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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2007년 평양 주민들도 굶어죽었다" |
2007 북한 인권보고서 식량권- 식량난 10년…주민들 만성 영양실조 급증 |
2007년 3월, 각 지방에서 쌀이 고갈됐다는 아우성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6월 중순부터 농촌에서는 영양실조 상태에 있던 주민들이 고된 노동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함흥에서는 7월 한 달 동안 수백 명이 죽어나갔다. “한때 ‘자네 지방에는 쌀이 있나?’라고 묻는 것이 문안인사였다.” 현재 10년째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물론 전 인류에게 있어서도 식량권은 생존의 가장 핵심적인 권리다. 북한 주민들의 식량 접근성, 보유 및 섭취의 열악한 수준은 지난 1997~1999년에 걸쳐 약 300만 명의 대량아사자 발생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현재, 식량난의 양상이 예전처럼 대량아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여전히 식량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해마다 회복세를 보이던 북한 식량 생산량이 2006년 280만 톤에도 못 미쳤고 2007년 초부터 전국적으로 식량 위기 징후가 본격화하면서 급기야 6월 말부터 아사자가 재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북한 내부에서도 ‘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과 동요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사)좋은벗들에서 발행한 <2007 북한인권보고서>를 연재 중이다. 이번에는 식량난으로아사 직전에 직면해 있는 심각한 북한 주민들의 식량권의 현주소를짚어봤다. 북한 식량 부족은 ‘인재’ 북한의 식량 부족은 자연재해나 강경한 국제 정세 때문이라기보다, 엄밀히 말해 체제 모순에 따른 인재라고 볼 수 있다. 사실상 1인에 의한 당의 유일적 지배 체제는 자체 모순을 심화시켰다.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북한의 사회 전반을 통틀어 아우르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이념이 바로 사회주의 사상이기에 북한의 식량권은 사실상 정치사상의 자유권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북한 주민의 식량권이 단순히 식량을 지원하고 농사 기술을 이전해준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식량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천만한 일이다. 2007년 현재 북한은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대량 아사를 피할 수 없는 심각한 식량 위기 상태다. 작년과 올해 연이은 수해로 북한의 식량 보유랑은 사상 최저치를 밑돌 전망이다. 식량 원천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북한 주민의 식량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 외부의 식량 지원 밖에 없다. 북한 정부를 더욱 압박해서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주장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전혀 타당하지 못하다. 압박정책이란 곧 무고한 주민의 대량 희생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식량 바닥나 아사자 재 발생 □식량 원천의 절대적 부족 : 북한의 경우 토지의 산성화 문제, 비료 문제, 협동농장의 한계 등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배급제를 정상화할 만큼의 식량 생산은 매우 요원한 일이다. 배급제가 사실상 마비되면서 지위와 권력, 계층, 소득 규모에 따라 식량 접근도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배급 순위에 따라 배급량과 우선순위가 달라짐으로써, 식량 원천이 적으면 적을수록 식량 배급을 받기 어려운 계층과 집단도 늘어가고 있다. 2006년에는 수해와 외부 지원 중단으로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가기 전에 벌써 생산량이 2005년도 수확량의 3분의 1에도 못 미칠 것이며 2007년 2월이 되면 식량이 바닥날 것이라는 예측이 농업 관계자들 사이에 나돌기 시작했다. 실제 2006년 각 도별 생산량은 189만 톤으로 200만 톤에도 채 못 미쳤다. 2006년도 총 식량 생산량 예상 자료에 따르면 도별 생산량이 280만 톤이라 가정해도 일부 계층에서 심각한 영양실조가 나타나며, 취약계층에서는 아사자가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아사자는 사회주의의 수치 2007년 3월, 각 지방에서 쌀이 고갈됐다는 아우성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6월 중순부터 농촌에서는 영양실조 상태에 있던 주민들이 고된 노동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쌀 장사꾼들은 시장에 내다 팔 쌀이 없다고 야단이었다. 쌀 장사꾼끼리 “자네 지방에는 쌀이 있나?”라고 묻는 것이 문안인사일 정도였다고 한다. 함경북도 함흥, 청진, 경성, 길주 등지에서 사망 소식이 본격적으로 들려왔다. 함흥에서는 7월 한 달 동안 수백 명이 죽어나갔고 단천, 청진 등 공업지구에서는 일반 노동자의 80%가 배급이 없어 굶주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30대 젊은이들도 풀독에 걸려 쓰러지고, 멀쩡하게 잠자리에 들었던 사람이 하룻밤 자고 나면 죽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그나마 병명이라도 얻을 수 있었지만, 집에서 사망한 경우 아무 병명도 없이 죽어갔다. 의사들은 공식적으로는 이러저러한 병명을 붙였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만성 영양실조에 의한 사실상의 아사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2000년이 지나면서부터 정부는 기아(아사)라는 진단을 내리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볼 때 기아인 게 빤하지만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하는 식으로 사망원인을 적었다.” 