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시네마, 변화의 기로에 서다 디지털 시네마 점검

필름 2.0|기사입력 2007-11-19 18:12


최근 롯데시네마와 CJ-CGV가 디시네마 코리아를 설립하고 디지털 영사기 보급사업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디지털시네마의 현실적인 활성화,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제 디지털시네마, 이른바 ‘D 시네마’라는 말은 익숙해졌다. 디지털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300>이나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를 ‘디지털 상영'으로 보고 싶어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D 시네마는 쉽게 말해 고성능 네트워크를 활용한 고화질 동영상 파일 감상이다. 또한 D 시네마는 제작이나 배급의 비용 절감도 가져오며, 이후 극장을 넘어 각 가정으로 서비스할 수도 있다.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홈시어터 시스템과 서버를 갖춘다면 일정한 돈을 내고 집에서 바로 다운로드 상영도 가능하다. 현재 해상도 2K(2048×1080) 이상의 국내 디지털 상영관은 5.4%(107개관)에 불과하다. 배급방식도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하드디스크를 들고 나르는 수준이다. 올해 말까지 약 4,000개의 디지털 상영관을 보유하게 될 미국이나 향후 5년간 7,000개의 상영관을 목표로 하는 유럽과는 차이가 있지만 한국 역시 2010년에는 국내의 디지털 상영관이 필름 상영관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역시 디지털 상영관의 저변 확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5년 7월, 6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이 참여한 협의체 DCI(Digital Cinema Initiatives)에서 디지털 배급과 상영에 대한 시스템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예견됐던 일이다.

지금 국내에서 디지털영화를 둘러싼 가장 큰 논쟁은 초기비용 문제다. D 시네마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비용절감 문제에 대해서 아직은 회의적인 편이다. 디지털시네마 과도기에 있는 국내의 경우는 영화 개봉을 위해 디지털 상영용 파일(DCP)과 일반 필름 프린트를 모두 제작해야 하는 2중고를 겪고 있다. 할리우드 역시 2K급 디지털영화가 필름과 비슷한 제작비로 제작되고 있지만 속내는 우리와 다르다. 그들의 경우 <스타 워즈> 시리즈, <스파이더맨 3> 등과 같은 블록버스터영화들이 2K 디지털영화 제작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인 월트디즈니의 경우 향후 2, 3년 안에 자국과 해외 배급 모두 프린트 없이 디지털 배급을 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국내에선 상업영화보다는 저예산영화의 경우 디지털로 제작돼 더 현실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이런 영화들이 오히려 디지털로 작업한 뒤 다시 필름으로 전환하는 키네코 과정에 많은 돈을 쓰는 형국이다. 그러나 디지털 상영관이 자리를 잡는다면 전 과정이 디지털로 이뤄져 저예산영화의 활발한 제작도 기대할 수 있다.

초기비용 문제와 함께 대두되는 건 디지털 제작과 배급, 상영이 자리를 잡게 될 시 네트워크 배급 시스템을 누가 주도할 것인가의 문제다. 아날로그 방식과는 다르게 디지털의 경우는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이가 영화산업 자체를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과는 다르게 위성이 아닌, 기존 인터넷 네트워크를 활용할 것으로 보이는 우리의 경우는 KT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대형 극장 체인들이 새로운 전용 네트워크를 구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움직임이 얼마 전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디시네마 코리아라는 합작 회사의 설립을 위해 계약을 체결한 일이다. 두 회사는 국내 극장비율의 36.5%를 차지하고 있는 대규모 사업체로, 디지털시네마 사업 선점을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현재 극장협회나 소규모 극장주들은 두 회사의 이런 움직임이 네트워크 배급망 장악을 위한 시도라며 우려를 표명한다. 훗날 극장들이 디지털 시스템을 갖추고 네트워크를 통한 배급망이 형성되면 지방의 중소 극장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롯데시네마나 CJ-CGV의 영향력 아래 놓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극장협회 최백순 상무는 “아직 구체적인 사업내용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거대 기업이 영화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일”이라며 거대 자본의 힘을 경계한다. 이에 대해 CJ-CGV 홍보팀 김일진 과장은 “디시네마 코리아는 디지털 영사기 보급을 위한 사업체다. 네트워크나 배급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다”며 “디지털 영사 시스템의 보급과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으로 봐달라”고 말한다. 대기업의 적극적인 의지를 통해 디지털시네마가 빠르게 자리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에 따른 영세 극장주와의 마찰도 적지 않게 예상된다.

지금까지 국내에 디지털 상영관이 자리를 잡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제작자, 배급업자, 극장주가 디지털시네마 시스템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었다. 디시네마 코리아의 사업은 이들의 경제적 부담을 일정 부분 떠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우선 디지털 영사기를 1/3 가격으로 각 영화관에 공급해 10년 후 영화사에 귀속시킬 예정이다. 1/3 가격마저 부담스러워하는 영세 극장주를 위해 분할 납부방식도 고려한다며 디지털 영사기의 보급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물론, 디시네마 코리아가 부담하는 나머지 2/3의 가격은 10년간의 보증기간 동안 영사기를 공급 받은 극장들로부터 받는 가상 프린트 비용을 통해 채우게 된다. 가상 프린트 비용이란 기존 필름을 상영할 때 극장들이 배급사에 프린트 비용을 지불하듯 디지털영화의 프린트 비용을 가상으로 책정한다는 얘기. 디시네마 코리아가 계획하는 가상 프린트 한 벌당 비용은 아직 미정이나 대략 기존 프린트 비용의 절반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해외의 디지털 상영관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 디시네마 코리아는 국내 제작 영화와 해외 수입 영화 모두에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CJ-CGV와 롯데시네마 측은 “최소한 5년 동안은 수익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누군가가 시작을 해야 디지털 상영관의 도입이 현실적으로 이뤄진다”며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영세 극장주들과 가상 프린트 비용을 조정해야 하는 과정이 그리 쉬워 보이진 않는다.

디지털시네마의 정착에 있어 고려해야 할 것은 비단 비용의 문제만이 아니다. 기술적 문제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 현재 디지털시네마의 해상도는 2K가 기준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일반 가정에 풀 HD(1920×1080)의 대중화가 이뤄진 상태다. 극장의 2K는 가정의 풀 HD 해상도와 같은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해상도 4K(4096×2160) 영사기의 도입도 먼 얘기라고만 할 수는 없다. 2006년 일본 소니 사에서 이미 4K 디지털 영사기 개발을 발표했고, 올해 초 완제품을 내놓은 상황이다. 해상도 4K 기준의 디지털영화가 나오더라도 확산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일반 관객들은 2K만으로도 질 높은 해상도를 느낄 수 있으리라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 국내의 디지털 상영관들이 2K와 4K 중 어느 쪽으로 초기 세팅을 하느냐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 디지털시네마의 세계 표준이 4K가 돼 할리우드 대작들이 4K로 제작, 배급된다면 낭패를 보게 된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표준이 단시간에 쉽게 정해지진 않을 것이고, 영사기가 유행을 타듯 손쉽게 바꿀 수 있는 소비재도 아니지만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다.

또 다른 문제는 디지털시네마 초기부터 거론돼왔던 시스템 자체의 불안 요소다. 올 상반기 국내 멀티플렉스 체인에서 10분간 암전 상태가 지속됐던 <슈렉 3>의 영사 사고에서도 알 수 있듯 디지털 시스템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 디지털 파일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네트워크의 보안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의 불법 다운로드보다 더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이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전세계 영화산업이 디지털시네마로 진로를 바꾸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때다.
by 100명 2007. 11. 20. 0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