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디지털 시네마로 가는 길, 같이 갈까? 먼저 갈까?

씨네21|기사입력 2007-11-20 08:12 기사원문보기


- CJ CGV와 롯데시네마의 디지털 시네마 합작회사 설립 발표 둘러싸고 논쟁일어 -


국내 극장업계 1, 2위인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최근 ‘디지털 시네마 합작회사’를 설립키로 한 것과 관련해 영화계 안팎이 술렁이고 있다. 필름으로 영화를 제작해 배급, 상영하는 것과 비교하면 획기적인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디지털 시네마. 할리우드와 유럽을 중심으로 디지털 시네마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음을 감안해 서둘러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전체적인 협의없이 일부 업체들이 단독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이후 가져올 폐해에 대한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디지털 시네마를 둘러싼 충무로의 논란들을 살펴봤다.

11월8일 CGV와 롯데시네마는 각각 50%씩 출자해 디시네마 코리아를 만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디시네마 코리아는 “국내 영화관을 대상으로 디지털 영사시스템을 보급한다”는 목적의 회사다. CGV 관계자는 “디지털 시네마 사업은 그동안 추진 필요성에 다들 공감하면서도 주체가 없어 지지부진했다”고 말하고 “디시네마 코리아를 통해 영사기를 현 장비가의 1/3 수준으로 원하는 극장에 보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1대당 최저 8천만원에서 1억원에 달하는 디지털 영사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극장이 3천만원 정도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디지털 상영시 해당 영화의 투자·배급사로부터 가상프린트비용(Virtual Print Fee, 이하 VPF)을 받아 충당하는 방식이다.

초기비용은 부담이지만, 프린트 비용 절감 등 경제적



디시네마 코리아가 설립되면 “5%에 불과한” 국내 디지털 시네마 보급률이 크게 뛰어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어렵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2007년 5월 현재 전국 극장에 설치된 디지털 영사시스템은 모두 107개. 2005년 35개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으나, 전체 스크린 수가 1880개임을 감안하면 아직 초기 단계다. 지난해 국내 최대 통신업체인 KT가 씨너스, MMC 등의 멀티플렉스 업체들과 손잡고 광대역융합망(BcN)을 이용한 초고속 영화콘텐츠 전송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힌 데 이어 올해는 메가박스가 <스파이더맨 3>를 전국 50개 자사 사이트 스크린에 디지털 전송 및 상영하는 등 디지털 시네마 보급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의미있는 시도로만 그쳤다.

하지만 약 40%에 달하는 스크린을 보유한 두 회사가 의욕적으로 디지털 시네마 사업을 전개할 경우 기대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다. CGV의 김일진 과장은 “다른 극장들과도 협의를 계속하겠지만 아무래도 CGV와 롯데시네마 체인점들에 먼저 보급되지 않겠느냐”며 “구체적인 계획을 밝힐 수는 없지만 2010년이 되면 두 멀티플렉스의 경우, 디지털 시스템을 갖춘 극장들이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영사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 절감이다. 초기 설비를 갖추려면 필름 영사시스템보다 “2배에 가까운”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일단 갖추고 나면 경제적 효과가 상당하다. 특히 배급부문의 경우, 프린트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김용훈 영상전략팀장은 “프린트 1벌을 제작하는 데 130만∼180만원 정도 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VPF의 경우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책정될 것이므로 배급사 입장에서는 분명 이득이 있다”고 말한다. CGV의 이상규 팀장도 “디지털 시네마 사업이 전개되면 전체 영화산업의 차원에서 연간 24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며 “사업 속도가 빠를수록 수익성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디지털 영사시스템의 미비로 인해 발생되는 부가비용이 적지 않았다. 디지털로 찍었지만 키네코 작업을 통해 필름으로 전환해서 배급, 상영하는 사례가 현실이었다. 몇년 전부터는 필름으로 찍은 영화라고 해도 후반작업 과정에서 대부분 DI작업을 거치는 것을 감안할 때 디지털 영사시스템이 전면화되면 제작 등의 부문에서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또한 비디오, DVD, VOD 등 부가판권을 위한 포맷 전환 비용 역시 줄일 수 있다. “영화산업의 디지털화를 위해서는 상영부문의 디지털화가 선행되어야 하나” “상영부문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타 분야에 비해 크지 않다는 점”(‘디지털 시네마 도입의 경제적 파급효과’, 영화진흥위원회) 때문에 디지털 영사시스템 보급이 더뎠음을 감안하면, “총대를 메고 나선” CGV와 롯데시네마의 청사진에 대한 기대가 없지는 않다.

