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 개관 10년의 빛과 그늘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1998년 4월4일 스크린 11개와 좌석 2천 석을 갖춘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 CJ CGV 강변점이 서울 광진구 구의동 테크노마트에서 문을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이 속속 멀티플렉스 극장을 개관했다. 1998년 600개에 불과하던 전국 스크린 수는 10년 만인 2008년 3월 현재 2천400개로 4배나 급증했다. 이 가운데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프리머스 등 '빅4' 멀티플렉스의 스크린 수는 절반인 1천200개에 달한다.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멀티플렉스는 밝고 쾌적한 분위기로 관객의 발길을 붙잡았고 관람 문화 자체를 바꿔놨다. 전국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10년 전에 비해 대폭 늘어났고 한국영화는 이에 힘입어 황금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관객 수나 개봉 편수 같은 외형을 키워놨음에도 멀티플렉스는 스크린 독과점 현상을 심화하고 개별 극장의 생존을 위협하는가 하면 각종 할인 제도로 관람료에 대한 관객 기대 액수를 낮추는 등 영화산업 성장을 '거품'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사고 있다.

◇영화 관람 문화를 바꾼 멀티플렉스

CGV 강변점에서 시작된 멀티플렉스는 전국으로 급속히 번져나가면서 영화관에 대한 관객의 인식을 통째로 바꾸기 시작했다.

예전의 극장은 노점상에서 파는 마른 오징어를 사 들고 매표소 앞에 길게 줄을 서 표를 끊은 뒤 아무 데나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는 어두운 공간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24시간 예매가 가능하고 커피 전문점과 스낵 바, 편의점 등 편의시설을 고루 갖춘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영화 관람은 남녀노소 누구나 놀러갈 수 있는 즐거운 취미 생활로 자리잡게 됐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안의 메가박스, 롯데백화점 본점 옆 건물의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가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안에 들어서다 보니 식사와 쇼핑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어 젊은 연인의 데이트나 가족 나들이에 최적의 장소가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좌석 수를 30여 개 수준으로 줄이거나 식사와 관람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프리미엄 영화관과 더욱 선명한 음향과 화질을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상영관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고급화를 선도하기도 했다.

이런 멀티플렉스는 점점 더 많은 관객의 발길을 끌어들였고, 결국 스크린쿼터 제도와 함께 1999~2006년 한국영화 황금기, 특히 영화 한 편에만 1천만 명 이상의 관객이 몰려든 2004~2006년의 '1천만 관객 시대'를 이끈 견인차 역할을 했다.

실제로 1998년 5천만 명이던 국내 연간 극장 관객 수는 지난해 1억5천만 명으로 3배나 늘어났다. 한국영화 점유율도 1998년 25.1%였지만 한때 60%를 웃돌다 지난해 50.8%를 기록하는 등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CGV 강변점이 문을 열었을 당시 국내 언론이 "IMF 한파로 가뜩이나 영화 편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11개관을 돌릴 만큼 충분한 영화를 확보하고 스크린쿼터를 채우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던 것만 봐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스크린 독과점과 관람료 '덤핑' 논란

그러나 멀티플렉스는 화려한 성장 뒤에 어두운 그늘도 드리웠다.

스크린 수가 점점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지자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앞다퉈 이동통신ㆍ신용카드사와 제휴해 관람료를 할인해 주기 시작했다. 관객은 편당 2천 원씩 할인받는 데 금세 익숙해졌고 2006년 이동통신사 멤버십 카드 할인이 중단되자 되레 영화 관람에 대한 관객 불만족도가 높아졌으며 관객의 극장 이탈 현상까지 낳았다.

21세기 한국영화연구회는 최근 '한국영화의 재발명' 포럼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할인 제도는 관객의 체감 가격을 지나치게 낮춰 관람료 정상화에 큰 걸림돌을 만들었다"며 "가격 덤핑의 여파로 부가 판권 시장은 황무지로 전락했고 극장에서조차 제값을 못 받게 된 영화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몰렸다"고 지적했다.

또 할인 제도와 편의시설로 인기를 몰기 시작한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공세에 밀린 개별 극장들은 손님을 빼앗기고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멀티플렉스의 부작용은 스크린 독과점 현상으로까지 번졌다. 대규모 멀티플렉스 체인을 소유한 업체가 영화 투자ㆍ배급까지 맡고 있으니 불공정 거래에 대한 우려는 자연스럽게 커졌다.

지난해에는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912개관, '스파이더맨3' 816개관, '트랜스포머' 717개관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국내 스크린을 한꺼번에 휩쓰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10개 미만의 소규모 영화가 198편으로 전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소규모 개봉 영화와 와이드 릴리스 영화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졌고, 다양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관객의 권리는 더욱 위협받게 됐다는 뜻이다.

올 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인기 없는 영화의 일방적 조기 종영, 무료 초대권 남발, 배급사에 불리한 부율(賦率) 변경 등 4대 멀티플렉스 극장의 부당행위를 적발하면서 의혹이 어느 정도 현실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목수정 전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한국영화의 재발명' 포럼에서 교차상영 금지, 1주일 이상 최소상영일수 보장, 한국 영화와 미국 영화에 대한 부율 차별 금지, 수직 계열화 금지 명문화를 제안하면서 "스크린 독과점을 막기 위한 영화계의 합의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by 100명 2008. 3. 30. 1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