청진에서 의사 생활을 하다 2004년 탈북한 새터민의 증언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 당국은 아사 판명을 금지하고 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아사자 발생은 국가적 수치라 여겼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2007년 발생한 아사자 실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아사자가 없으므로 긴급 식량 구호를 요청할 명분도 없는 셈이다. ‘1순위’ 계급은 굶지 않는다 □배급 순위에 따른 식량 배분 : 이처럼 식량 원천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심각한 문제는 배급 순위에 따른 식량 배분 체계가 일반 주민의 식량권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식량이 부족한 가운데 권력 핵심계층부터 먹여 살림으로써 대다수 일반 주민들이 소외당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분배 절차 또한 투명하지 않은 상태여서 외부 지원 단체로부터 끊임없이 비판받고 있다. 현재 정상적으로 식량 배급을 받고 있는 것은 1순위의 당·정 기관 공무원들과 2순위에 속하는 보위부·보안서·사법검찰부문, 그리고 3순위에 속하는 제2경제위원회 산하 공장·기업소 들이다. 물론 각 순위에 따라 배급의 양과 질은 다르다. 2순위는 6개월~1년분 식량을 앞당겨 주지만 3순위에게는 1개월 혹은 보름 분량씩 식량이 생기는 대로 배급을 하는 식이다. 사실 1순위와 2순위 대상자들에게 ‘쌀이 없어 굶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인구의 4%를 차지하는 1순위의 경우 이들을 먹여 살리는 데 한 달에 1~2만 톤이면 충분한 수준이다. 2순위도 정상배급을 받지만 직위에 따라 식량 곤란을 겪는 경우는 있다. 허기진 말단 군인들이 민가를 습격하는 등의 일이 발생해 식량 문제로 군대와 민간인 간의 갈등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3순위의 경우 2007년 하반기 식량 보유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공장노동자 중 약 80%에게 배급이 중단됐다. 일반 기업소와 교원·의사·서비스직 노동자가 포함된 4순위 중에서 장사를 하거나 소토지를 가꾸는 이들은 비교적 괜찮은 형편이고 이들을 제외한 약 400만 명 정도가 취약계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농사지은 몫으로 분배를 받는 농민들 중에도 6개월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도시 빈민계층과 농민 빈곤층이야말로 식량권이 가장 취약하다. 1순위부터 4순위, 기타 배급 대상이 아닌 농민 인구까지 골고루 식량이 배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분한 양의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식량 축적도가 높은 핵심계층보다 하루 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에 대한 우선분배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 식량권의 불평등성은 비단 배급 순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 따라서도 식량권의 편차는 매우 심각하다. “평양에서도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평양 중심의 차별공급 : 평양은 평양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의 중심이자 특혜의 정점에 서 있는 도시다. 평양 시민들에게 추방령은 곧 사형선고를 의미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식량난이 10년 넘게 계속되는 가운데 평양 시민들은 식량 배급에 있어 늘 최우선적인 배려를 받아왔다. 이런 평양에서도 일반 주민들의 경우 배급에서 소외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평양에서도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러나 굶어죽는다고는 안 한다. 그저 늙어 죽는다거나 아파서 죽는다고 한다. 차마 영양실조 걸려서 죽었다고 말을 못 하는 거다. 우리 인민반에도 몇 명씩 죽었다. 노인들이 승강기 전력이 없어서 못 내려오고 집안에서 죽는다. 전기 없지, 식량 없지, 며칠씩 소식 없어 올라가보면 굶어죽어 있다. 쌀이 있어도 전기 없고 땔나무 없어 집이 춥고 하니까 얼어 죽는다. 어떤 집은 자식들이 식량 구한다고 지방에 나간 사이에 부모가 죽어 있기도 했다.” 이 40대 평양 남성의 진술에서도 나타나듯 장기간 배급이 중단되면서 장사나 다른 생계수단을 갖지 못한 평양 주민들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다. 실제 노약자와 빈민 계층에서 오랜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국내 식량 원천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는 배급 1순위에 속하는 평양 시민들의 식량권 또한 불안정함을 알 수 있다. 2007년 평양시를 제외하고 소규모나마 식량이 배급되고 있는 지역은 회령시가 거의 유일하다. 그 외 지역들은 여전히 식량 미공급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지원한 식량이 이 지역에 들어가면서 가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었지만 이조차 얼마 가지 못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모든 지원이 중단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수해지역 주민들의 절망과 시름은 깊어졌고 자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외부 원조만이 해결책 올 가을 수확기를 지나 천정부지 치솟을 것 같던 북한의 쌀 가격은 900~1000원대를 유지했다. 식량 위기를 느낀 주민들이 쌀을 구매하려고 하지 않고 대부분 옥수수를 구입했다. “돈이 없어 비싼 쌀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지,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술한 북한 주민의 식량권 상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첫째 식량 원천 부족과 둘째 배급 순위에 따른 배분 체계, 그리고 셋째 평양 중심의 우선 공급으로 인한 타 지역 차별 문제 등으로 북한 주민의 절대 다수가 매우 심각한 식량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식량 원천의 부족은 핵심 계층과 평양시민들의 식량권조차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충분한 식량 확보가 식량권 보장의 핵심 관건인데 현재로선 외부의 원조가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또한 방치돼 있는 취약계층의 식량권 확보를 위해서 북한 당국은 취약계층 우선 분배 체계로 적극 전환해야 한다. 북한 당국의 이런 노력이 뒤따라야 외부의 원조가 지속될 수 있다. 이것만이 체제모순 속에서도 그나마 체제를 크게 위협하지 않는 타협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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