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톡톡]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연말 대공습

2007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성큼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하죠.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은 영화계에서는 최고의 성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경쟁적으로 이 시기를 노리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올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겠죠.

◇블록버스터가 몰려온다

가장 먼저 한국시장 공략에 나서는 블록버스터는 ‘나는 전설이다’(12일 개봉)입니다. 영화 촬영을 위해 뉴욕 중심가를 통째로 비워버렸다는 스케일부터 압도적입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침공으로 전 인류가 멸망한 지구에 홀로 남게 된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의 사투를 처절하게 그려냈습니다. 제작진의 면면도 화려합니다. SF소설계의 걸작으로 꼽히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콘스탄틴’에서 세기말적 영상을 선보였던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뷰티풀 마인드’와 ‘다빈치코드’의 아키바 골드만이 각본과 제작을. ‘반지의 제왕’과 ‘킹콩’을 맡았던 앤드류 레즈니가 촬영을 각각 맡았습니다.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흥행은 이미 보증이 된 듯합니다.

19일에는 ‘내셔널트레져-비밀의 책’과 ‘황금 나침반’이 나란히 개봉합니다. ‘내셔널트레져~’는 ‘인디애나존스’류의 어드벤처 무비로 2004년 3억 500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한 전편의 후광을 등에 업고 있어 든든합니다. 한국 팬에게 친숙한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았으며 영화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미다스의 손’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했습니다. 링컨 대통령 암살에 연루된 조상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는 줄거리는 전편에 비해 그리 새로울 게 없지만 전 세계를 넘나드는 스펙터클과 거침없는 액션에 대한 기대치는 결코 낮지 않습니다.

‘황금 나침반’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초대형 판타지입니다. 사라지는 친구들을 찾으려고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소녀의 모험담부터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반지원정대와 닮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1400만부가 팔린 필립 풀먼의 3부작 소설 가운데 1부를 원작으로 했으니 2편. 3편도 속속 등장할 겁니다. ‘반지의 제왕’ 제작사 뉴라인시네마가 2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투입해 야심차게 준비했고 니콜 키드먼이 마성을 가진 악녀 콜터 부인 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습니다. 천상과 지상을 넘나드는 전투신은 웅장하고. 시공을 초월한 환상적인 공간은 눈을 즐겁게 합니다. ‘반지의 제왕’이 12세 관람가였던 것에 비해 ‘황금나침반’은 전체 관람가 판정을 받아 흥행의 발판까지 마련했습니다.

24일 개봉하는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에도 흥행의 방정식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더스틴 호프먼과 나탈리 포트먼이 크리스마스를 맞은 모든 이들을 판타지 세계로 잡아끕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빼어난 상상력이 업그레이드됐고. 숨겨진 마법의 비밀이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옆구리가 시린 계절에 따뜻한 감동과 가족애를 선물하니 금상첨화고요.

◇갈 곳 없는 한국 영화들

반면 이달 중순부터 극장에 오르는 한국 영화 중에는 눈길을 끌 만한 대작은 없어 보입니다. ‘색즉시공 시즌2’. ‘싸움’. ‘내 사랑’. ‘용의주도 미스신’. ‘가면’ 등이 잇달아 개봉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맞장’을 뜨기에는 초라한 라인업이라는 생각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닐 겁니다. 가벼운 웃음과 멜로. 한국형 스릴러로 블록버스터의 틈새시장을 노려보자는 의도가 오히려 측은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상반기에도 한국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전면전에 휘말려 참담한 쓴맛을 봤습니다. ‘스파이더맨3’‘캐리비안의 해적3’‘다이하드4’ 등 대작들이 속편을 쏟아냈고 ‘트랜스포머’의 열풍이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한국 영화는 관객을 송두리째 뺏긴 채 손가락만 빨고 있었지요.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리는 블록버스터의 막바지 공세가 바야흐로 막을 올리면서 한국 영화는 또다른 시련을 맞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현상은 국내 대규모 제작. 배급사들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의 전면전을 의도적으로 피했기 때문입니다. ‘모던 보이’‘신기전’‘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나름대로 공들인 대작들은 한결같이 내년 상반기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황정민과 전지현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말 개봉을 노리던 많은 영화가 영화계의 돈 가뭄으로 제작이 중단됐거나 완성된 필름을 극장에 내걸지 못하는 형편이다 보니 더욱 초라해 보이기만 합니다. 그나마 김강우가 주연한 ‘가면’이 배급일정을 잡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식객’의 흥행 바람을 타고서 개봉해 선택의 폭을 넓힌 것이 불행중 다행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오면 한국 영화에도 새로운 물꼬가 터질 수 있을까요?

by 100명 2007. 12. 10. 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