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강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 원장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 가장 세계적이죠”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따뜻한 햇살 한 줌이 비치면 넉넉한 어머니의 정을 느낄 수 있는 평창 금당산 계곡.

인간이 살기에 가장 이상적인 해발 고도 700m, 맑은 물과 공기, 일조권을 모두 갖춘 이 곳, 천하의 명당에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이 둥지를 틀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신념 하나만으로 우리의 전통 음식문화를 보급하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열정을 쏟아내고 있는 조정강(71)원장의 작품이다.

조선시대 문인이자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을 지낸 중봉 조헌(1544∼1592년)선생의 12대 손임을 자랑스러워하고 그 가문의 내림 음식의 소중한 문화를 지키며 한국의 자랑스런 밥상 문화가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길 소원하는 조 원장의 꿈의 터전이다.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

소위 대통령 단골집이라 불렸던 유명 한정식집 ‘동촌(東村)’을 접고 강원도 평창의 산골로 내려온 것도 전통 음식 문화를 정립하고 후세에 이를 계승하기 위함이다.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 3만여㎡의 부지에 전통 양식의 한옥으로 곱게 지은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의 드넓게 펼쳐진 장독대와 조선시대를 연상케 하는 정원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전통음식문화체험관에는 조리체험실, 전시실, 교육 세미나장, 전통 장독대, 자연재배 단지, 실·내외 식당 등 전통음식 문화체험을 위한 필요한 시설이 고루 펼쳐져 있다.

전통음식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웬만한 학교 이상의 시설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곳은 전국에서 단연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 한 곳 뿐이다.

이와 함께 옛 석빙고를 재현하듯 토굴 형식으로 지은 음식 숙성 및 저장고는 연중 내내 1∼5도의 신선도를 유지해 전통음식의 맛을 더한다.

김치와 고추장 된장 등 발효식품과 음식재료의 재배에서부터 제조와 저장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배울 수 있도록 철저하게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조 원장이 모든 시설과 음식 전반에 있어 이렇게 전통을 강조하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가 전통음식의 맛과 멋을 제대로 알고 우리 밥상 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 바라기 때문이다.

조 원장은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음식 때문에 우리의 전통음식 문화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며 “외국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지면 몸에 좋은 우리 음식이 식탁 뒤편으로 밀려날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조 원장은 1999년 사재 30억원을 털어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에 땅을 사고 7년여에 걸쳐 대공사를 직접 이뤄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각종 인·허가에서 공사 인부들의 밥까지 날라가며 모든 공사를 직접 지휘했다.

2005년 11월 문을 연 전통음식문화체험관이 점차 알려졌지만 국내보다는 오히려 외국인들의 한국 전통음식 체험의 장으로 인기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 말까지 말레이시아 한 국가에서만 1,970여명이 한국의 전통음식을 배워갔다.

이 부분에서도 조 원장은 “우리 전통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데 나라나 자치단체에선 어찌나 관심이 없는지….

하지만 이미 한국의 맛이 세계적인 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입증하고 있는 것 같아 기뻐요”라고 했다.

■강원도가 좋다

조 원장은 37세 되던 해 남편이 쓰러진 후 2남5녀의 교육을 위해 친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전통음식 솜씨를 발휘해 전통음식점 동촌(東村)을 열었다.

손맛과 전통음식에 대한 애정이 알려지면서 현대 아산병원에서 동촌을 열었고 이듬해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내에 동촌을 또 열었다.

서울 서교동 홍익대 인근에 자리 잡은 동촌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자주 찾아 대통령 단골집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조정강 원장은 왜 잘나가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 같은 고생을 할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10여 년 전 음식에 관한 책 출간을 위해 전국을 돌던 중 우연히 평창에 들렀고 장류와 발효 음식에 가장 적합한 입지 여건을 갖췄다는 점에 매료됐다고 한다.

특히 선조인 중봉 조헌 선생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던 스승 율곡 이이의 잉태지가 바로 이곳이었기에 조 원장은 백옥포리 부지에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욕심을 내고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을 안 토지 소유자들은 땅 값으로 3.3㎡당 20만원을 불렀고 조 원장은 한 푼 깎지도 않고 돈을 지불했다.

