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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내내 흐리다 가끔 맑음 2007 충무로 이슈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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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국영화는 암울했다. 관객 감소, 수익률 하락, 스크린쿼터 축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 등 밝지 않은 소식들이 대세였다. '위기 중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한 해였던 셈. 좋은 일도 있었다. 전도연의 칸영화제 수상과 마침내 결실을 본 영화노사의 단체협약, 작은 기획영화관들의 정착, 장르영화의 가능성 발견 등이 무거운 마음을 위로해줬다. 2007년 한 해 동안 영화계를 풍미했던 다종다기한 이슈들과 FILM2.0이 선정한 국내외 올해의 영화들, 지난 일 년이 한 눈에 들어오는 사건, 사고 일지로 한 해를 마감한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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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으로 이렇게 온 나라가 들썩였던 경우도 드물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2007년 최고 흥행을 기록한 것에는 전례 없는 대결구도가 톡톡히 한몫했다. ‘충무로 대 반충무로’ ‘관객 대 평론가, 기자’ ‘주류 대 비주류’ ‘애국 대 매국’으로 재단됐던 <디 워> 광풍은 8백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향하게 했다. 인터넷을 통한 극단적 감정싸움, 단기간에 TV 토론까지 끌어낸 <디 워>는 특히 미국에서 블록버스터급으로 개봉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면서 한 편의 영화를 넘어 할리우드 정복의 첨병으로 격상(?)되기까지 했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불신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점에서도 충무로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광풍은 그만큼의 상처를 남긴다. <디 워> 현상은 한국 영화문화의 그늘이 가감 없이 발가벗겨진 쌉싸래한 뒷맛을 남겼다. (허남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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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국내 극장가는 어느 해보다 ‘관객 양극화’가 극심했다. <디 워>(842만 명), <트랜스포머>(737만 명), <화려한 휴가>(730만 명),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496만 명) 등 500만 이상을 호가하는 메가톤급 흥행작도 있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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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 문제냐고 했다. 극장이 자제하면, 제작자들이 양보하면 법적 규제 없이도 상황은 좋아질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2007년 영화계에서도 어김없이 스크린 싹쓸이는 재연됐다. 영화 한두 편이 멀티플렉스 개봉관을 완전 독점하는 일은 종종 벌어졌다. 작은 영화들이 개봉 며칠 만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동요 '퐁당퐁당'이 비극적으로 들리기 시작한, 스크린 독과점의 무풍질주가 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다. 영화인들이 앗 뜨거, 소리를 지른 것은 지난 5월. 할리우드의 야심작 <스파이더맨 3>가 전국 800여 개 상영관을 잡아 잡숴버렸기 때문이다. 독과점에 대한 해법을 서둘러 마련하지 못한, 어쩌면 미필적 고의로 마련하지 않은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스크린 독과점의 전철을 사뿐히 지르밟고 갔다. 뒤늦게 각종 단체들이 토론회를 갖고 규제방안을 논의했지만, 간신히 발의된 법안은 표류 중. 한국영화 보호보다 더 상위의 가치가 됐어야 할 영화 다양성 확보를 외면한 후과는 내년에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송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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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영화계는 거대한 매듭 하나를 풀었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이 지난 4월 18일, 영화산업 임금단체협약 조인식을 가졌다. 9개월간의 줄다리기 끝에 양측의 이해와 양보로 이뤄진, 놀라운 성과였다. 효력이 발휘된 7월 1일 이후 현재까지 임금단체협상안을 적용한 영화는 <연인> <킬미> <1724 기방난동사건> <어젯밤에 생긴 일>(가제) <강철중> <님은 먼 곳에>까지 6편. 한국영화의 심각한 위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서 스탭들에게 더 바람직한 작업 환경을 만들어주게 됐다. 이후 제작 스케줄 및 출퇴근 관리, 스탭 임금계산을 위한 시스템 ‘씨네-ERP’가 개발되는 등 추가 노력들도 뒤를 따랐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영화노사의 임금단체협상은 ‘쇼’에 그치지 않았고, 2008년 한국영화계의 더 큰 화두로 떠오르게 됐다. (김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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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 더 이상 구현 못 할 것은 없다. 인간의 상상력이 현실화되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영상화에 있어서는 이미 그 한계가 없어 보인다. 2007년에는 무한한 영화의 표현 능력을 과시한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디지털 CG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이들 작품은 영화 테크놀로지의 진보가 어디쯤 왔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던 사례들. 거대 변신로봇들을 실사로 완성한 <트랜스포머>는 로봇이 배우를 대신하는 비주얼적 성취로 국내 외화 흥행기록을 새로 썼다. 스파르타 전사들의 사생결단 투쟁담 <300>은 오직 CG로만 창조된 배경으로 복근 이상의 독특한 양감을 선사했다. 실제 배우와 움직임을 캡처한 애니메이션 <베오울프>는 2미터가 넘는 영웅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하는 기술 진보는 끝이 없다. (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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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가 개방된 지는 이미 오래지만 올해만큼 일본 바람이 거셌던 적은 없었다. 