메이저 중심의 시네마 사업=디지털 배급 독점?



하지만 추진방식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고, 반론도 있다. 특히 시장을 주도하는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서는 메이저 업체들이 디지털 시네마 사업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모양새는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현재는 디지털 시네마라고 하면 하드 디스크에 디지털 마스터링 소스를 담아서 주고받는 식이지만 나중에 데이터를 네트워크를 통해 주고받을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이준동 부회장도 디지털 시네마의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지금처럼 업계에서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체가 주도하는 그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디시네마 코리아의 경우 상용설비를 교체할 뿐”이라고 하지만 이후에 “배급기능까지 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진위의 한 관계자 또한 “현재의 방식으로 디지털 배급 및 상영이 전면화될 경우에 힘의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 있다”고 밝혔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올해 6월에 펴낸 <한국영화 동향과 전망>에 따르면, “망 사업자가 극장과 배급사 사이에만 위치하지 않고 배급사업을 병행할 경우 디지털 배급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엄청난 협상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극장쪽 역시 (KT, CJ파워캐스트, 동영 등) 망 사업자에 디지털 설비 투자를 일임할 경우 이것이 극장 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멀티플렉스가 주도하는 합작법인이 아니라 컨소시엄 형태의 협의체 구성이 절실하다는 주장도 여기서 나온다. 제협은 “일정한 VPF를 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공공적 관리시스템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에는 함께 힘을 보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CGV와 롯데시네마는 기우에 불과할 뿐이라고 일축한다. 자신들은 철저하게 “망 사업 등에 대한 어떤 계획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전송망을 쥐고서 “입맛에 따라”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식의 걱정은 지나친 억측 시나리오라고 반박한다. VPF 또한 배급사의 동의없이는 받을 수 없을뿐더러 합의한 가격을 “10년 동안 유지하고” 이후에 해당 디지털 영사시스템을 사용할 경우에는 “무료”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 중소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디지털 영사시스템은 10년 정도 쓸 수 있는 필름 영사시스템에 비해 수명이 훨씬 짧다. 더 잦은 교체를 생각하면 그냥 생색내기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망 사업에 대한 계획이 지금은 없다지만 바뀔 수도 있으니 그걸 막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극장간의 양극화에 대한 우려도



디지털 시네마에 대한 논의가 불붙은 2005년을 전후로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형태의 컨소시엄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성과를 보지 못했다. 한 투자사 대표는 이 과정에서 두 극장이 나서 디지털 시네마 사업에 불을 붙인 데는 외부적인 요건도 있다고 말한다. “할리우드 배급사들이 올해 연말까지 시한을 두고 입장 정리를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입장이 정리되지 않으면 자신들이 임의대로 정한 VPF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배급사들과의 협상에 제대로 임하지 못할 경우 한국쪽 투자배급사들과의 추후 협의 또한 꼬이게 된다. 이 경우에 적절한 VPF를 받아 영사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 또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CGV와 롯데시네마가 밝힌 VPF는 1개 영사시스템당 “대략 100만원 선”. 그러나 적정 VPF를 정하는 문제 또한 간단치 않다. 한 영화인은 “제작부문에서 디지털 상영을 위해 추가로 드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1OO만원은 지나치게 높다”면서 “비용 절감 효과를 크게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CGV와 롯데시네마는 현재 영진위를 통해 제작사, 투자·배급사들과의 협의 테이블을 만들자고 요청 중이다. 자리가 마련된다면 절충안이 가능할지 논쟁이 반복될지 주목된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디지털 시네마를 둘러싼 논쟁은 당장 이 사업이 엄청난 수익을 보장해주지 않는 것과도 관련있다. 한 영화인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과도기에 디지털 시네마는 파이를 어떻게 키울까 하는 고민보다 파이를 어떻게 나눌까 하는 고민이 더 크다”고 말한다. 단적으로 멀티플렉스 체인들의 디지털 시네마 사업이 가속화할 경우, 자금 여력이 많지 않은 중소규모 극장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필름 관련 사업체들의 도산에 대한 고려 또한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멋진 신세계’를 열어젖힐 것인가 아니면 부율, 독과점 논란으로 불거진 아날로그 환경에서의 힘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할 것인가.
by 100명 2007. 11. 20. 0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