당시의 시세로 볼 때 몇 배 비싼 값에 사들였지만 조원장은 이 땅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억울함도 몰랐다고 했다.

현재도 1,173m의 금당산을 병풍으로 삼고 맑은 금당계곡의 물과 공기를 마시며 자신의 꿈을 이뤄낼 수 있는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이 들어선 부지이기에 너무나 행복하다고 한다.

조 원장은 “한국 음식의 중심은 전주가 맞지만 지금은 너무 색이 짙다”며 “강원도의 음식은 모양은 없지만 맛이 순하고 순수한 정이 있다.

없는 모양이야 만들면 된다”며 강원도 음식을 예찬했다.

또 “전통음식문화체험관을 강원도의 자랑거리로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며 “금산의 인삼이 요리로 유명해졌듯 평창의 송어와 오대산의 산채를 이용한 다양한 관광상품이 될 음식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전통음식에 대한 열정

조 원장이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을 연 이듬해 여름, 개장 후 채 8개월이 안돼 크나큰 수해를 입었다.

“장독이 물에 잠겨 장류와 젓갈류가 훼손되고 대부분의 시설물이 눈앞에서 쓸려 나갔어요.

피해액만 수십억원에 이르는데 그때 심정은 뭐라 말로 할 수 없었어요”라고 회상했다.

돈도 돈이지만 체험관을 열기 위해 정성에 정성을 다했던 장과 젓갈이 사라진 데는 앞이 캄캄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든든한 후원자가 됐던 가족들마저 이젠 그만두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조 원장은 자포자기의 심정을 이겨내고 깨진 장독들을 모아 결국 다시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을 일으켜냈다.

조 원장은 “내가 시작했던 일이니 내 손으로 마무리짓고 싶어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수 없었다”며 “사라져가는 전통음식을 보존하고 세계 최고의 요리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포기라는 단어는 잊기로 했다” 고 말했다.

조 원장의 전통음식에 대한 열정은 출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1997년 ‘좋은 쌀로 밥 짓고 맑은 물로 장 담그기’에 이어 2002년 ‘손 맛 밴 우리 음식 이야기’, 2005년 ‘한국 전통음식의 밑바탕’ 등을 펴냈다.

또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에 전통 한국 음식이라는 글을 17회 연재한 후 조선일보에 우리 음식이야기 29회 연재는 물론 음식강좌만도 34회에 걸쳐 열 정도였다.

2004년에는 극구 거부하던 조선호텔을 설득해 한국 전통 음식 축제를 열고 성공리에 마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세계화로 이르는 꿈

조 원장은 지금의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빚까지 내가며 수해 복구를 한 덕에 지금만으로도 훌륭한 전통문화 체험관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당초 설계도에 부합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특히 조 원장은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을 더욱 발전시켜 학교로 만들겠다는 다부진 꿈을 키워가고 있다.

“직접 김치를 담그거나 메주를 쑤어 장을 담그는 가정이 줄어들면서 이젠 그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젊은이들이 발효 음식을 배우고 체험하는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드라마 대장금에 나온 수라간과 숙소를 짓고 학생들이 마음껏 배우고 전통음식을 발전시켜 나갈 학교를 만드는 것이 조 원장의 소망인 것이다.

또 친할머니에게 전수받은 전통음식의 기법과 그동안 쌓아 온 노하우로 후진을 양성하고 각 지방의 특색있는 음식을 개발해 그 맥을 이어가도록 기록으로 남기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전통음식에 조예가 깊은 노인들을 초빙해 음식 만드는 기술을 보존 계승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조 원장의 손맛은 5녀인 김주성(44)씨가 이어가고 있다.

이를 위해 공예를 전공했던 김씨가 대학원에서 다시 식품공학을 공부했고 이젠 한성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중이다.

조 원장은 “유구한 역사와 맥을 같이해 온 김치와 된장 등 한국 음식이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 그 빛을 발할 때까지 전통음식 보존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2014 동계올림픽 IOC 조사평가단에 전통음식을 선보여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만큼 2018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는 물론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이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되는 문화명소로 키워 나가겠습니다”
by 100명 2008. 3. 2.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