할리우드 대작처럼 수백만을 넘는 대박은 없었지만, 틈새에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히어로> <카모메 식당>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등 다양한 작품들도 소개됐다. 츠마부키 사토시, 오다기리 죠, 기무라 다쿠야 등 스타에 대한 관심은 특히 폭발적. 문학계에서도 <공중그네> <아르헨티나 할머니> 등 히트작을 낳으며 30% 이상 매출이 상승했고, <복면달호>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바르게 살자> <어깨 너머의 연인> <검은집> 등 일본 원작의 영화화도 활발했다. 제작사들도 자체 시나리오 개발보다는 일본 소설과 만화 원작을 사재기하는 분위기. 한류와 일류, 희비가 교차한 한 해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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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쇼박스, CJ, 롯데)가 끝나고 춘추전국시대로 돌입. 쇼박스의 메가박스 매각으로 삼강구도가 흔들리고 뒤를 이어 거대 통신자본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됐다. 싸이더스FNH와 싸이더스HQ라는, 이름은 비슷해도 완전히 다른 충무로의 큰 손을 통해 영화판에서 '간만 보던' 통신사 KT와 SKT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 특히 SKT는 <원스 어폰 어 타임>을 시작으로 배급사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사상 최악이라는 충무로의 '진짜' 위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다매체 시대의 핵심 콘텐츠를 쥐고 있는 영화에 대한 러브콜은 끊이지 않는다. 미디어 그룹 엔토리노(주)는 극장사업과 배급업에 뛰어들었고, 한화그룹은 자회사를 통해 문화콘텐츠 전문 투자조합을 설립했고, 밴티지홀딩스도 공격적인 영화투자에 나섰다. 거대 기업들의 맛보기가 시작된 한 해, 본 게임은 내년부터다. (송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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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짝퉁' 제품 많고 불법 복제물 많다고 중국을 손가락질했던 손들이 머쓱해지는 상황이다. 불법 복제로 영화산업이 사달 날 판인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연구팀이 산정한 불법 피해규모가 현재까지 9,362억 원. 한국영화산업 전체 규모가 1조 4천억 원 정도니 무려 2/3 규모다. 그동안 양심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잘 되겠지, 잘 되겠지 했더니만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이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문제점을 지적하며 잘잘못을 탓할 겨를도 없다. 하반기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색들이 줄을 이었다. 계속 이렇게 두다가는 10년, 20년 뒤에는 ‘영화는 인터넷으로 본다'는 해괴한 논리가 성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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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고 색다른 영화를 보고 싶은 날엔 종로에 가라. 90년대 초까지 극장문화의 중심지였던 종로가 광화문과 더불어 ‘다양성 영화 특구’로 변신했다. 종로 낙원상가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 필름포럼은 고전과 3세계 영화들을 일 년 내내 선보인다. 명동으로 기수를 돌리면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스폰지하우스 명동이 색깔 있는 영화들로 관객을 맞았다. 전통적으로 예술영화를 상영하면서 많은 고정 관객을 확보한 시네큐브, 좋은 영화라면 흥행과 상관없이(?) 장기 상영을 하는 미로스페이스, 그리고 최근에 개관한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이 위치한 광화문 역시 똑같은 영화만 하는 멀티플렉스의 편식을 대체할 다양성 일번지로 거듭났다. (안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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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미드'(미국 드라마)에 빠진 날. 미드 없이 2007년을 정리하기란 불가능할 정도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안 보면 왕따 되는 국민 드라마가 됐고, 웬트워스 밀러라는 무명 배우는 한국까지 친히 납시어 팬들을 챙겼다. 과학수사 열풍을 몰고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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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3> <슈렉 3>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트랜스포머> <오션스 13> <판타스틱 4: 실버서퍼의 위협> <다이하드 4.0>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올 여름 쏟아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제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쁘다. 유난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공세가 거셌던 올여름 극장가는 완벽히 이 공룡들에 의해 점령됐다. <트랜스포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작품이 속편이라는 것도 이례적. 형만 한 아우가 많았다는 것도 특이할 만하다. 상향 평준화된 프랜차이즈 작품에 의해 눈물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입맛대로 골라먹는 포만감을 느꼈을 관객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더 강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영화의 힘겨루기는, 올해만큼은 전자의 것이었다. (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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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었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최종 스코어 300만이 넘은 영화는 <그놈 목소리> <디 워> <화려한 휴가> <식객>뿐이다. 관객들이 한국영화에서 고개를 돌렸다. 1월부터 11월까지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단 6%, 2007년 3/4분기까지의 수익률이 마이너스 62.1%라는 수치는 충격 그 자체였다. 