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택 이사장 “한류 위기? 이제부터가 시작”


들꽃처럼 자생적으로 피어난 ‘한류’.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는 한국 엔터테이너와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들은 한류에 대한 정책차원의 지원이 늘 아쉽기만 했다. 이른바 ‘필드’를 뛰는 종사자들에게는 한류 관련 예산을 써왔던 국정홍보처와 그밖의 유관 단체들의 존재 유무조차도 알 수 없었다.

3~4개에 이르는 한류 정책 단체들은 분명 그래서 더욱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이사장 신현택)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야할 것이다. 2003년 출범한 이 재단이 하나씩 이뤄내왔던 일에 경의와 찬사를 아끼지 않아야한다.

한류를 체감치 못한 중동권 국가의 기자단들은 지난해 재단의 초청을 통해 한국 문화 컨텐츠의 우수성을 직접 본 후 자국민들에게 한류를 비중있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한류 현상이 전무한 나이지리아, 알제리 등 아프리카 대륙에도 현재 다수의 한국 드라마 판권이 무료로 뿌려지고 있다. 재단이 ‘한류의 씨앗’을 심어야한다는 앞선 시각으로 벌써부터 추진해온 사업이다.

이밖에 해외 한류 통신원을 운용해 한류의 정확한 현황을 수집하고, 일본과 대만 등 아시아권 진입에 막막할 따름일 한국가수들에게는 이들을 대신해 어김없이 현지 공연의 장을 펼쳐줬다. 재단은 또 한국 대중문화에 매력된 아시아 전역에게 ‘한국 가요가 아시아의 중심’임을 천명코자 ‘아시아송페스티벌’을 매년 개최해오기도 했다. ‘아시아송페스티벌’이 열리면 아시아 각국의 내로한 톱가수들은 이 무대가 열리면 모든 현지 스케줄을 제쳐놓고 한국으로 날아오려한다. 중화권 최고 스타인 F4도, 일본 최고 스타인 하마사키 아유미도 예외가 없었다. 아시아 최대 음악행사를 비로소 한국이 갖게 된 것이다.

이는 10여명이 채 되지 않는 재단내 해외 사업 직원들이 이룬 성과다.

아시아 각국의 언어와 문화에 정통한 전문 스태프들과 함께 재단을 꾸려가고 있는 신현택 이사장 겸 삼화네트웍스 회장에게 올해 재단의 추진 사업을 물었다.

“2~3월께 수십만명이 모이는 태국 파타야 페스티벌에 한국 가수들을 보내야하고, 4월에는 중국베이징에서 셀린디온 등과 한국가수, 그리고 중국 최고 톱스타들이 한데 서는 자리를, 5월에는 몽골에서 문화교류의 장을, 6월에는 아시아 드라마 작가들을 한데 모아 한국드라마의 우수함을 익히도록 하고, 9월에는 또 아시아송페스티벌을 열고…”.

빼곡한 일정이 쉴새 없이 쏟아졌다.

이윽고 “뜻깊은 작업이 또 있다”는 신이사장은 “프랑스에 있는 미뎀과 같은 뮤직 마켓을 바로 한국에다 세워서 아시아 각국의 음악 종사자들을 모을 것이고, 또 해외 17개 나라 각국에 있는 한국인 변호사들을 모아 현지에 진출하는 한류스타들이 겪는 여러가지 법적인 고충을 무료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올해 안으로 구축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한국이 아시아 음악계의 실질적인 맹주임에도 맹주 노릇을 하려 들지 않았던, 그리고 다수의 한류 스타들이 해외에서 갖가지 사기와 억울함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간의 일을 재단은 분명히 꿰뚫고 있었다.

일각에서 주장되는 한류 위기론에 대해 신이사장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뜻밖의 이야기를 내놓았다.

“한류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면 지금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모습으로 활성화돼야하는 시기입니다. 우리 문화상품은 이런 기반을 확충하면 분명 선진적인 대열에 우뚝 서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문화의 컨텐츠와 관계 종사자들은 정말 뛰어납니다. 자부심을 느껴도 됩니다. 앞으로는 일방적이지 않은 서로의 교류를 바탕으로 하는 더욱 분명한 한류가 자리매김될 수 있습니다.”

신이사장은 이를 위해 보다 전폭적인 국가적 지원을 주문했다. 그는 “한류가 일반 기간산업에 미친 시너지 효과가 ‘5조7,000억원’에 이른다는 전경련의 분석이 있었다”면서 “한류가 단순한 문화상품이 아니라 곧 외교, 일반산업, 컨텐츠 테크놀로지의 성장 동력임은 이미 확인된 사항”이라고 말했다.

또 기존 한류 스타들에 대해서는 “우리 문화를 위한다는 사명감으로 눈앞의 부만을 좇지 말았으면 한다”면서 “해외 팬클럽 행사에서 지나치게 높은 개런티를 부르는 것도 그래서 더더욱 지양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낙엽’ ‘당신이 미워질때’ 등 유명 영화작품을 제작하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뛰어든 그는 1981년 외화 수입업체 삼화프로덕션을 설립해 3,000여개의 작품을 수입하면서 각국 엔터테인먼트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수입이 아니라 수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드라마 제작을 다시 시작해 ‘목용탕집 남자들’ ‘왕초’ ‘불꽃’ ‘내남자의 여자’ 등 수백편 이상의 히트작을 양산했고 결국 이를 해외로 수출하며 한류에 기여했다.

이를 통해 2007 SBS 연기대상에서 제작공로상을 수여키도 했던 그는 2003년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을 설립해 한류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왔다. 재단의 엄청난 스케줄과 사업을 꾸려가면서도 그는 무보수를 고집하고 있다.

by 100명 2008. 1. 7.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