비를 주어서 보낸 적이 있는데 스타크래프트로 다시 인연이 닿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들은 스타크래프트 이후에도 '디아블로 2'와 '워크래프트 3',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국내에 배급하면서 블리자드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http://ftp05.gameshot.net/article/2006_01/gsGA43bdc73adbbb0p1n2-s.jpg) [스타크래프트 신화의 주역 김영만 한빛소프트 회장]
![](http://ftp05.gameshot.net/article/2006_04/gsGA444f38e55f37ep1n1.jpg) [스타크래프트 신화의 주역 블리자드 코리아 한정원 대표]
스타크래프트의 과거
스타크래프트의 인기 뒤에는 제작사인 블리자드의 끊임 없는 노력이 있었다. '로스트 바이킹'과 '락앤롤 레이싱' 그리고 '블랙쓰론' 같은 외주 게임을 제작하던 블리자드는 1994년 '워크래프트'로 게이머들에게 브랜드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 후 1995년 발매된 워크래프트 2가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 유명 개발사로 자리매김 했고, 1996년 E3에서는 워크래프트 2 엔진을 개량해 스타크래프트를 선보였다.
하지만 전 세계 게임 미디어들은 이런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혹평을 들어놓았다. 특히 비평가들은 '워크래프트의 오크가 길을 잃어 우주로 갔냐"며 비아냥 거렸고, 이 게임의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하러 왔던 세계 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계약 자체를 뒤로 미루었다.
![](http://ftp05.gameshot.net/article/2008_04/gsGA47f5c528655c9p1n1-s.jpg) [1996년 E3에 처음 선보인 스타크래프트는 워크래프트 2 엔진을 개량한 게임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블리자드는 독한 마음을 먹고 게임을 고치기 시작했다. 특히 1996년 발매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와 1997년 발매된 토탈 어나힐레이션 같은 RTS 게임의 등장은 이들을 더욱 분발하게 만든다.
1년동안 그래픽과 게임 캐릭터를 수정한 뒤 1997년 알파 버전을 내놓았는데, 그래픽은 지금의 게임과 유사했지만 게임 밸런스 및 컨셉이 많이 달랐다. 예를 들어 저그(Zerg)는 당시 Zurg로 불렸고, 탱크가 공중 유닛을 공격하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이 있었다.
![](http://ftp05.gameshot.net/article/2008_04/gsGA47f5c528655c9p1n2-s.jpg) [1997년 2월이 되어서야 스타크래프트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블리자드는 다시 한번 모험을 감행한다. 게임의 밸런스를 맞추는데만 1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한 것이다. 당시 패키지 게임은 멀티플레이보다 싱글쪽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게임의 그래픽이나 사운드에 많은 신경을 썼고, 멀티플레이 파트는 게임이 출시된 후 패치를 통해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2년을 보낸 뒤 출시된 스타크래프트는 그간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대성공을 기록한다. 이 게임으로 블리자드는 당시 최고의 RTS 게임 개발사로 평가 받던 웨스트우드와 함께 세계 양대 PC 게임 개발사라는 타이틀을 따냈고, 수많은 매체와 단체에게 '올해의 게임'을 수상하는 등 영광을 누렸다.
![](http://ftp05.gameshot.net/article/2008_04/gsGA47f5c528655c9p1n3-s.jpg) [1997년 12월의 스타크래프트, 지금과 많이 비슷해졌다. 탱크가 캐리어를 공격하다니...헉!!!]
스타크래프트의 미래
스타크래프트가 서서히 전설로 기억되기 시작할 쯤 블리자드는 다시 한번 이 게임에 혼을 불어넣는다. '스타크래프트 2'를 발표한 것이다. 2007년 5월 10일 서울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스타크래프트 2는 혁신적인 3D 그래픽으로 탈바꿈 했으며, 다시 한번 프로토스와 저그, 테란의 대서사시를 그리게 된다. 특히 경쟁 관계에 있던 C&C 개발자가 메인 개발자로 참가하면서 두 게임의 장점이 고스란히 게임 내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 2의 미래가 밝기만한 것은 아니다. 현재 블리자드와 e스포츠협회는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저작권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지나치게 컸던 스타크래프트의 영향력으로 인해 워크래프트 3가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처럼 스타크래프트 2 역시 전작의 아성을 뛰어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게다가 과거에 비해 국산 게임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쉽게 블리자드에게 유저를 뺏기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전작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국민 게임으로 부상한 것처럼 이번에도 어려움을 이겨내고 신화를 이어갈 것이라는 의견도 많지만 말이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대다수의 게이머가 스타크래프트 2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이전처럼 발매 연기를 밥 먹듯이 하지 말고, 약속대로 올해 안에 게임이 출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http://ftp05.gameshot.net/article/2008_01/gsGA479fc903ea648p1n4-s.jpg) [일단은 올 연말 발매가 목표인 스타크래프트 2. 설마 또 연기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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