한류 효과는 아예 사라져 해외 수출 역시 최악의 상황을 기록했다. 내년에도 이어질 한국영화 위기, 기진맥진해진 한국영화엔 창의력이 바닥났다. 올해 한국영화의 부실한 성적은 좋은 기획이 없어서 좋은 시나리오가 없고, 좋은 시나리오가 없어서 현명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니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던 당연한 결과다. 비슷한 아이템이 드라마로 먼저 터져 나오는 게 그냥 우연이었을까? 풍부한 자본과 상상력 충만한 작가들을 드라마에 빼앗긴 올해, 바닥을 친 충무로는 이제 올라오는 일만 남았는지도 모른다. (김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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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이어지는 독립영화 약진이 두드러졌다. 2006년의 세 배에 가까운 15편의 독립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했고,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명동 중앙시네마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독립영화가 갈 길은 아직 멀다. <비상> <우리학교> 등 다큐멘터리가 독립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며 선전했지만, 장편 독립영화의 흥행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상어> <살결>은 관객이 천 명도 들지 않았고, 10월부터 12월까지 연달아 개봉한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판타스틱 자살소동> <은하해방전선>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독립영화의 ‘독한 맛’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지만, 다양한 장르, 독특한 형식을 통해 색다른 향을 전파하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안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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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땅덩어리지만 영화제만큼은 남부럽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등록된 영화제만 현재까지 40여 개. 올해만 해도 '충무국제영화제’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시네마디지털서울' 등 3개의 국제영화제가 추가됐다. 예산문제로 사라진 영화제도 있다. 고양어린이국제영화제는 고양시와의 마찰로 좌초돼 내년에 인천국제어린이영화제(가칭)로 재탄생할 전망. 지난해 쇼케이스를 열고 정식 출범하려 했던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는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영화제 예산의 대부분이 문화관광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오기 때문에 과도한 예산 낭비에 대한 지적도 있다. 정체성 없이 지자체 홍보를 위한 전시행사가 될 경우 단발성 해프닝으로 그칠 수도 있다. (유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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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개봉하는 음악영화 러시는 올해 극장가의 기현상 중 하나다. 상반기 ‘마리아’ 신드롬을 일으킨 <미녀는 괴로워>를 비롯해 <즐거운 인생>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의 한국영화, <드림걸즈>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같은 할리우드 음악영화가 분위기를 띄웠고, 전국 관객 20만 명을 돌파해 국내 개봉 인디영화 중 최고의 흥행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원스> 이후 본격적으로 음악영화 붐이 일었다. <포미니츠> <페이지 터너> <카핑 베토벤> <라비앙 로즈> <어거스트 러쉬> <칼라스 포에버> 등이 하반기 극장가를 음악으로 물들였다. 이는 음반시장의 활기로 이어졌다. <원스> OST는 3만 장이 넘게 판매되 올해 최다 판매 OST로 등극했으며, <라비앙 로즈> 등의 OST도 극장에서의 흥행성적과 상관없이 호응을 얻고 있다. (정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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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행 티켓을 끊는 스타들의 소식이 잦았다. 하지만 호들갑 떨기에는 이르다. 워쇼스키 남매의 3억 달러 블록버스터 <스피드 레이서>에 조연으로 캐스팅돼 독일에서 촬영을 마친 비만이 ‘진정한 할리우드 진출’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 뉴질랜드 새드플루트사의 <런드리 워리어>를 촬영 중인 장동건, 한, 미, 불 합작영화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에서 일본도를 든 '세라복 소녀'를 연기하는 전지현, 트란 안 홍 감독의 미불 합작영화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찍은 이병헌, 한국, 싱가포르, 미국 합작영화 <댄스 오브 더 드래곤>의 장혁, 뉴욕에서 인디영화 <페티쉬>를 촬영 중인 송혜교 등은 합작이나 중소 규모 영화로 발을 뗐다. 이들이 월드스타의 자질을 보였는지는 내년에 판가름된다. (유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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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는 충무로의 천덕꾸러기였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장르영화가 시장성을 인정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7년은 달랐다. 공포에 대한 편애가 심했던 여느 해와 달리 2007년은 스릴러(<극락도 살인사건> <세븐데이즈>), 시대극(<궁녀> <기담>)으로 외연을 넓혔고 2008년 개봉 예정작 중에선 서부극(<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까지 동참할 예정이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증명하듯 김한민, 정가형제, 김미정 등 주목받은 신인 감독 대부분이 장르영화로 출사표를 던졌고, 하반기에 이어진 스릴러붐은 나름의 성과를 남겼다. '장르'는 최근 한국영화 부진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는, 이야기의 부재에 대한 해결책으로도 유력하다. 갑작스레 장르가 각광받는 이유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허남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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