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 할리우드 공략" 정유진 감독

전자신문|기사입력 2007-11-06 14:45
[쇼핑저널 버즈] "한국 영화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합니다. 걷기 위해서는 넘어져야 하고 뛰기 위해서는 걸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죠."

슈퍼맨 리턴즈, 할로우맨, 나니아 연대기, 배트맨 포에버, 몬스터 하우스 등 굳이 영화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작품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소니픽처스이미지웍스 정유진 감독은 2007 문화기술 전시회 및 컨퍼런스에 참석하면서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소니픽처스이미지웍스 정유진 감독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활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필름 대신 플래시 메모리나 광미디어를 사용하고 땀구멍까지 보일 정도로 화질이 좋아진 TV에 예전에는 워크스테이션이나 서버에서만 돌아가던 CG(Computer Graphic) 작업도 PC로 충분히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지난 여름 화려한 특수효과로 주목받았던 심형래 감독의 디워도 대부분의 CG 작업이 PC로 이루어졌으며 웬만한 TV 드라마나 사극에서도 빠지지 않고 사용된다.

"디지털의 등장으로 특수효과가 큰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경험과 인력, 기획력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영화에 반영하기가 어렵습니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영화가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던 점도 디지털이라는 도구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죠."

디지털의 장점 중 하나는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이다. 실제로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는 CG 제작 환경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하드웨어는 이미 PC로 작업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도 마야, 소프트 이미지, XSI, 애프터 이펙트, 셰이크 등을 사용한다.

"할리우드와 비교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한국 영화가 가진 장점도 많다고 봅니다. 예컨대 아름다운 집을 지으려면 나무, 벽돌, 기둥을 조화롭게 꾸며야 하는데 한국이 세계 최고의 강도를 가진 벽돌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촬영, 편집, 특수효과 등 복합적인 요소가 들어간 영화에서 한국만의 특징을 얼마든지 나타낼 수 있다는 뜻.

정유진 감독이 말한 것처럼 슈렉3에 FX기어의 3D 소프트웨어가 사용되는 등 한국 영화만의 우수한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호평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할리우드도 영화를 만들 때 100% 미국에서 해결하지 않고 외국에서 수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죠."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웬만한 CG 작업은 PC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사진 : 소니픽처스이미지웍스)슈렉3에는 한국 회사인 FX기어의 3D 소프트웨어가 사용됐다. (사진 : 드림웍스)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경험과 인재라고 정유진 감독은 힘주어 강조한다. "저도 그렇지만 할리우드에 몸담고 있는 외국 인재가 많습니다. 결국 미국 회사는 전세계에서 몰려든 인재를 활용하고 이를 뒷받침 할만한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셈이죠. 한국의 경우 인재가 외국에 나가면 다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해야 하는데 열악한 입시제도나 학연, 지연에 못이겨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정유진 감독은 CG와 같은 특수효과에 대한 논란이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불거지는 것에 대해 "CG는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이것만 가지고는 의미가 없으므로 이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어떤 영화에 CG가 들어감으로써 이야기 전개나 감독의 의도가 잘 전달됐다면 거기서 끝내야지 굳이 논란꺼리로 만들 필요가 없죠."

또한 그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 격차는 줄어들겠지만 영화 제작 시스템은 아직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할리우드는 예산과 기간이 정해지면 최대한 그 영역 안에서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한국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 디워도 개봉일이 수 차례 미뤄진바 있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열정이 높다는 반증이지만 그만큼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이야기 전개나 CG에 편차가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

디지털 기술로 진입 장벽이 낮아진 상황에서 한국 영화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실패와 영화 제작 경험을 습득해야 한다고 강조한 정유진 감독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은 어디라도 비슷하기 마련입니다. 숙련도가 높아지면 CG도 좀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겠죠. 하지만 시간과 예산이 무한정 제공되는 것도 아니니 문제죠. 정해진 기간과 예산을 가지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낼 것인지가 할리우드가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기술력입니다."

포기할 것은 과감히 결정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할리우드만의 특징인 셈. "30년전 흑백 영화나 최신 영화 모두 사람이 보고 느끼는 감정에는 큰 차이가 없죠. 만약 흑백 영화를 만들다가 컬러 영상이 나왔다고 이를 적용해버리면 영화 전체의 균형이 무너져 버립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 영화 발전에 방향에 대해서 의미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에서 스스로 발전을 이뤄내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죠. 따라서 외국 기술을 습득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키우려면 규모가 작더라도 영화를 많이 제작해야 합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 적극 활용되는 특수효과는 경험이 무엇보다 큰 자산입니다."
by 100명 2007. 11. 6. 16:13