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안 보인다
문화칼럼

“문화는 경제이며 문화경쟁력이 미래의 기업경쟁력이다. 문화는 도시를 알리는 최고의 전략이다.”
글로벌 서울 포럼에 참석한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 박사의 말처럼 21세기 경제에 있어 그 경쟁력은 문화에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따라서 문화란 적어도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콘텐츠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들어설 이명박 정부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아직껏 구체적으로 들어나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을 통해서는 물론 지난 대선 과정을 통해서도 새 정권이 문화 정책을 어떻게 세워 나가려는지 그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관련 공약으로 내건 ‘창의력을 갖춘 문화강국을 만들자’는 상투적인 구호하나 이외는 별로 들어 본 게 없으니 새로운 정권의 문화를 보는 시각이나 문화정책의 기본방향과 철학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정권인수위원회의 활동이 벌써 중반에 접에 들어 정부조직의 개편과 인적 쇄신, 정책방향과 정책내용의 변화 등 이명박 정부의 중요한 밑그림의 모습이 속속 들어나고 있지만 문화관련 정책이나 발전 방향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지고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취임을 불과 한 달 여 앞두고도 아직까지 새 정부의 문화정책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혹 이것이 당선인의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이거나 인수위 측의 문화에 대한 기본 태도여서 문화진흥이나 육성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면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다고 하겠다.
‘문화에 대한 투자가 곧 경제에 대한 투자’라고 역설하였던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말은 미래 산업으로서의 문화의 부가가치를 확실하게 인식한 결과이다. 프랑스만큼 문화의 가치를 고부가가치의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한 나라도 드물다. 문화 발전이 곧 국가의 산업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의 전환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도 문화논리로 국가정책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며 지금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시기라 하겠다. 큰 나라는 국토가 큰 것이 아니라 큰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를 말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문화대국이라 일컫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문화는 배부른 사람들이나 유한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그 자체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사회적 자산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문화는 이제 고전 경제학에서 말하는 생산의 3대 요소인 토지, 노동, 자본을 대체하는 중요한 생산요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본 이상의 중요한 자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낮은 것이 사실이다. 지역개발도 대부분 길 닦고 집 짓고 다리 놓는 식의 하드웨어에 치중되어 있지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소프트웨어는 늘 후 순위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래는 손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머리를 사용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점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기술경쟁의 단계를 넘어 인간의 꿈과 상상력. 즉 그 나라가 창출하는 지식의 우열에 의해 국가경쟁력이 좌우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도 베토벤의 교향곡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듯이 이제 과학이나 경제의 발달도 문화적 기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연간 1천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에든버러는 한 달간의 축제로 일 년을 먹고 산다고 하며,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라는 건축가 한 사람이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모차르트 한명이 어느 대기업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공장과 외자를 유치하여 고용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문화적 역량을 집결하여 세계 속의 문화국가, 문화민족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야말로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 돋음 하기 위해 새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 믿는다.
새 정부의 확실한 문화진흥 의지를 제시해 주기를 기대한다. 전 세계가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진흥을 주요 국가 시책으로 정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문화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내일의 세계, 새로운 세기를 위한 가장 중요한 장기투자임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필동(대구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장)
by 100명 2008. 2. 3.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