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세진 할리우드 대공세, 흥행위기 한국영화 어디로?
2007 영화계 결산… 전도연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낭보
강연곤기자 kyg@munhwa.com
2007년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아마 ‘위기’일 듯하다. 올해는 줄곧 ‘적신호’가 꺼지지 않았다. 잇단 흥행 실패와 수익 감소, 투자 위축 등 악순환이 계속됐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흥행가도를 달렸다. 제작을 마치고도 시장성을 인정받지 못한 한국영화들은 창고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게 됐다. 그러나 2007년은 지난 10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온 한국 영화산업을 되돌아보게 된 계기도 됐다. ‘거품’을 빼고 체질 개선을 하자는 목소리가 나왔고, 체계적인 정책을 마련하려는 노력도 시작된 한 해였다. 이같은 노력이 새롭고 창의적인 작품이라는 결실로 이어질지는 내년에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실패 = 올해는 평단과 관객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작품들이 시장에 나왔다가 곧 사라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 자리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채웠다. 3월 ‘300’으로 일찌감치 시작된 할리우드의 대공세는 ‘스파이더맨3’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슈렉3’로 이어졌고 여름 ‘트랜스포머’로 정점을 기록했다. 그래서 2003년 이후 줄곧 50%대를 유지하던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한때 20%를 밑돌기도 했다.

여름 극장가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긴 했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는 사회적 논쟁의 주제로 떠오르며 842만명을 동원했고 같은 시기 ‘화려한 휴가’도 흥행에 성공(730만명)하며 “이젠 기지개를 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반전은 아직 멀어 보인다. 한국영화는 추석 대목에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반기 ‘식객’ 같은 흥행작이 나오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거듭된 흥행 실패는 투자를 얼어 붙게 했다. 톱스타들이 캐스팅됐음에도 제작이 중단되는, 이른바 ‘엎어지는’ 영화가 속출했고 개봉을 하지 못한 완성작들도 수두룩했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 따르면 9월까지 한국영화 1편당 투입된 비용은 평균 64억7500만원. 지난해의 50억1900만원보다 다소 늘었다. 하지만 영화 1편이 얻은 매출은 지난해 38억6800만원에서 24억5600만원으로 줄었다. 올해는 특히 1996년 이후 처음으로 영화관객수가 떨어지는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시되고 있다.

◆모색 = 반면 이같은 위기는 영화산업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극장에 거의 모든 수익을 의존하는 구조, 외형적 성장에 치중했던 지난날을 떨쳐내기 위한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7월엔 영화 관련 단체들이 모여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타협 선언’을 채택했다. 거품이 끼었다고 지적받고 있는 제작비의 합리적인 조정, 창의적인 영화의 발굴과 제작 등을 위해 힘을 합치겠다는 의미였다.

최근 영진위 등 관련 단체들이 그동안의 문제점을 점검하기 위한 자리를 잇달아 열고 있는 것도 내년을 준비하려는 긍정적인 신호다.

올해는 또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한국영화산업노조 사이의 단체협약 타결(4월18일) 등 굵직한 현안이 해결되기도 했고, 배우들이 몸값을 스스로 낮추거나 제작비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삭감하려는 ‘다이어트’ 노력도 이어졌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제작현장을 위해 새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노력도 가시화됐고, 통신자본의 충무로 진출 등 새로운 활력도 감지되고 있다.

◆성과 = 어두운 소식만 이어졌던 것도 아니다. 올해 한국영화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인정하는 결과물도 적지 않았다. 배우 전도연은 영화 ‘밀양’으로 5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60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시름에 빠진 영화계에 낭보를 전했다. ‘디 워’의 심형래 감독은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면서 영화 팬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영화시장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인디 스페이스’라는 이름의 독립영화 전용관이 지난달 서울에서 문을 열었고 국적이나 작품의 크기를 떠나 좋은 영화를 찾아보는 관객들도 늘었다. ‘색, 계’나 ‘원스’, ‘우리 학교’ 등이 대표적인 사례.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아도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도 생겼고, 영화제를 통해 저예산 독립영화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류 열풍이 식으면서 한국영화의 수출은 지난해 이후 급감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해외에 직접 진출하려는 노력도 계속됐다. ‘삼국지’ ‘적벽’ 등 중국권 영화사들이 진행하는 거대 프로젝트에 국내 영화사들이 참여하거나 전지현, 장동건 등 배우들이 할리우드의 문을 직접 두드리는 사례도 늘었다는 것 역시 올해의 성과다.
by 100명 2007. 12. 20. 1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